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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지금Minow Oct 15. 2023

국경 봉쇄, 나흘만에 한국 온 썰

코로나로 체코, 카타르 국경이 막혔다.

승무원으로 전에 다니던 회사에 2019년 6월에 재입사를 했다. IR의 시간을 20프로 정도 채운 상태였기 때문에 얼른 휴가를 받아서 교육을 마저 받으러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었다. 원래라면 입사 이후 6개월인 1월에 첫 휴가를 갔었어야 했다. 하지만 1월이면 체코 날씨가 비행하기에는 좋지 않다. 아무리 IR을 하기 좋은 날은 흐린 날이라고 하더라도 de icing 장치가 없는 비행기로 겨울에 IR 비행을 하는 건 좋은 계획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추운날 내복 껴입고 pre flight check 하고 꽁꽁 언 손으로 비행을 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담당하는 매니저에게 내 사정을 설명을 하고 15일의 휴가, 그리고 13일의 지난 분기 휴가를 함께 붙여서 총 28일의 휴가를 3월에 만들어냈다.



2019년 6월 말 입사 이후 한 번도 제대로 휴가를 갖지 않아 이 28일의 휴가가 유난히 더 기대가 되었다. 비록 그 기간에 비행하고 공부하는 일상이겠지만, 그리웠다.



2020년 3월의 첫 스케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내가 승무원으로 하는 마지막 비행이 될 줄 몰랐다. 그리고 3월 5일 체코 브루노로 향하게 된다. 3월의 브루노는 적당히 축축하고 흐린 느낌이 들지만, 이제는 뭔가 이 28일을 통해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는 생각에 축축한 느낌마저 잊게 되었다.



전 세계는 점점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에 문을 걸어잠그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르는 체코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점점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나를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녔지만, 그들의 그 당시 인식은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세균을 가진 아.픈.사.람. 이었다.


브라티슬라바 공역을 넘을 수 없다.


IR (Instrument rating) 계기 비행 과정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IR 로 크로스컨트리를 해야하는 비행이 있었다. 교관님과 내가 준비한 비행루트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였다. 비행 출발 전 flight plan을 제출하려고 폼을 작성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교관 한 분이


"슬로바키아가 국경을 닫았어. 그래서 오늘 슬로바키아 비행은 못 가. 체코 안에 있는 다른 도시로 비행을 다녀와."


헉 이게 무슨 일이람..

국가 간의 봉쇄라니.. 난 아직 해야할 과정이 남아있는데.

겁이 났지만 그래도 마음을 추스르고 계획을 바꾸어 브라티슬라바 대신 체코 안에 있는 팔두비체(Pardubice)로 비행을 다녀왔다.


함께 비행을 갔다 온 교관님이 걱정을 해주셨다.

"여기도 확산세가 심각하니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

'아.. 황금같은 휴가를 열심히 보내고 있는 나를 좀 바줘라. 제발 끝내고 갈 수 있게 해줘요.' 하고 매일 밤 빌었다.


체코 국가 비상, 카타르 입국 금지


체코의 상황은 겉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고, 원래 내가 쳤어야 하는 시험의 일정도 취소되었다. 언제 잡힐 지 모르고 모든 시험들은 무기한 연기가 되었다.

그 누구도 언제 이 상황이 나아질 지 몰랐다.

거기에 더해 체코는 국가 비상 경계령을 내리고, 체코를 떠날 수는 있으나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은 더 따가웠고, 식료품점을 제외한 곳은 문을 닫았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 카타르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과의 연락, 하루 하루가 불안했다. 결정타로 나를 흔들어 놓은 것은 바로  

'다가오는 수요일, 카타르 국경도 봉쇄.'

공부는 다 못끝내더라도 도하로 돌아가서 다시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자라는 생각을 하고, 반 넘게 남은 휴가를 뒤로 한 채 짐을 싸서 다음날 오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체코에서 카타르로 향하는 비행기 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카타르는 이미 국경 봉쇄


프라하에서 도하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무언의 불안감이 있었다. 혹시, 정말 혹시 카타르에도 내가 못들어가는 상황이면 한국으로 가야하는데. 어떻게 가지? 유럽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항공편은 모두 잠정 중단이 되었고, 전세기로 교민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던 시기였다.

에이 설마..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고, 도하에 내렸다.



도하에 왔다.

3월 16일 밤 11시 도하 하마드 공항에 랜딩했다.

하지만... 2시간 전에 이미 이미그레이션은 닫혔다.

오.. 마이.. 갓

이럴수가 이럴수가.


수요일 자정을 기점으로 닫기러 한 국경을 월요일에 닫아버렸다.

