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잃고, CPL 따고
내가 프라하로 학교를 이동해서 CPL을 준비하는 과정 동안에 회사에서 나의 상태는 "Stranded IDLE"이었다. 무급휴가로 떠난 것도 아니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고용은 되어 있지만 언제 회사가 불러줄지 모르고, 사실 상황이 그랬던 게 더 컸고 언제 해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도하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정리 해고 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금씩 내 사 번과 가까워지고 있었고, 함께 두 번째 애비니쇼 트레이닝을 했던 동료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연락이 왔다. 어떻게 회사가 연락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이미 마음이 힘들었을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덤덤하게 그 동료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일단 회사가 먼저 이메일을 보내고 연락 가능한 날짜를 확인한다.
그러고 나서 해고되었다는 말을 전화로 하고 너에게 옵션을 준다.
옵션 1. 회사가 짐 정리해서 내가 있는 나라에 짐을 보내준다.
옵션 2. 내가 직접 도하로 가서 짐 정리를 한다.
옵션 1을 선택할 경우 정산을 할 때 300만 원 정도가 더 들어오고, 옵션 2를 선택하면 300만 원은 없다.
그리고 자기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곧 내가 하게 될 고민을 남기며 우리는 연락을 마쳤다.
내가 회사에서 잘리게 되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법.
CPL 상업용 면장을 따기 전에는 PIC(pilot in command)로 해서 내가 혼자서 비행해서 채워야 하는 시간이 100시간이 되어야 시험을 응시할 수 있다. 내가 브루노를 떠날 때 PIC 시간은 80시간 정도 되었다. 이미 새로운 곳에서 CPL을 시작할 것이라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20시간은 일부러 채우지 않았다. 그 주변도 알아야 하고, CPL루트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곳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몇 백, 몇 천 시간을 가진 조종사들 사이에서 내가 가진 220시간 중 PIC 100시간은 적은 시간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특별한 시간이다. 지난 5년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온 결과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코시국이라 그런지 프라하 국제공항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도 많이 없다. 아침 이른 시간이나 늦은 오후에 프라하 주변으로 비행을 가다 보면, 프라하 타워에서 지나가고 싶으면 활주로 위로 지나가라고도 한다. 다른 학교에서는 프라하 국제공항에 가서 IR연습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정말 작은 경비행기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프라하 공항이 조용하다니.. 낯설었다. 얼른 예전처럼 바쁘게 오퍼레이션 하는 날이 있겠지?
PIC 100 기념사진도 한 장 남겨보았다. 이제 며칠 안 있으면 CPL 시험을 보기 위해서 application이랑 서류 마무리도 하게 될 거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 보자고 다독여보았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이 나에게도 다가왔다. 토요일에 회사에서, 다가오는 월요일에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내 마지막 working day 통보를 받겠지. 그전까지는 새로운 학교에 가서 나를 승무원으로 소개했다.
이제 이 전화를 받고 나서 누군가 나의 직업이나 직장을 물어보면... 말할 곳이 없겠지? 이것저것 규율도 많고 지켜야 할 게 많았던 회사이지만 그 소속감을 잃는다는 것이.. 제법 아쉬웠다.
"디리링"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감정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말 없이 누군가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랩 하듯이 상황 설명과 오늘이 내 마지막 워킹 데이라고 읊조린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전화로 밖에 말을 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미안한데.. 나는 당신의 미안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날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말을 몇 번이고 했겠지..
"짐 보내줄까? 짐 챙기러 올래?
짐 챙기러 오면 마지막 정산에서 300만 원 덜 받을 거야. 그리고 이 전화 끊고 나면 회사 웹사이트 접속은 끊기게 될 거야. 나머지 연락은 이제 개인 이메일로 하자. "
뚜뚜...
급하게 돌아가는 비행기 표가 잘 살아있는지 확인을 하고 비행기 티켓을 내 개인 이메일로 보내두었다. 정말 얄짤없이 몇 분 후 회사 웹사이트에 내 6자리 사번과 비밀번호는 없는 존재였다.
내 선택에 의해서 떠났을 때에는 홀가분했다. 돌아와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을 했지만, 겨우 6개월이었다. 그 다짐 안에 블로그도 해 보고, 다시 여행도 많이 다녀보자는 해보지 못한 다짐들이 남아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햇수로 치면 7년을 몸담은 회사이다. 내 젊음, 내 20대 정말 에너지 넘치고 파릇파릇 한 시절의 한 시절을 아프지 않고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늘은 이미 잡혀있던 비행 일정이 있었다. 전화를 끓고 회사에게 급하게 보내야 할 이메일을 작성해 두고
비행을 하러 갔다. 먹구름 가득 낀 하늘이 내 마음 같아서 먹먹했다. 괜찮을 거라고, 하나는 잃었지만 이제 상업용 면장을 딸 것을 눈앞에 두었다고 위로를 해보려고 했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내 소식을 들은 친구가 연락이 왔다. 친구는 아직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참 좋은 사람이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이다. 너는 회사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이 안 좋을 거 알아. 이 말을 듣는 나도 마음이 안 좋은데, 넌 오죽하겠니. 직장을 잃는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냐. 네가 이 길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끝인 거야.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해서 우울해지고 나쁜 것만 생각하려면 한없이 다운될 거야. 그런데 좋은 것만 생각하고 감사한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또 이 시간들도 좋게 기억될 거야.
생각해 봐, 8년 전에 처음 만나서 이야기할 때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회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다음 길을 준비하고 있잖아. 얼마나 큰 성과니? 그리고 다음 주면 CPL을 딸 거잖아.
난 우리 회사한테 제일 감사한 게 너를 알게 된 거야.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 괜찮아지라고 와닿지 않는 위로는 잠시 접어둘게. 시간이 걸릴 것 같으면 스스로 한테 시간을 줘. 그런데 너무 오래 그 시간을 쓰지 마. 왜냐하면 지금 넌 하나를 잃었지만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너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스테이지에 있으니까.
항상 응원할게. 내가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줘. "
나는 2020년 9월 1일부터 직장이 없다. 회사에서 언제 해고를 통보할자기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고, 그 연락에 잠을 설칠 필요도 없다. 친구가 말한 대로 지금부터 모든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곧 다가올 시험을 위해 준비는 하겠지만.. 이틀 정도는 슬퍼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쨍하게 내리쬐는 햇살도 다 차단하고 나 혼자 방구석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다.
친구의 메시지를 곱씹어보았다. 그래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겠지. 직장을 잃었지만 그래도 나는 상업용 면장을 가진 조종사가 될 거니까 괜찮다며 나를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