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PL을 다시 준비하느라 내가 계획한 기간보다 더 긴 시간을 체코에서 보내야 했다. 다시 시험을 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포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거 말고는 딱히 다른 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이 보이기 시작하니 봄이 지나 여름이 오고 밤이 다가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ATPL 시험을 치고 나서 IR이나 CPL 둘 중 하나를 시작한다. IR이나 CPL을 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 필요한 필수 과목들을 통과한 상태여야만 그에 필요한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IR(intrument Rating)에 필요한 과목들을 미리 쳐 두었기 때문에 마지막 ATPL 시험을 치기 전에 계기 비행을 시작했다. 사실 시험을 다 치고 나서 마음 편하게 비행만 집중해서 하면 좋겠지만,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을 했어야 했다. 이렇게 재촉한 이유는 내가 ATPL 시험을 다 끝냈을 시점에 다른 학생들도 계기 비행을 시작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기 비행을 할 수 있는 비행기는 2대, 그중에 하나라도 메인터넌스를 가게 되면 비행기는 한 대 밖에 남지 않는다. 기다림도 비행의 한 부분이라고 하지만 스케줄이 잡히지 않을 때에는 지독하게 안 잡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상황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견뎌야 했다.
아침 시간은 계기 비행을 위한 스케줄을 잡아두고 저녁에는 마지막 시험을 준비했다. 비행을 한 시간을 하던, 두 시간을 하든 비행 가기 전, 비행을 하고 나서 정리하는 시간까지 해서 많은 에너지, 시간이 소요되었다. 시험이 일주일 남은 시점까지 IR/계기 비행으로 채워야 하는 시간 50 시간 중 12시간을 해냈다.
나와 같은 시기에 학생 조종사로 시작해 모든 과정을 끝낸 우즈베키스탄 교관이 이렇게 말했다.
교관 : 너 이렇게 시험 안 끝내고 계기 비행하다가 마지막 남은 시험 떨어지면 어떻게 할래?
나 : 아니, 난 내가 떨어진다고 생각 안 하는데?
교관 : 그런 케이스들이 있어서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야. 당연히 붙어야지. 그런데 6월 말에 다시 복직한다며? 그러면 50시간 다 못 채울 건데, 괜찮겠어?
나 : 알지.. 시간을 얼마나 더 채우고 갈지는 모르겠지만, 나 스케줄 좀 잘 잡아줘. 열심히 하고 있잖아.
교관 : 그래. 타임 빌딩이랑 IR이랑 최선을 다해서 스케줄 넣어줄 테니까 남은 시험 잘 쳐.
나 : 고마워.
특유의 차갑고 시니컬한 말투에 나 혼자 상처받을 때도 있었지만 츤데레 교관이었다. 덕분에 시험을 끝내고 난 다음 날부터 재입사를 위해 비엔나로 떠나는 전날까지 알차게 비행을 하고 갈 수 있었다.
재입사의 과정은 많이 복잡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돈으로 얼마나 더 비행을 할 수 있을지 계산을 해 보고, 끝날 기간에 맞춰 3개월 전에 부사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퇴사 직전에 사장님을 뵙고 재입사를 하겠다고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프로세스가 간편했던 것 같다.
이메일을 보내고 이틀 후에 리크루트먼트 팀에서 연락이 왔다. 간단하게 application form을 적고 회사에서 원하는 서류들을 하나씩 준비했다. Yellow fever 백신도 맞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체코에서 백신 맞는 일정도 잡고, 혈액 검사도 받았다. 체코에 공부하러 올 때 준비했던 서류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뭐 아무것도 아니지 하며..
내 손바닥에 있는 상처까지 사진을 보내고 난 뒤에야 재입사 과정이 끝이 났다.
