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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Aug 26. 2021

브런치에 글 쓴 덕분에 TV에 출연했다

독자분들에 대한 감사의 편지

1. 취미로서의 글쓰기

  회사나 학교에 지원할 때 쓰게 되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는 보통 '취미'를 적는 란이 존재한다.  과거 대부분 나의 이력서의 해당란에는 '농구'라는 글씨가 작게 위치하고 있었다.  농구를 좋아하는 면접관이 있었다면 여기 들어와서 나중에 같이 농구나 하자는 농담을 들을 수 있었겠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러한 나의 취미에 대해서 물어보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었던 거 같다.  


  그 어떠한 의무나 보상 없이 순수하게 취미로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쓰기를 시작하고 글의 개수가 하나둘씩 쌓여가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이력서 취미 란에는 '글쓰기'가 자리하게 되었다.  일도 아니고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사람들에게 이 글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또는 이 글을 통해 전혀 모르던 사람과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는 나의 글쓰기에는 취미라는 단어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래서 내게 글쓰기는 늘 기쁜, 하고 싶은 일이다.


2. 글쓰기가 무거워졌다

  보통 무거워졌다는 표현은 운동을 안 하고 과식을 많이 해서 사람이 무거워졌다거나, 가방에 책을 너무 많이 넣어 무거워졌다고 이야기할 때 어울린다.  그런데 조금은 어색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사실 나의 기쁨이자 하고 싶은 일인 글쓰기가 최근 많이 무거워졌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나의 연락처를 기반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지인들은 정말 드물고, 많은 이들은 나의 '글'을 보고 나를 만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통해서만 내가 투영되므로 글을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내가 쓴 글이 각종 인터넷 사이트 이곳저곳에 공유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욱 정확한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각종 글이나 댓글에 내 글을 근거로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있었고, 내 글을 읽고 명료하게 요약하는 것을 통해 독해 연습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모름지기 법률가의 글쓰기는 모든 문장마다 그 근거(레퍼런스: 보통은 판례나 법조문)가 달려있는 게 제1의 덕목이라던 예전 앨라배마 대법원의 선배 변호사의 말처럼 나 역시 이 글이 서면이나 판결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잘못되거나 편향된 정보를 제공하지는 말자 하는 생각으로 각 문장별 근거와 출처, 그리고 참조한 논문이나 책들을 더 자세히 표시하기 시작했다.  글을 쓸 초기에 하나의 글에 1-2개의 각주가 있었다면, 이제는 최소 5-6개의 각주가 존재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글 하나를 쓰는데 드는 시간도 많이 들어가고, 정성도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  내 생각이 아닌 것은 그 출처를 적고, 외국 문헌인데 번역된 것이라면 외국 문헌을 찾아보고 등등...  돈 주고 하라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 같은데, 취미로서 하다 보니 재밌게 하고 있다.  물론 그래서 작성 중인 글을 담아놓는 브런치의 '작가의 서랍'에는 그러한 기준에 미치지 못해 '미완'이라는 스티커가 붙여진 채 쓰다 만 쌓인 글이 1,000개를 돌파하고야 말았다는 웃픈 사실도 존재한다.  수많은 글 중에 선택받은 글들이 지금 업로드되어 있다.


3. 열심과 정성을 다한 글이 반드시 독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글은 엄청나게 시간을 많이 들이게 되고, 또 때론 내 생각이나 경험이 대부분인 글은 각주 확인이나 인용 없이도 쉬엄쉬엄 쓰게 된다.  소위 가벼운 글쓰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매번 의외의 일들이 벌어진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엄청나게 열심히 고급 정보와 각종 양질의 출처를 담아 써낸 이 글이 진짜 잘 쓴 좋은 글인 거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고, '아 이번 글은 너무 대충 썼나... 올리지 말까? 에잇 모르겠다'하면서 쓴 글이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한다.  참 재미난 현상이다.


  대(大)콘텐츠 시대라는 요즘을 살아가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많은 경우 콘텐츠가 생계와 연결되는데, 그런 경우에는 이 부분에 대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지 대략 추측이 된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무언가를 의무적으로 만들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글쓰기는 오직 '취미'기 때문에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읽는지 읽지 않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읽고 그분께 도움이 되었다면(기분이 좋아졌다거나, 생각이 깊어졌다거나, 안 하던 고민을 시작했다거나, 좋은 정보를 얻었다거나 등등)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그래도 가끔은 내가 썼던 글들을 읽어보면서, '와 이건 진짜 잘 쓴 건데 사람들이 잘 몰라주네...'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글 별로 조회수, 공유 회수, 좋아요 개수 등이 나오는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내가 생각했을 때 잘 쓴 글'들이 존재한다.  소위 말하는 아픈 새끼손가락 같은 글이다.  열심히 시간과 노력을 들어 썼는데, 빛을 보지 못하는 글 말이다.  이런 글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든다.  근데 그런 생각을 할 때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런 아픈 새끼손가락 같은 글 하나 때문에 내가 TV에 나오게 될 줄이야...


