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동의 뇌가 보내는 소리 없는 신호
제발 5분만이라도 가만히 좀 있어 줄래?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님들이라면, 혹은 교실에서 이 아이들을 마주하는 선생님들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삼키는 말일 겁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꼼지락거리고,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충동적으로 끼어듭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조금만 더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멈출 수 있는 행동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아이가 온 힘을 다해 가만히 있으려 노력하는 그 순간에도, 뇌 속 깊은 곳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격렬한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Resting-state)'의 뇌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연구 결과, 어떠한 과제를 수행할 때가 아니라 그저 멍하니 있는 순간에야말로 ADHD라는 현상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Yu-Feng et al., 2007). ADHD 아동의 '소란스러운 침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자동차가 신호 대기 중에 멈춰 있어도 엔진은 계속 돌아가듯, 우리의 뇌도 멍하니 있는 동안 멈추지 않습니다. 뇌과학자 비스왈(Biswal)과 라이클(Raichle) 교수는 우리가 쉴 때도 뇌의 특정 부위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활발히 활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Biswal et al., 1995; Raichle et al., 2001).
연구진은 13명의 ADHD 소년들과 13명의 대조군 소년들을 대상으로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를 촬영하여, 이들이 쉴 때 뇌가 어떻게 '공회전'하는지를 비교했습니다. 분석 결과, ADHD 아동의 뇌는 일반 아동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에너지 패턴을 보였습니다(Yu-Feng et al., 2007). 어떤 곳은 불이 꺼진 듯 너무 조용했고, 어떤 곳은 과열된 엔진처럼 시끄러웠습니다.
가장 먼저 발견된 특징은 '억제'와 '조절'을 담당하는 부위의 기능 저하였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ADHD 아동은 쉴 때 다음 부위의 활동성(ALFF)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우측 하전두피질(Right Inferior Frontal Cortex)
이곳은 뇌의 '브레이크'에 해당합니다. 충동적인 생각이나 행동이 튀어나오려 할 때, "잠깐, 멈춰!"라고 신호를 보내는 곳이죠. 선행 연구들은 ADHD 아동이 충동을 억제하는 과제를 수행할 때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어 있음을 꾸준히 지적해 왔습니다(Rubia et al., 1999; Zang et al., 2005). 이 부위의 활동이 약하다는 것은, 아이가 일부러 참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멈춤 신호'를 생성하는 힘 자체가 약하다는 뜻입니다.
소뇌(Cerebellum)
소뇌는 흔히 몸의 균형을 잡는 영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단순히 몸의 균형만 잡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뇌과학은 소뇌가 생각의 타이밍을 맞추고, 주의력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MRI 연구에 따르면 ADHD 아동은 소뇌의 부피가 작거나(Durston et al., 2004) , 혈류량이 감소되어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Berquin et al., 1998). 이곳의 활동이 저하된다는 것은 아이가 행동과 생각의 박자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ADHD 아동이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의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뇌라는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잘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니다.
한편, ADHD 아동은 가만히 쉬어야 할 때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과잉 활동을 보이는 부위들도 있었습니다. ADHD 아동의 뇌에서는 다음 영역들이 쉴 새 없이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Yu-Feng et al., 2007; 2012).
전대상피질 (Anterior Cingulate Cortex, ACC)
이곳은 뇌의 '갈등 조정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오류를 감지하며, 어디에 주의를 줄지 결정합니다. 흥미롭게도 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를 투여하면 과열되어 있던 이 부위의 활동이 진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Langleben et al., 2002). 즉, 치료 전 아이의 뇌는 쉴 때조차 무언가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긴장하며, 내적인 혼란과 싸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뇌간 (Brainstem)
생명 유지와 각성을 담당하는 가장 원초적인 부위입니다. 초기 연구들은 ADHD 아동의 뇌간 영역에서 도파민 합성 효소 활성이 높거나(Ernst et al., 1999) , 과도한 혈류량이 관찰됨을 보고했습니다(Lou et al., 1984). 즉, ADHD 아동은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는 '과각성(Hyper-arousal)' 상태에 놓여 있어, 아주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감각운동피질(Sensorimotor Cortex)
외부 감각을 느끼고 몸을 움직이는 부위입니다. 가만히 있으려 해도 이곳이 계속 활성화되니,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손발을 꼼지락거리고 몸을 비틀게 됩니다(Lee et al., 2005).