회사에서는 5월 26일에 입사를 하라고 통보를 했다. 입사를 하라고 통보를 받은 날이 내가 마지막으로 시험을 치러 가는 날이었기 때문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6월로 입사 날짜를 조절을 했다. 살고 있는 건물에도 6월이 마지막이라고 알려주고, 프린트도 처분하고 하나씩 살림살이를 줄이기 시작했다. 행님이 브루노를 방문했을 때 커다란 가방에 겨울옷을 한가득 채워서 도하로 먼저 보냈다. 이제 정말 내 브루노 생활을 하나씩 정리하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입사하기 전날에는 비행기를 하루 종일 빌렸다. OK-FOX
여우 같은 이 비행기는 시동을 걸기가 까다로운 녀석이었다. 체코에서 CPL 시험을 보기 전에는 long - navigation으로 일정 거리 이상의 비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브루노에서 출발해서 서쪽에 있는 플젠, 플젠에서 연료를 주입하고 오스트라바로, 오스트라바에서 브루노로 돌아오는 비행을 준비했다. 플젠에는 일정 시간 이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연료 주입이 안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플젠 공항에 전화를 해서 내가 도착할 시간을 알려주고 연료 주입이 가능한 지 확인을 하고 나서야 브루노를 떠났다. 함께 먼 거리를 해 줄 대만 친구가 옆에 있어서 든든했다.
경비행기 안에는 에어컨이 없다. 겨울에는 히터를 틀 수 있지만, 에어컨은 없다는 것이 함정. 다리를 뻗고 있으면 좌석 아래에 있는 좌석 조절하는 레버가 데워져서 종아리를 뜨겁게 달궜다. 목덜미에 물로 적신 손수건을 걸치고 다리가 레버를 건드리지 않게 두고 비행을 했다. 옆에 앉은 대만 친구와 들리는 교신의 비행기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가면서, 앞으로 우리는 어디에 있을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플젠에서의 재정비 후, 오스트라바로 향했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오스트라바로 가는 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단축되었다. 오스트라바에서 브루노로 돌아오는 비행에서 친구가 영상을 찍어주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가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브루노로 돌아왔다. 비행이 끝나고 친구와 함께 시원한 맥주를 한잔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다시 전했다.
각자가 생각한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속도로 교육 과정을 해나가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너무 자세히 그다음 스텝은 물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같이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언제 다시 올 거냐고 물어보면 그 질문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 대답은 I will see. 내 맘 같아서는 다 끝내고 당장 돌아가서 인터뷰하는 자격 다 만들고 싶지. 하지만 모든 게 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한 템포 쉬어갈 수도 있어야지. 어딘가에는 내가 일할 자리가 있을 거니까. 일단은 주어진 것부터 해야지.
재입사 마지막 날까지 야무지게 비행을 하고, 다음날 아침 비엔나 공항으로 갔다. 아무리 짐을 보냈다고 해도 백팩 하나, 작은 가방 하나, 큰 짐가방이 두 개나 되었다. 마틴이 슬로바키아로 부모님을 뵈러 가기 전에 나를 공항에 데려다준다고 했다. 나는 진짜 마틴 없었으면 어쩔뻔했을까... 마지막까지 고마운 우리 마틴. 내 브루노 생활 즐거움을 꼽으라면 마틴과 함께 한 시간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기름값 봉투에 넣어서 조수석에 남겨두고, 가방을 챙겨서 마틴과 포옹을 하고 비엔나 공항으로 들어갔다.
아쉽지만 후회 없는 10개월을 보냈다. 다시 학생 시절로 돌아간 느낌에.. 지금 돌아보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간을 꼽으라면 브루노에서의 시간은 Top 3안에 들 것이다.
정겨운 비엔나 공항에서 보딩패스를 받아서 A320 비행기에 올라탔다. 버건디 재킷을 입으신 지상직 직원분이 다른 조이너에게 악수를 건네고, 나에게로 걸어오시는 게 보였다.
"Miss Kang? Welcome to our company. Wish you have a pleasant journey."
스윗한 말씀과 따뜻한 악수로 새롭게 시작될 나의 회사 생활을 반겨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