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 안에서 빛이 조금씩 비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조금씩 해외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코로나 테스트 음성 확인 결과서를 제출해야 했고, 준비할 것이 많았지만 다행이었다. 나의 계획은 브루노에서 IR 과정을 다 끝을 내고 시험을 본 다음, 프라하 외곽에 있는 곳으로 학교를 바꿔 CPL을 따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요구하지 않았던 핸들링 fee를 내라고 했고, 내가 계기 비행, CPL까지 한다고 생각하면 300만 원 넘짓 하는 돈을 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수입이 없었고 내가 번 돈으로 CPL까지 겨우 끝낼 수 있게 예산이 빠듯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학교도 몇 없는 학생들의 주머니에 손을 걷어가야 하지만, 힘든 시기에 공부하는 우리 학생들도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돈은 줄여야만 했다.
다시 브루노에 왔다.
여기에는 3 분류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할머니
할아버지
나??
뭐야.. 이미 코로나가 끝난 것처럼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는다. 나는 나를 위해서, 그리고 돌아가서 또 함께 생활해야 할 가족들을 위해서 더위를 참아가며 마스크를 꿋꿋하게 쓰고 다녔다.
5개월 만의 공백기 이후, 다시 조종을 하려니 걱정이 앞섰다. 아무렇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잘하고 싶은 일인데 맘처럼 잘 되지 않을 때의 속상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약간 힘을 빼도 괜찮을 건데, 그게 아직은 조절이 잘 안 된다. 의자에 앉아 비행기 패널 사진을 띄워놓고 체크리스트를 따라서 흐름을 익혀 본다. 그리고 실수해서 피드백으로 남겨 둔 노트를 읽고 또 읽고 5개월 만의 공백을 잘 뛰어넘고 남은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다. 사실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지출이 커 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했다. 다행히 교관님이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차분하게 잘했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오늘의 브리핑.
비행 준비를 위해 보통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은 8시. 주말이라 교통편 배차 간격 때문에 버스에 몸을 싣는 시간은 7시 10분.
뼛속까지 한국인인 나는 밥심으로 시험을 치기 때문에 밥 차려먹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계산을 하면 기상 시간은 5시. 잠깐의 리뷰할 시간까지 가질 수 있겠다. 아침 시간이라서 한여름의 낮처럼 터뷸런스가 심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국물이 있는 음식보다는 계란 프라이 해서 간장에 참기름 얹어서 먹었다.
학교에 도착해서 나만의 루틴대로 날씨 확인, 바람 방학 확인, 디스패치 종이 준비, 비행가방에 들어있는 서류들의 유효기간들 확인, 그리고 내 여권이랑 면허, 메디컬까지 다 준비하고 나니 오늘 비행을 감독해 주 실 분이 오셨다. 작년부터 감독관이 되신 이 분은 나에게 몇 시간 비행 수업을 해 주신 적이 있다.
5시간 이상 수업을 받으면 시험을 칠 수 없는 그런 규정이 있는데, 우리가 같이 비행을 한 것은 4시간이 조금 안되어서 다행히 감독을 하실 수 있게 되었다. 키도 크시고 차분한 성격이셨고, 실수를 하더라도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이 분이 용납하지 않는 포인트는 실수를 하고 바로 고치지 않고 비행기가 그대로 날아가게 놔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비행 중에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비행 중에 노트를 해 주고, 그라운드에 와서 내가 이해될 때까지 인내심 있게 설명을 해 주신 분이다.
오늘 시험은 날씨와 서류를 얼마나 준비해 왔는지, 우리가 가는 공항의 특별 사항이 있는지 없는지 나의 브리핑으로 시작되었다.
SID(Standard Instrument Departure) - After certain way point, back to BNO(VOR) and hold as published - ILS approach - VOR approach.
이 과정들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을 해 주셨다. 간단하게 설명을 하면, SID는 공항의 활주로에서 시작되어 비행기 안에 있는 계기가 출발 항로를 안내해 준다. 조종사는 비행기 안에서 이 루트를 잘 따라갈 수 있도록 계기 세팅을 잘해놓고, 그 항로를 벗어나지 않게 잘 따라가면 된다.
