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몬테크리스토르 Aug 18. 2022

마음이 쨍하게 맑은 날, 비를 기다린다.

- 오늘 단단하게 굳은 땅은 어제까진 질퍽이던 진창이었다.

하늘이 온통 쨍하게 눈부신 아침,

고즈넉한 일상을 데워 말리는 햇살의 시간에

마음을 걷어 널며

비를 기다린다.


질퍽이던 장마는

굳어져서도 울퉁불퉁한 진탕의 주름을 남겼지만,

고른 땅과

눈을 차마 크게 뜨고 마주하지 못할 눈부신 햇살은

다시 비를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말리진 못한다.


사람의 마음이 일년의 매일을 종일 쨍하게 맑다면,

그건 정녕 기분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마음은

때로 구겨지고, 때로 메마르며, 종종 찢어지고, 자주 무너진다.


비는 우리를 자유롭게 다니지 못하게 가두기도 하지만,

우리는 갇힌 실내에서 내리는 비를 보며

오히려 휴식과 안식의 시간을 번다.


일생을 살면서 우리가 간직하는

몇 점 안되는 삶의 기억과 추억들은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고, 신났던 일이 줬던 회복보다는

슬프고, 좌절하고, 무너지고, 눈물났던 고생담 쪽이 오히려 더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일 보다는 

그런 일을 겪고도 다시 삶으로 버티고 일어섰던

그 도전의 기억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아닌가 싶다.



마음이 쨍하게 맑은 날의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은
즐겁고 감사하다.
그러나 그 즐겁고 행복한 감사의 마음은
우리 인생이 그어가는 긴 줄 위에 있는 듯 없는 듯 줄로 이어져 갈 뿐이다.

삶의 현장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내리는 비를 보며 질퍽이는 진탕을, 넘치는 하천을, 젖어오는 옷가지에 스며드는 질척함을 느꼈던

인생의 한순간,  울퉁이고 불퉁였던 시간이 있기에

우리는 비로소 오늘의 쨍하고 맑은 하늘에 감사할 수 있다.



오늘의 쨍하게 맑은 하늘,

단단하게 굳은 땅을 딛고 걷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곱씹는다.

걸음 옮길 곳을 골라 찾아야 할만큼 질퍽이던 땅, 

고개를 우러러 들고 볼 수 없게 쏟아져 그저 발 밑만 바라봐야 했던 비오던 날의 시간들.

당신에겐 그런 날이 있었다.

당신이 살아오던 시간 내내.



마음이 쨍하게 맑은 날, 

비를 기다린다.



비가 와도

나는 

다시 오늘을, 내일을, 인생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 @몬테크리스토르 


#끄적이는하루 #몬테크리스토르 

#글쓰기 #짧은글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가자, 더딘 길 따윈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