"거주증이 있으니 좀 들여보내 주세요." 이미그레이션 오피서에게 애원하고 호소하고 여기에서 일을 한다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야말로 이미그레이션 라인은 시장바닥을 넘어서는 혼돈 그 자체였다. 뻥진 나도 나였지만, 돌아갈 티켓을 못 산다고 우는 청년, 배고픈 아이들을 양팔에 안고 목청 높여 항의하는 어머니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돌아갈 길을 빨리 모색하는 이성적인 사람들 등등


4G인터넷, 자유로운 세계 여행, 이렇게 좋아진 세상에 바이러스로 인한 국경 봉쇄라니.

그 살아있는 순간에 있게된 오늘. 언젠간 웃으며 이야기 할 날이 있을까?


작전명 : 한국행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나버렸다.

내가 카타르로 돌아오려고 체코를 떠난 것을 알고 있었던 언니,친구들은 카톡에서 비상대책 회의를 하고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


경유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 나지 않고, 환승을 할 수 있는 옵션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일단 오늘 하룻 밤은 공항 노숙을 하자.

예전에 공항에서 일하는 지상직원들이 많이 없어 한 달 정도 공항 파견근무를 한 적이 있다. 어떤 라운지는 얼마에 운영이 되는지, 어떤 시설이 있는지, 와인은 주는지, 샤워 시설은 있는지, 주변에 커피 가게는 어디에 있는지.  커다란 공항에 영혼 없는 곰돌이를 기점으로 모든 동선이 눈에 그려졌다. 이래서 쓸데 없는 경험은 없다고 하는건가. 어떻게 해서든지 써먹긴 했으니.




@공항 노숙중



첫 째날 밤을 quite area에서 보내고 정신을 차린 후 돌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모색하기 시작했다. 카타르에 있는 대사관에 연락을 해서 지금 현재 어느 나라에서 환승이 가능한지, 혹시나 코로나 테스트 음성 확인서를 제출해야하는 지 등등.

대사관에 계신 분이 신속하게 정보를 확인해 주신 덕분에 둘 째날에는 나에게 나름의 플랜이 생겼다.


플랜 A : 오늘 밤 인천 비행기 annual 티켓 사용(이미 좌석은 마이너스, 내 운을 시도해보는 것)

플랜 B : 인천행 티켓 사기 (편도 240만원, 이코노미)

플랜 C : 방콕에서 인천 경유 (도하-방콕 직원 티켓 90%할인 된 것 사용 가능, 대한항공 비지니스 편도 180만원, 단 환승시간 6시간 이내여야 할 것)


플랜 A는 보기 좋게 실패하고, 플랜 B를 시도해 보려고 했지만 출발 시간이 다가올 수록 가격이 더욱 더 높아져서 플랜 C로 결정했다.

방콕에서 환승을 할 때 코로나 테스트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으려면 환승시간이 6시간 이내여야만 했다. 그래서 그 환승시간을 만족시키는 비행기는 비지니스 좌석 밖에 없어서 내돈내산으로 신속하게 구매했다. 다행이었다. 어떤 옵션이든 티켓을 살 수 있는 돈이 내 통장에 있어서..



수요일 방콕 도착. 김해 공항 closed


드디어 수요일 오후, 방콕에 도착했다. 탑승 게이트를 확인하고 대한항공 라운지에 들어가서 샤워도 하고, 목요일 자정에 인천으로 비행기는 출발했다.

웰컴 드링크로 건네주는 샴페인을 한 잔 하고 나니 드디어 한국에 간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혼자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오면, 모든 목적지에 사흘 안에 도착하면 무조건 행복할 것이다.


@웰컴 드링크와 인생 라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빵 샌드위치만 먹다보니 매콤한 한국의 맛이 그리웠다.

이륙하자 마자 곯아떨어졌다가 중간에 일어나 라면 한그릇을 뚝딱 하고, 묵은 힘듦을 떨쳐버렸다.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라면을 꼽으라면 이날의 라면이 아닐가 싶다.

넘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있는 우리집과 가까운 김해 공항도 닫혀버리고, 인천 도착해서 김포로 가서 다시 국내선을 타야했다. 체코에서 인천으로 오던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목구멍이 컥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 드디어 우리나라에 왔구나.

필수는 아니었지만 격리가 권고되던 시절이라 2주동안 격리를 했다. 엄마랑 동생이 문 앞에 가져다 주는 음식을 먹고, 또 격리하는 친구와 페이스톡도 하고 2주를 보냈다. 언제 이 상황이 나아져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 지, 오랫만에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니 푹 쉬자라고 이야기해도, 마음 한켠이 편하지 않았다. 혹시나 이 상황이 장기화 되어 일자리를 일으면 어떡하지... 남은 교육 과정은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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