4.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많은 댓글로 독자분들과 소통하고 때로는 이메일을 주셔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그래서 여느 날과 같이 브런치를 통한 메일이 도착했길래 글을 읽어주신 감사한 분과의 소통을 기대하며 메일을 열었더니 섭외 요청이 와있었다.


  처음에는 스팸 메일이 아닐까 의심도 해봤다.  왜 우리가 다 아는 그런 편지가 있지 않은가?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한 바퀴 돌면서 받는 사람에게 행운을 주었고..."  근데, 연락처를 드리니 진짜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잠깐의 고민을 하다가, '그래 내가 언제 tv에 나와보겠나' 하는 생각에 겁도 없이 촬영 일자를 잡았다.  


  섭외해 주신 분은 많은 시간을 들여 썼음에도(물론 그냥 내가 재미있어서 쓴 것이지만) 기대보다 큰 관심을 갖지 못했던 이 글을 읽고서 연락을 주셨다고 했다.  내 글 중에 정말 몇 안 되는 '영화'를 보고서 쓴 글이다.  물론 글에 영화 줄거리는 정말 쪼끔밖에 없다.  글이 길어서인지 조회수도 정말 적었고, 어렵게 썼는지 큰 관심도 받지 못했다.


5. 너가 왜 거기서 나와...?

  "자 촬영 들어갈게요"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카메라가 돌아가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러 대의 카메라와 여길 보고 있는 많은 관계자분들 앞에서, 그리고 (나를 비추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이야기를 하려니 갑자기 막 땀이 주룩주룩 났다.  혼자 했다면 연거푸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끊어갔을 거 같은데, 프로 방송인 김민아 씨와 함께 촬영을 하니 많은 의지가 됐다.  방송일이라는 것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1시간이 조금 넘는 촬영이 끝났다.


  촬영에 대해서는 가족과 정말 가까운 몇을 빼고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창피하기도 했고, 나 스스로도 공부나 열심히 해야 하는 사람이 무슨 이런 거를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났을까?  갑자기 평소에 자주 연락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카톡과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자기 집 tv에 나온 내가 찍혀있었다.  이럴 수가...


친구들이 찍어서 보내준 사진들.  처음에는 대본도 열심히 보려 했으나, 촬영 시작하고 한 5분 지나고부터는 대본도 안 보고 신나게 얘기했다


  방송에 못나게 나오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 앉아서 공부만 한다고 살이 많이 쪘는데 더 부하게 나오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그리고 '나중에 시간 나면 봐야지~~'하는 게으름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직까지도 방송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근 몇 년간 앉아서 매일 공부만 주야장천 하던 내게 너무나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내가 살면서 이런 것을 언제 또 경험할 수 있을까?


6. 내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독자분들 덕분에

  요즈음 나의 일상은 그렇게 스펙터클 하거나 재미있진 않은 편이다.  하루에 말을 많이 해봤자 2-3마디고, 가족과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을 한 번도 못 만나고 하루를 보낼 때가 대부분이다.  일어나서, 씻고, 도서관, 점심, 도서관, 체육관, 씻고, 도서관, 잠들기라는 정말 재미없는 루틴을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한 교수님과 요즘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할 일이 있었는데 "아이 왜 이렇게 재미없게 사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맞다... 진짜 재미없다.


  그래도 브런치에 쓰는 글쓰기 덕분에 일상에서 순간순간 활력을 얻는다.  글을 잘 봤다는 짧은 댓글을 확인하는 하루의 끝자락이 참 감사하다.  너무 부족한 내 글을 가지고 자녀분들과 논술토론을 했다는 댓글에 감사함과 뿌듯함을 느낀다.  내 글을 가지고 독해 연습을 한다며, 내가 쓴 글보다 훨씬 멋지게 글을 요약해 주신 분의 글을 보면서 감사함을 느낀다.  나중에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댓글에 가슴이 뛴다.  밥 먹고 tv를 켰는데 내가 나왔다며 친히 사진을 찍어 보내준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  이 모든 분들의 한마디, 행동 하나에 더 큰 활력을 얻어 박력 있게 책을 피는 요즘이다.


  학부 법사회학 수업시간, 책을 많이 읽으라며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책이라는 것은 저자와의 대화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사람과 대화한 것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시대가 흘러 이전과 같이 저자로부터 독자에게로의 일방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던 형태는 지나가고, 이제 글을 쓴 사람과 글을 읽은 사람이 서로 수많은 이야기들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최첨단 시대가 되었다.  댓글과 메일로 독자분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이러한 최첨단 기술을 누리고 있는 요즘이다.  비록 취미로서의 글쓰기지만,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 행복할 수 있음이 참 감사하다.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부족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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