VOR은 땅에서 신호를 보내는 라디오 시스템이다. VOR은 360도로 시그널을 보내는데, 비행기 안에 있는 계기가 이것을 감지해서 내 위치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Hold라는 것은 보통은 오른쪽으로 360도 돌게 되어있고, non standard procedure일 경우에는 왼쪽으로 360도 돌게 된다. 예를 들어서 공항에 착륙을 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비행기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주어진 시간을 사이에 두고 비행기를 한 대씩 공항으로 유도해야 할 경우, 아니면 활주로에 문제가 생겨서 착륙을 당장 하지 못하는 경우, 주어진 순서가 있었으나 이머전시 상황이 생긴 비행기들을 먼저 랜딩 시켜야 하면 나머지 비행기들은 하늘에서 머물러야 한다. 그 머무는 시간을 홀딩이라고 한다. 이것도 각 공항마다 주어진 위치에 주어진 방향으로 돌아야 하는 게 나와있다. ILS는 Instrument Landing System으로 땅에 있는 Localizer 좌 우 신호를 주는 기계와 Glide Slope, 높고 낮음을 알려주는 기계 두 교차점의 신호를 받아 쭉 따라가서 활주로에 랜딩을 하는 것이다. VOR Approach는 VOR의 신호를 받아서 활주로에 안전하게 랜딩을 하는 것을 말한다.
공항에 도착.
Pre flight check을 하고, 그라운드 - 타워 순서에 따라 교신을 하고 take off clearance를 받았다.
땅에서는 바람이 세지 않았는데, 3000 feet부터는 북쪽에서 바람이 심하게 불어왔다.
꿀렁꿀렁 바람에 맞서기에 내가 탄 C172는 하염없이 가녀리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보다는 강하지만, 바람과 산에서 올라오는 바람은 굉장히 정직하게 받아들인다. Trim을 해도 흔들리는 VSI 때문에 진땀이 또르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SID를 따라서 오차 없이 이륙해서 Holding까지 잘 마쳤다. 그리고 ILS approach Runway 27을 할 때, Glide slope과 localizer 두 개가 딱 맞아서 내려가는 그 순간! 기분이 너무 짜릿했다. Minimum에 다다랐을 때 나는 또 다른 approach 과정이 하나 남아 있었기 때문에 Go around를 하고 타워의 교신 지시에 따라서 반대편 runway VOR approach를 시작했다. Minimum, look outside 내 눈앞에 런웨이 09가 보였다. 무사히 비행기를 랜딩 시키고 마지막으로 어떤 지점에서 런웨이를 떠나야 하는지 클리어런스를 받고 나온 순간 휴 끝났다 싶었다.
마셜 아저씨의 지시에 따라서 비행기를 세우고, 마스터 스위치를 끄고 나의 체크 비행은 끝이 났다.
공항에 도착해서 디브리핑을 시작했다.
1. 처음에 바람 세기를 감지 못해서 홀딩 패턴에서 조금 밀려났는데, 두 번째 시도 때에는 잘 따라갔다.
2. ILS 어프로치 할 때 다른 비행기들이랑 교신이 정신없었는데도 놓치지 않고 잘했다.
3. 교신에 늘 약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그럴 필요 없다. 더 자신 있는 모습으로 비행하면 좋겠다.
Result : PASS!
통과했다는 말과 악수를 건네셨다. 야호!!!!
자, 프라하에 왔다.
새로 가게 된 학교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30분, 학교까지 걸어가는데 40분이 걸린다.
첫 수업은 아침 9시라서 7시 버스를 탔다. 8시에 뜬 해는 7시의 해보다 뜨거웠다. 8시 넘어서 걸은 10분은 엄청 더웠다. 땀 식히고 9시에 학교 문이 열리면서 무사히 첫 비행을 마쳤다.
오후 2시 숙소로 돌아왔다. 벌써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2만 2 천보를 걸었다. 아침시간은 괜찮았는데 해가 중천에 떠오르니 비포장도로에 얼룩덜룩하게 뒤덮인 아스팔트가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구멍이 숭숭 난 비포장 도로에는 쥐들이 다니고, 이른 아침에는 토끼도 뛰어다닌다. 이것저것 다 담긴 군장 같은 가방을 메고 겨우 두 번 비행했는데, 발가락에 물집이 생겼다 터져버렸다. 가족들한테 이야기를 하면 걱정할 거고, 행님한테 이야기를 하면 매번 학교 갈 때마다 신경 쓸 테니까 견딜 만큼은 혼자 견뎌 볼 마음이었다.
걸어가는 길목에 어차피 사람들도 없으니까 크게 틀어놓을 음악도 다운로드하여놓고, 불필요한 종이 한 조각이라도 가방을 무겁게 할 까봐 덜어냈다.
그러다가 한낮에 잡힌 스케줄을 소화한답시고 11시 30분에 잡아 둔 비행 스케줄을 한 날 모든 게 터져버렸다.
아침 10시에 버스를 타고 10시 30분쯤 내려서 학교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침에는 그나마 날씨가 선선해서 괜찮았는데 해가 높게 뜨기 시작하니, 아직 학교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땀이 한 바가지가 흘러내린다. 거기에다가 더우니까 느려지는 발걸음에 11시 25분에 겨우 맞춰서 학교에 도착했다.
