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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루저 Aug 11. 2018

'여성 라이더'라는 말에 대해서

왜 '여라'는 있는데 '남라'는 없나요



0.

클래식 바이크를 좋아하다 보니 내 SNS에선 늘 바이크 얘기가 나온다.

인스타 피드는 바이크 사진들로 채워지고, 속한 카톡방은 시시콜콜한 바이크 얘기로 늘 시끄럽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각종 피드와 커뮤니티에 '여라'라는 말이 자주 나오기 시작했다.


여라?

이건 또 무슨 발랄한 급식체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여성라이더'의 줄임말이더라.

(당연하게도) '남라'라는 말은 없고 (또 당연하게도) '여라'에는 많은 차별이 담겨있음에도, 이걸 불편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1.

바이크를 타는 여성에게 향하는 시선과 말들은 매우 전형적이다.

나 오늘 '여라'봄.
오 저기 '여라'들 단체로 지나간다!


우와 여자가 바이크 타니까 멋있어요!
남자 친구 때문에 시작하셨나요?

바이크를 타는 것과 성별은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마땅한데, 바이크를 좋아한다고 하면 늘 '남자스럽다'는 뉘앙스의 얘기들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여기서 남자스럽다는 건, 당연하게도 '마초'에 가까운 이미지다. 이미 남성이 디폴트가 된 수많은 분야처럼, 바이크마저도 그걸 타는 디폴트 값은 남성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메커니즘은, 한국 사회 특유의 가부장제를 지탱해왔던 전형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사회 주요 분야의 구성원 디폴트를 '남성'으로 잡아버리고 그 남성을 다시 '마초'나 '가부장'으로 연결하면서, '가부장 마초 남성'을 사회의 평균적인 주체로 만든다는 얘기다. 이 분야에 여성이 들어오면, '여성'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예외로 치부해버린다.

'여성 대통령' '여교사' '여선생' '워킹맘' '여사장'처럼. 


반대로, 사회의 수많은 변두리에는 '여성'을 디폴트로 놓으면서 여기엔 남성이 들어가면 안 되는 것 마냥, '남성'이라는 딱지를 경고처럼 사용한다.

'남성 주부' '남자간호사'처럼.


'여성 라이더' 혹은 '여라'도 똑같다. 바이크 문화의 주체를 마초 남성으로 정하고, 여기에 들어오는 여성에게 붙이는 딱지다. 마초 남성의 욕망과 호기심이 잔뜩 담겨있는 그런 딱지.



2.

문제는, 이 편견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안팎에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라'라는 말이 왜 문제인 줄도 모르고, '바이크'와 '남성'스럽다는 연결은 여전히 자연스럽다.

답답하게도, 바이크 문화만 통과하면 젠더 감수성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 문화를 만들어가는 라이더들도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각종 영화에선 '걸 크러쉬'를 나타내기 위해 '바이크 타는 여성'을 클리셰처럼 등장시키고(최근에 본 것만 해도 <오션스 8>의 케이트 블란쳇, <미션 임파서블>의 레베카 퍼거슨, <인크레더블 2>의 일라스티 걸), 많은 라이더 커뮤니티는 스스로 마초 집단임을 강력하게 표방한다. (성차별적인 농담을 거의 의무처럼 해야 하는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이제는 애초에 여성을 못 들어오게 하는 커뮤니티들까지)


바이크 타는 여성을 '여라'라는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건 이런 답답한 맥락 위에 놓여있다. 이 말은 여전히 '여성'을 하나의 성차별적 딱지로 쓰고 있는 말이고, 바이크 문화를 마초 아저씨 집단 혹은 양아치 수준으로 만드는 말이다.


'마초' '상남자' '가부장' '형제' '브라더스' 따위의 단어들과는 헤어져야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여성 라이더'는 그냥 '라이더'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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