이 연구 결과는 ADHD의 핵심적인 역설을 설명해 줍니다. "왜 ADHD 아동의 뇌는 이렇게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정작 다른 사람 말에는 잘 집중하지 못할까요?" 정답은 '배경 소음'에 있습니다. 교실이 조용하면 선생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만, 시끄러운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즉, ADHD 아동의 뇌는 '휴식 상태'라는 배경 자체가 이미 너무 시끄럽습니다. 전대상피질과 뇌간이 쉴 새 없이 잡음을 만들어내니, 정작 외부에서 들어오는 중요한 정보나 과제에 반응해야 할 때 뇌가 적절히 반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Schulz et al., 2004).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태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집중력을 발휘할 여력이 없는 셈이죠.
뇌과학 연구는 ADHD 아동의 산만함이 단순한 행동 문제가 아니라, 뇌의 기본 설정값(Baseline) 자체가 일반 아동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들이 편안하게 쉴 때, 이 아이들의 뇌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각성을 조절하는 뇌간은 과열되어 있고, 충동을 막아줄 전두엽의 브레이크는 느슨합니다. 그 상태로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은, 엑셀을 밟은 채로 고장 난 브레이크를 잡고 버티는 것만큼이나 고단한 일입니다.
ADHD 아동의 행동을 '고쳐야 할 버릇'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생물학적 신호'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겉으로는 장난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 작은 머릿속에서는 지금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는 중일 테니까요.
Berquin, P. C., et al. (1998). Cerebellum in 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 morphometric MRI study. Neurology, 50, 1087-1093.
Biswal, B., et al. (1995). Functional connectivity in the motor cortex of resting human brain using echo-planar MRI. Magn Reson Med, 34, 537-541.
Durston, S., et al. (2004). Magnetic resonance imaging of boys with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and their unaffected siblings. J Am Acad Child Adolesc Psychiatry, 43, 332-340.
Ernst, M., et al. (1999). High midbrain [18F]DOPA accumulation in children with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m J Psychiatry, 156, 1209-1215.
Langleben, D. D., et al. (2002). Effects of methylphenidate discontinuation on cerebral blood flow in prepubescent boys with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J Nucl Med, 43, 1624-1629.
Lee, J. S., et al. (2005). Regional cerebral blood flow in children with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comparison before and after methylphenidate treatment. Hum Brain Mapp, 24, 157-164.
Lou, H. C., et al. (1984). Focal cerebral hypoperfusion in children with dysphasia and/or attention deficit disorder. Arch Neurol, 41, 825-829.
Raichle, M. E., et al. (2001). A default mode of brain function. Proc Natl Acad Sci USA, 98, 676-682.
Rubia, K., et al. (1999). Hypofrontality in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during higher-order motor control: a study with functional MRI. Am J Psychiatry, 156, 891-896.
Schulz, K. P., et al. (2004). Response inhibition in adolescents diagnosed with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during childhood: an event-related FMRI study. Am J Psychiatry, 161, 1650-1657.
Schweitzer, J. B., et al. (2003). A positron emission tomography study of methylphenidate in adults with ADHD: alterations in resting blood flow and predicting treatment response. Neuropsychopharmacology, 28, 967-973.
Yu-Feng, Z., et al. (2007). Altered baseline brain activity in children with ADHD revealed by resting-state functional MRI. Brain and Development, 29(2), 83-91.
Yu-Feng, Z., et al. (2012). Erratum to "Altered baseline brain activity in children with ADHD revealed by resting-state functional MRI" [Brain Develop 29 (2) (2007) 83–91]. Brain and Development, 34, 336.
Zang, Y. F., et al. (2005). Functional MRI in 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Evidence for hypofrontality. Brain Dev, 27, 544-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