학원 원장선생님과 스케줄이 잡혀있었는데, 비행 준비를 제대로 할 시간도 없이 비행기에 올라타서 지난 두 번의 비행을 다 확인을 하셨다. 성격도 급하시고 체크리스트 없이 비행기가 어떻게 움직이고 반응하는지를 더 살피시라는 가르침의 컨셉도 들리지 않는다. 탈진한 상태로 비행기에 올라탄 내가 무엇이 들렸을까... 그야말로 그날 내 비행은 형편없었다. 차가운 체코 발음이 녹아있는 영어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I can't let you fly my aircraft with your performace.
You gonna do the same things until I say ok."
로그북에 비행을 마친 사인을 받고 가방을 챙겨서 학원을 나섰다. 아까보다 더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에, 직설적으로 받은 피드백에, 내 속도 모르고 흘러내리는 땀줄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걷다 보니 이게 눈물인지 땀인지도 모르겠더라. 고개를 푹 숙이고 신발에 눈치 없이 달라붙는 아스팔트를 쳐다보면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빵빵"
나와 같은 엉망진창인 길을 가던 차 한 대가 멈췄다. 학교에서 ultra light를 가르쳐 주시는 교관분이시다.
교관 : "프라하 시내로 가는 거니? 내가 태워줄게. 지금 너무 덥잖아."
나 : "괜찮으면.. 버스정류장까지만이라도 태워줄래?"
조금만 더 걸으면 길가에 탈진이라도 할 것 같아 거절보다는 버스 정류소까지만 태워달라고 염치없이 부탁을 했다.
교관 : "아니. 너 사는 곳까지 태워다 줄게. 오늘 너무 더워."
남의 차에 타기도 민망할 정도로 땀을 많이 흘린 상태여서 백 팩을 그대로 맨 상태로 조수석에 앉았다. 나는 그냥 학생인데.. 베풀어주신 마음이 감사했다. 감사하다고 여러 번 인사를 하고 조용히 옆 좌석에 앉아서 에어컨 바람에 열기가 식기를 기다렸다. 10분이 지나도 달아오른 얼굴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교관님은 내게 질문을 던지신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왜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 걸어서 학교를 다니기로 결정을 했는지 등등..
차 렌트를 해서 다녀보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그때 면허는 있었지만 신용카드가 없어서 랜트를 하는데 엄청난 디파짓을 걸어야 했다. 약 200만 원 정도.. 그럴 여유는 주머니에 없었다. 차선으로 접이식 자전거라도 구입해서 시외버스 트렁크에 싣고 다니면서 더위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여야지 비행을 하는데 에너지를 더 쓸 수 있지 않겠냐고, 숙소 앞에 다다랐을 때 체코에서 중고거래를 하는 사이트를 알려주셨다. 데려다주신 덕분에, 건네주신 조언 덕분에 마음이 한결 괜찮아졌다.
이 이야기를 엄마한테 하면서 한바탕 또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엄마도 신경이 쓰였던지 20만 원을 계좌로 보내주셨다. 그 20만 원으로 나는 내 실버 다크호스를 만났다.
다크호스를 구입하고 나서 갑자기 머릿속을 탁 치는 일이 생겼다. 혹시 이 사이즈를 안 받아주면 어떡하지.. 내 계산착오였다. 버스 회사에다가 연락을 먼저 하고 자전거를 구입했어야 했는데.
에라 모르겠다. 다음날 조금 일찍 나가보자.
혼자서 가방을 메고 걸어갔으면 15분이 걸렸을 건데, 다크호스랑 함께하니 5분 만에 도착했다.
버스가 도착하기 전 반으로 접고, 자물쇠도 채웠다. 버스가 도착하고, 내가 트렁크 옆에서 우물쭈물거리자 기사님이 내려왔다. 기사님이 체코 말 밖에 못하시는 분이라 옆에 있는 젊은 여성분이 내가 자전거를 싣고 가고 싶다고 통역을 해 주었다.
190센티의 풍채 좋으신 아저씨는 무표정으로 뭐라고 하시면서 내 자전거를 트렁크에 실어 주셨다.
내 말을 통역해 준 여성 분이 하시는 말씀이
" 가방도 학생만 한 거 들고, 자전거도 들고 도대체 어딜 가는지 모르겠네. 낮에는 더 더울 텐데."
이런 스위트한 잔소리였다니. 걱정했던 마음을 놓고 30분을 달려 학교 근처 버스정류장에 왔다.
"맘 콜로(자전거 있어요.)" 구글이 알려준 말을 하고 버스에서 내리니
기사분이 따라서 내리신다. 트렁크를 열어서 접혀있던 내 자전거를 펼쳐주셨다.
나는 아저씨께
"Dekuju moc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건네고 다크호스와 함께 학교로 갔다.
시원하게 나를 밀어주는 바람을 등지고 열심히 페달을 굴려서 학교에 도착해 보니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마워 다크호스야 너는 정말 은인이야!!
CPL 다 딸 때까지 같이 수고 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