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안 산 후기입니다.
경기도 안산에 간 후기도, 양궁선수 안산 씨를 만나고 남기는 후기도 아니다. 말 그대로 ‘안 산 후기’다. 구매 후기는 많이 봤어도 안 산 후기라니? 하지만 종종 구매하지 않는 일도 구매하는 행위만큼 많은 고민을 수반한다. 이것은 소비의 유혹을 딛고 물건으로부터의 자유를 향해 한발 나아가는 기록이다.
두 번째 <안 산 후기>는 바로 애플케어플러스다.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은 아니지만, 우리가 구입하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안 산 후기>를 작성한다. 애플케어플러스는 애플에서 공식적으로 출시한 애플 기기에 들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이다. 기기마다 다르지만 일정 금액을 내고 애플케어플러스를 구입하면, 2년간의 보장이 적용되고 여기엔 ‘우발적인 손상’에 대한 보상도 포함된다. 기기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그냥 내가 지나가다가 떨어뜨려서 제품이 깨져도 일정 금액의 본인 부담금만 내면 리퍼를 받을 수 있다. 쌩으로 리퍼를 받는 것에 비해 훨씬 싼 가격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해당 상품을 구매하고 있다. 나는 얼마 전 아이폰 13을 구매하면서 애플케어플러스 구입을 망설였으나 결국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애플케어플러스를 여러 번 구입했고, 실제로 써먹어보기도 했다. 2018년에 구매했던 아이폰 8에 처음으로 가입했는데, 그때는 한국에 서비스를 출시하기 이전이어서 미국 애플케어플러스를 가입했다. 실제로 지인이 내 폰을 만지다가 아스팔트 위에 면대면으로 아이폰을 떨어뜨려 후면이 박살난 적이 있었다. 가로수길 애플스토어를 찾아 리퍼를 받았는데, 본인 부담금이 0원으로 아예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애플스토어 직원은 애플케어플러스 역시 일종의 ‘보험 상품’인지라 약관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미국 기준으로 이루어진 계약이라 한국에서는 그대로 적용이 안된다고 설명했다(사실 그 직원도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 당시에는 미국 애플케어플러스에 가입한 경우 리퍼를 하게 되면 수리 센터 측에서 금액이 ‘0’으로 떠서 사실상 무료 리퍼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 정식으로 서비스가 출시된 이후로는 당연히 자기 부담금이 정상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때 애플케어플러스에 상당히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고, 그 후 구매한 아이패드 프로 역시 애플케어플러스를 구매해 적용하였다(2020년도에 구매한 제품이라 당연히 한국 애플케어플러스로 구매하였다). 사실 그전까지 기본형 아이패드 6세대를 사용했을 때는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느낌이라 가입하지 않았는데, 아이패드 프로는 부서졌을 때 리퍼 비용이 워낙 많이 발생한다고 하고, 또 액정 필름 없이 패드를 사용하고 싶어서 가입하게 되었다. 아이패드 애플케어플러스의 장점은 아이패드뿐 아니라 애플 펜슬, 매직 키보드 같은 주변기기까지 보장해준다는 면에서 장점이 더 부각되는 것 같다. 또 애플 워치 SE에도 구매하면서 애플케어플러스를 포함해 구입하였다. 평소 시계를 차고 다닐 때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시계가 주변에 부딪히는 경우가 꽤 있었던지라 향후 애플 워치가 파손될 경우를 대비해 상품을 구입했다.
그렇다면 나는 최근에 구매한 아이폰 13에 애플케어플러스를 먹여주었나? 그렇지 않았다. 사실 많이 고민했다. 액정보호필름도 사용하지 않고, 케이스도 미끄러운 느낌이 싫어 가장 얇은 투명 케이스만 사용하는 나인지라 뭔가 가입해야만 할 듯한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휴대폰 특성상 아이패드나 애플 워치에 비해 떨어뜨릴 일이 훨씬 많기도 하고. 애플케어플러스는 제품을 구입하고 60일 이내에 가입할 수 있었기에 60일이 되는 그 순간까지 가입 여부를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구입하지 않았다.
