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L/Multi engine 그리고 세번째 입사
정리해고 당한 마음을 추스르고 내가 이번 여름에 프라하에서 해 내야 하는 상업용 면장에 집중해 본다.
프라하의 하늘과 교신과 외진 곳에 있는 학교의 모든 것과 익숙해질 때 즈음 나의 상업용 면장 과정도 끝을 향해 달려갔다. 각 감독관마다 다른 방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다. 누구와 비행 하던지 내 스킬이 좋지 않으면 떨어지는 거니까
누구가 나를 감독하는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주어진 것만 잘 하자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다.
체코 출신의 감독관 Petr와 2시간 정도 시험을 보게 되었다.
다른 비행 시험과 같이 도착해서 내 메디컬, 현재 가지고 있는 면장의 모든 것들이 유효한지, 그 과정에 필요한 것들은 다 마쳤는지 확인을 하신 후 비행 루트를 알려주시며 30분의 시간을 주셨다.
그 전날 숙소에서 낯선 루트들을 준비하는 과정들을 타이머로 재면서 연습을 했던 터라 30분이 초조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Sazena(학교가 있는 공항에서 출발) - VOR station - Vodochody (Controlled aerodrome) - Slany (uncontrolled aerodrome with short grass runway) - Peruc (작은 마을) - Back to Sazena.
그날은 아침 시간에 시험이 잡혀 있었던 덕분에 바람이 잔잔했다. 대신 시야가 좋지 않아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포인트들을 찾는데 집중했다. 모든 것을 사실 내가 다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체코어로 교신을 하는 상황이 오면 안전을 위해서 감독관인 Petr가 도와주셨다. 이곳의 지리에 익숙해지기 위해 타임 빌딩 20시간을 잘 남겨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VOR station을 찾아 보라고 감독관이 말씀하셨다. NER VOR station은 밭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창 가을 추수철이라 밭을 정리하는 트랙터를 보고 자신 있게
"That is NER VOR station!" 외쳤다.
근엄해 보였던 감독관이 웃음을 뿜어냈다.
"Is the VOR moving station or fixed station. I will give you one more chance"
아차.. 내 실수였다. 트랙터와 내 비행기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터라 그게 내 눈에는 VOR 스테이션인 줄 알았다고 얼른 실수를 인정하고 제대로 된 포인트를 찾았다. 한 포인트에서 다음 포인트로 갈 때 바람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고 오차 범위를 넘어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Slany는 프라하 국제공항과 바로 붙어 있는 작은 공항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바람을 타고 잘못 넘어가면 controlled 공항에 clearance 없이 들어가게 되는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시험날에 바람 계산 잘못해서 떠밀려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여기에서 Touch and go (활주로에 착륙했다가 바로 이륙하는 것)을 끝내고 나면 고지가 눈앞이다. Peruc라는 작은 마을??? 여기를 way point로 잡으라고 할 줄 몰랐다.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고 내가 믿고 의지할 것은 slany를 떠난 시점부터 시간을 확인해서 찍는 방법 밖에 없었다. 힌트라고는 그 마을 주변으로 흐르는 강이 있고 강의 4시 방향에 마을이 위치해 있다. 나는 찾을 수 있다!
나는 Peruc라는 마을을 찾았고, Sazena로 돌아오는 도중에 몇 가지 마누버를 마치고서야 시험 비행을 마칠 수 있었다. 비행기를 행거에 넣어두고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아무 말씀 없이 필요한 서류들을 차곡차곡 채우시고서는 악수를 건네셨다.
"Contrulations! You passed. Many many happy landings in your future"
아. 드디어 CPL이 내 손안에 들어왔구나... 그래 하면 되는거였어.
