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은 집에는 독특한 예술혼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아내(로라)와 패터슨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우체통을 망가뜨려놓는 잉글리시 불독이 함께 살고 있다. 말도 표정도 고집도 없는 패터슨은 굉장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가 오랫동안 써온 시가 패터슨의 내면엔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말해준다. 패터슨은 유명한 시인들이 기상 관측관 등 고유한 직업들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패터슨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다만 다른 점은 누구에게도 그의 시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그를 설득해서 아내는 시집을 꼭 복사하기로 약속받는다.
영화는 월요일부터 시작해서 다음 월요일까지 진행된다. 그래서 반복된 일상을 잘 보여준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버스를 몰기 위해 출근하고 퇴근해서 식사 후 강아지와 산책하고 동네 바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들어와 자는 일상이 반복된다. 매일이 어제와 같고 내일은 오늘과 같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날들. 그런데도 사건이 일어나고 갈등이 있고, 시가 만들어진다.
아내와 패터슨은 아주 다른 캐릭터다. 과묵하고 표현을 잘 하지 않고, 싫은 소리를 못하는, 한 마디로 답답한 패터슨에 대조되는 아내는 흑백의 강렬한 예술혼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집안 곳곳을 꾸미고, 없는 살림에 비싼 기타를 주문하고는 컨트리송 가수가 되겠다며 연습한다. 지역 마켓에서 팬케이크를 팔아 성공해서 팬케이크 가게를 차리겠다는 꿈도 있다.
집 밖의 인물들도 패터슨과는 딴판이다. 버스 회사엔 만나기만 하면 자신의 온갖 불행한 일들을 숨도 쉬지 않고 늘어놓는 동료가 있다. 버스에선 승객들이 일상을 이야기하고, 저녁마다 들르는 바엔 말 많고 웃긴 주인이 있고, 마리라는 여성과 마리를 짝사랑해서 매일 따라다니며 "얘기 좀 해."하는 에버렛이 있다. 패터슨은 바에서도 말이 없고 버스에선 아예 말이 없다.
그러나 그는 매일 운전을 시작하기 전에 시를 쓰고, 점심시간엔 폭포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시를 쓰고, 저녁엔 지하실에서 시를 쓴다. 시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깝지만 아름다운 문장들이 노트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패터슨이라는도시는 정말 평화롭도 특징도 없는데 그가 시를 쓰는 폭포만큼은 정말 아름답다. 그처럼 패터슨사람도 과묵한 입 안엔 아름다운 시를 갖고 있다.
패터슨은 자기를 꼭 닮은 패터슨에 산다. 작고 조용한 소도시, 특별한 일이랄 게 없어서 모든 일이 특별한 곳이 패터슨이 사는 패터슨city이다. 그러나 그 안에 일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거리와 멋진 폭포가 있다. 그 안에서 패터슨은 매일 시를 적으며 살아왔다. 그에게 시는 그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로 보인다.
월요일로부터 5일이 지나 토요일, 지역 마켓에 팬케이크를 판매하러 나갔던 아내가 돌아왔다. 그 무렵 패터슨은 지하실에서 아내 로라가 매번 주문했던 사랑의 시를 쓰고 있었다.
평소엔 지하실에 시집을 두던 그였지만, 팬케이크 판매에 성공한 들뜬 아내에 이끌려서인지, 어쩌면 시를 나중에 선물하고 싶어서인지, 시집을 들고 거실로 올라와 소파에 앉았다. 이날을 기념하며 외식한 뒤 영화를 보자는 아내의 말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 부부는 간만에 밖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보니 소파에 있던 시집은 강아지가 갈기갈기 찢어 복구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있었고, 패터슨은 상실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다음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산책하던 패터슨 산책을 나선다.
패터슨은 그가 항상 시를 쓰던 폭포 앞 벤치에 도착하는데, 웬 일본인이 그곳 앉아 있다. 한껏 패터슨을 의식하는 듯한 일본인은 대뜸 말을 걸더니 그에게 시인이냐고 묻고, 패터슨의 유명한 시인을 아냐고 묻고, 또 다른 시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패터슨은 자신은 시인이 아니고 그냥 버스 드라이버라고 답하지만, 일본인은 유명한 시인들은 모두 기상관측관 같은 평범한 직업을 갖고 있었다며 패터슨이 버스 운전사라는 점도매우 시적이라고 말한다. 일본인은 갑자기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조용히, 그러나 가감 없이 이야기한다. 그의 말은 패터슨의 시적 취향과 시에 대한 생각과 완전히 같았다. 패터슨이 늘상 하던 말을 일본인이 하고 있었다.
일본인은 패터슨이 말할 때마다 "아-하-!"하는 리액션을 취한다. 그러더니 대뜸 자리를 뜨며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건낸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라며, 그리고 떠나던 일본인은 뒤를 돌아보며 패터슨을 부르더니 "아-하-!"하고는 아주 떠난다. 패터슨은 그 자리에서 새로운 시를 다시 쓴다.
에버렛과 일본인은 영화의 메세지 전달자다.
바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다 제지당하고 쫓겨나는 에버렛은 "사랑이 없으면 삶이 무슨 소용이 있어?"라고 소리치며 나간다. 에버렛은 패터슨과는 정말 딴판의 캐릭터다. 짝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밤마다 쫓아다니며 마음을 표현하고 바의 주인과 패터슨에게도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이다.패터슨은 묵묵히 아름다운 시로 사랑을 표현하지만 그는 급하고 서툰 말로 마음을 표현한다. 사뭇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며칠 전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별이 된 과학자는 자녀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는다면 우주는 대단한 곳이 아닐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패터슨>의 메시지와 과학자의 말이 비슷한 시기에 나에게 다가와감동을 주었다.
마지막 등장인물 일본인은 유일하게 패터슨city 밖의 인물이다. 그는 패터슨 city의 외부인이기도 하지만, 패터슨이라는 사람에게 외부인이기도 하다. 패터슨이라는 도시와 패터슨이란 사람이 너무나 닮아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외부인의 등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패터슨의 마음은 찢어진 그의 시집과 함께 무너졌다. 그런시기에 그의 무너진 내면으로부터 독립된 존재, 즉 무너지기 전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사람을만난다. 그가 패터슨에게 대뜸 던지는 말은 그동안 패터슨이 간직하고 살아온 시에 대한 그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패터슨에게 빈 노트까지 주는 장면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일본인의 메시지는 영화의 최종 메시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소설이나 영화, 시라고 만난 여러 예술들이 우리에게 사랑받는 것은 그것이 가진 고유한 미(美)때문이기도 하겠으나, 그것이 우리의 삶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일상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크고 작은 갈등, 소소한 즐거움, 감상, 사랑, 주변인과 우리가 사는 공간과 시간을 다룬다.
어떤 감각에 의해서인지 그런 이야기와 장면들은 예술이 되고 글이 된다. 그것들은 마치 너무나 평범한 나의 삶이랑은 다른 세계에 있는 특별한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저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뛰어난 능력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예술로 만들어진 내용은 사실 우리가 늘상 마주하는 세상, 패터슨이 버스를 몰고 시내를 돌며 보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면, 일상이 참 소중하고 아름답다. 모두가 시가 되고 그림이 되기 충분한 예술같은 순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