‘요즘 스마트폰들은 웬만큼 튼튼하다’. 이게 내 생각이다. 사실 지인이 내 아이폰 8을 깨뜨린 그날도, 정말 우연히 얇은 실리콘케이스를 끼지 않은 상태였고, 또 하필 아이폰이 떨어지며 회전하는 와중 뒷면과 아스팔트 바닥이 정확히 맞닿아 부딪혔다. 그 전이나 후에도 꽤 여러 번 아이폰을 떨어뜨렸는데, 옆면으로 떨어졌을 때는 한 번도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아이폰 6가 신제품이던 시절만 해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액정이 깨진 상태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최근에는 깨진 상태의 아이폰을 쓰는 사람을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애플케어플러스나 통신사 보험 상품들이 보편화되어 수리가 용이해진 덕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제품은 이전 세대보다 충격과 외부 환경에 강하도록 연구개발이 이루어진다(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 역시 그렇다). 아이폰 12부터는 각진 직사각형 디자인이 채택되었고, 세라믹 실드가 사용되어 이전 아이폰에 비해 충격을 견디는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기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일정 수준의 견고함과, 딱히 자주 떨어뜨리지 않는 생활 습관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리퍼를 해야 할 일이 발생할 확률은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내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패드 프로, 애플 워치에도 애플케어플러스가 적용되어있지만 아직 이 제품들에 써먹어 본 적은 없다. 아이패드는 액정 필름은 없으나 폴리오 케이스를 씌워 사용하고 있고, 평소에 들고 다니기보다는 가방에 넣고 책상에 두고 쓰는 제품이다 보니 딱히 떨어뜨릴 일이 많지 않다(물론 떨어뜨려서 옆면에 작은 흠집이 난 적이 있긴 한데 잘 보이지도 않고 이제는 어디에 났었는지 기억도 없다). 2년 내로 배터리가 80% 이하로 떨어졌을 시 배터리 무상 교체를 해준다고는 하지만, 사실 2년 내로 배터리 효율이 80%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는 정말 보기 힘들다. 괜히 애플이 2년에 80%라는 조건을 내걸었을까. 애플 워치의 경우도 몇 달 전 팔을 마구 움직이다 부딪혀 옆면 알루미늄에 작은 흠집이 생기긴 했는데, 그 순간에는 가슴이 좀 아팠으나 이제는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실제로 리퍼를 하게 될 일이 생겼을 때도 애플 워치 SE를 본인 부담금까지 내면서 수리한다면 배에 비해 배꼽이 너무 큰 상황일 것 같다. 이와 같은 이유로 에어팟 프로에도 애플케어플러스를 들지 않았다.
보험은 공포를 가지고 안심을 파는 것이다. 우리는 큰 질병이 생겼을 때 발생하는 병원비가 두렵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다. 교통사고에 대비한 자동차보험은 선택이 아닌 의무다. 해외여행을 할 때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여행자 보험을 가입하기도 한다. 이것들은 사고 발생이 매우 큰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경우에 속한다. 일정 수준의 보험료를 내더라도, 한번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내가 입을 손해가 막심할 수 있으므로 이를 대비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스마트폰이 파손되는 일’이 내 삶에 큰 위험을 끼치는 경우에 속할까? 물론 리퍼를 요하는 파손이 발생했을 때, 애플스토어에서 제값을 다 주고 리퍼를 한다면 속이 좀 쓰릴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리퍼에 소요되는 금액이 내 생활을 흔들 정도는 결코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폰의 파손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모든 물건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신경을 써주고, 마구 던지거나 위험한 곳에 올려두지는 않는다.
심지어 애플케어플러스의 보장은 공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애플케어플러스 가입 비용이 발생하고, 리퍼 시 자기 부담금이 발생한다. 아이폰 13의 경우 애플케어플러스 가입비가 199,000원이며 리퍼시 120,000원의 본인 부담금이 발생한다. 가입 기간 동안 리퍼를 한번 받는다고 가정했을 때, 총 32만 원가량이 소요되는 것이다(본인 부담금이 있기 때문에 고의로 파손할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2022년 3월 28일까지는 가입 비용이 조금 할인되어 179,000원이다. 그렇다면 30만 원가량이 소요된다. 마찬가지로 보증 제외 리퍼의 경우도 3월 28일까지 할인이 적용되어 507,600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리퍼를 무조건 한번 받게 된다면, 약 21만 원 정도 저렴하게 리퍼를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내게는 리퍼를 할 경우 21만 원을 절약하는 메리트보다, 가입의 불필요성이 더 크게 다가왔을 뿐이다.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데만도 적지 않는 돈을 냈는데, 이것이 파손될 경우를 대비해서 또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스마트폰이 그 정도로 받들어 모실만한 물건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이폰 13을 구매한 지 이미 몇 달이 지났고, 더 이상 애플케어플러스는 가입할 수 없지만 딱히 불안하거나 후회되지 않는다. ‘물건을 상전으로 모시지는 말자’라는 게 내가 물건을 대하는 생각이다. 좋은 물건을 고르고, 정성스럽게 사용하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보내주면 그만이다. 나는 기계를 샀지 불안과 걱정을 사지는 않았다. 언젠가 우연히 파손되는 날을 걱정하기보다는 본연의 기능을 즐기며 하루하루 충실히 사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