나는 상업용 면장을 가진 조종사다.!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고 다음날 Civil Aviation Authority에 상업용 면장을 발급받으러 가기 위한 서류를 챙겼다.다음날이 되어 모든 서류를 CAA에 제출하고 오피스 입구의 의자에 앉아 있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자그마치 5년이나 이 타국에서 시험 치고, 비행하고, 생활을 해 냈다. 시험에 떨어져 낙담하고 속상해 하기도 했다. 연애를 하다가도 내가 이 공부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격지심에 미운 마음을 내비쳐 내가 상처를 받기도 했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적을 수 있지만 그때는 살이 쏙 빠지도록 마음이 아팠다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 돈으로 집을 샀으면, 결혼을 했으면,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 거 같냐고.
좋았겠지. 내 가족이 생기고, 내 이름 앞으로 된 재산이 생기고. 통장이 텅장이 되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다. 하지만 도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누군가의 성취를 바라보며 나도 그때 했었더라면 하는 후회는 생각도 하기 싫다. 그래서 결론은 내 전 재산을 다 부었어도 후회는 없다는 것.
지금은 항공 산업이 많이 힘들다. 그래서 나도 직장을 잃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곧 나를 원하는 곳이 생길 것이며, 지금 이 시기를 잘 보낸다면 어느 나라인지를 몰라도 곧 어느 항공사의 부기장으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는 오듯이.
2021년 여름 회사가 해고했던 사람들을 하나씩 부르기 시작했다. 진짜 이 정도로 그 회사 다녔으면 그만할 만도 하지 않냐 싶겠지만... 아직 나를 기다리며 일을 하고 있는 우리 행님도 있었고 내가 궁극적으로 이루려고 하는 목표도 이 전 회사에 있었다. 승무원으로 다시 재 입사해서 부서 이동하기! 이게 가능한 항공사가 많이 없기 때문에 주변에서 남들이 뭐라고 하던 말이든 귀 닫고 머리 숙이고 나는 내 할 일을 할 때가 왔다.
원래 CPL 상업용 면장을 다 따고 나면 Multi engine rating을 따게 되어있다. 이 Rating은 1년 동안 만 유효기간이 유지되는 것이라 일부러 2020년에 따지 않았다. 만약에 항공 업계가 회복되는 조짐이 보였더라면 연달아서 땄겠지만, 그게 아니었기에 이다음 단계는 다음 해로 미루어 두었다.
2021년 여름에도 체코행을 결정했다. 내 이름으로 쓸 수 있는 항공권이 없었기 때문에 행님 이름 아래로 버디 패스를 등록해서 프라하로 갔다. 지난 CPL 비행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refresh 비행을 교관과 몇 번을 하고, 그리고 엔진이 두 개 달린 이름도 날고 싶은 OK-FLY와 함께 나의 멀티 rating 과정이 시작되었다. 엔진 두 개짜리 비행기를 타는데 대부분의 수업은 엔진 하나를 끈 상태로 진행되었다.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한 게 하나의 엔진으로 안전하게 그라운드에 내려올 수 있는 재량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VFR 눈으로 바깥을 보며 비행을 하는 시간, IFR 계기를 보면서 하는 비행시간을 채운 뒤 작년에 나의 CPL을 담당해 주신 분과 함께 시험 비행을 했다.
작년과 다르게 연필 하나와 포스트잇 하나를 들고 감독을 하러 오셨고, 순조롭게 테스트를 마쳤다.
Multi engine rating까지 다 마치고 2주 정도를 프라하에서 보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 공항에 도착한 날 낯익은 +974 전화번호가 바쁘게 울린다.
"Hello?"
"Hello. This is recruitment team. We received your application and want to have web interview in few days. Could you confirm which date would you prefer?"
당장 내일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무슨 질문을 물어보는지 사전 조사도 해야 했기 때문에 다가오는 월요일로 날짜를 조율했다. 그리고 주변에 먼저 연락을 받은 친구들에게 정보를 얻어서 나만의 답변을 만들었다. 격리 4일째, 혼자서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하면서 인터뷰 준비를 했다. 몇 년 전에 동생이 인터뷰 때 보러 갔던 짤막한 원피스를 입고, 어차피 얼굴만 보이는 거니까,,,
2022년 1월 24일 재입사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