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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y Dec 26. 2018

스리랑카에서 기차를 타다 든 생각


스리랑카의 기찻길은 어디에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스리랑카의 기차는 정말 낡았다. 의자엔 쿠션이 없고 기차엔 문이 없다. 언젠가 TV에서 본 인도 기차와 똑같이 생겼다.


캔디 역 기차

캔디와 누와라엘리야는 약 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기차로는 4시간 정도를 달렸던 것 같다. 유명한 기차길이자리를 미리 예약하지 않은 나는 앉을 수 없었다.


낡고 시끄러운 기차 안에서 서있다가 의경일 때 함께 지낸 사람이 생각났다. 서울의 끝자락에서 종로나 여의도 등으로 출동하는 일이 많고, 주로 출퇴근 시간에 그곳으로 이동하다보니, 우리는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이동시간에 시간을 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언제든 부서질 것 같은 버스 안에서 온갖 장비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 답답하고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 선임은 버스에서 밖을 보면 서울의 야경이 풀 HD 파노라마로 선명하게 보이는데 얼마나 좋냐고 했다. 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지만 밝고 낙천적이었다. 그 모습을 나는 정말 좋아했다.


내 소망은 의자에 앉아서 스리랑카의 풍경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것이었지만 자리가 언제 날지 기다리면서 서있느니 지금부터 당장 스리랑카의 풀 HD 파노라마를 즐기기로 했다. 열차의 출입문에 앉았다. 4시간을 이렇게 가면 엉덩이가 아플 것 같았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창문이 없으니 바깥 공간을 그대로 만날 수 있었다.




캔디에서 조금만 벗어나니 기차는 숲 속을 달렸다.




기차는 점점 산을 올라갔고 기찻길 옆이 바로 낭떠러지인 곳도 있었다.





문에 걸터앉아 4시간을 달렸다. 숲을 지날 땐 나무에 다리를 부딪힐 정도였고 마을을 지날 때면 표지판에 닿을 정도로 기차와 기차가 지나는 공간이 가까웠다.  기차를 탄다는 기분보다는 여러 마을과 숲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4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기찻길옆 산속의 차밭



기차를 타고 간 목적지인 와라엘리야는 스리랑카 섬의 중심부, 고산지대에 위치해있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내려다보는 아래가 까마득하게 멀어보였다.




스리랑카는 도시를 벗어나면 정말 낙후된 동네가 많다. 60년대에 시골에 사신 아버지가 들려줬던 말들이 내가 기차를 타고 가며 본 경관들에 영화에 자막을 붙인 것 마냥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기차를 보면 아이들과 부모가 손을 흔들며 인사해줬다. 정말 가까운 거리라서 눈을 마주치며 인사할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스리랑카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스리랑카는 교통이 정말 불편하다. 기차와 버스는 모두 낡고 느리고, 도로와 기찻길도 많지 않아서 가까운 거리도 둘러 가야 한다. 기차는 문도 없으니 안전하지도 않다. 하지만 빠른 기차 안에서는 뭉개지는 바깥세상이, 느린 열차 안에선 선명하게 보였다. 게다가 문이 없어서 기차를 타고 가는 나와 바깥세상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아버지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완행열차라는 게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1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곳을 그 열차로는 3시간만에 갈 수 있었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했던 말을 고하고 또 하시기 때문에 기차 이야기도 그냥 흘려 들었다.


스리랑카에서 탄 기차는 아버지가 말한 기차보다 더 느렸다. 완행열차를 타면서 그때 그분들이 느낀 감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차가 느리다 보니 선로를 지날 때마다 나는 철커덩 철커덩 소리도 좋았다. 지금 한국에 완행열차가 없듯이 아마 언젠가 스리랑카에도 50km를 가는데 4시간이 넘게 걸리는 이 느린 기차가 없어질 것이다. 산 속 터널을 지나는 반듯한 철도가 설치될 것이고, 그 위로 튼튼한 안전 문과 푹신한 의자가 있는 반듯한 기차가 달릴 것이다.


세상을 계속 변하고 더 빠르고 성능이 좋은 시설이 들어선다. 누구나 더 편하고 빠르고 안전한 걸 원하고 그런 것들이 세상에 필요하다. 낭만적이라고 하여 비효율적인 옛것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그럼에도 맘속 한 켠엔 그렇게 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언제 내가 다시 스리랑카에 돌아오게 될지는 모르겠다. 만약 그때 여길 지나가는 기차를 타게 된다면 편안하겠지만, 나의 여행을 채워준 기억들이 사라진 것 같아서 쓸쓸한 기분이 들 거 같다.


친구들을 만나면 예전에 비해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어릴 때 갖고 놀았던 장난감, 먹었던 음식, TV 프로그램 이야기도 많고 어릴 때 있었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그리고 네이버가 아닌 유튜브로 자료를 검색하고, 유투버를 좋아하고 핸드폰을 항상 달고 사는 아이들과 비교하게 된다. 우리의 이야기는 지금이 나쁘다고 말한다기보다는 그때가 그냥 그립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렇듯이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옛날에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도, 했던 말을 또 하시는 것도 그때 당신들의 삶을 채워준 것들을 정말 그리워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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