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에미코 상,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8년 차 직장인의 막연한 불안감이 시작되다
전력질주를 다해 코로나를 무찔러 보자. 기간은 딱 1년. (2021년 11월) 회사와 나 그리고 동료들은 이 마지막 혈투에 기꺼이 동참하겠노라 다짐했다. '정말 우리... 망할 수도 있나?' 물론 망하게 하진 않을 거다. 전력을 다해 싸워 이겨볼 거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멍청하게도 이제야 (이제야...?) 객관적으로 나, 회사, 일이 삼각관계에 얽혀 있음이 보였다. 그것도 엄~청 복잡하게. 30대, 8년 차 여성 직장인. 앞으로 나는 회사와 일 그리고 나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관계로 살아가야 할지 분명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래야 1년 동안 방향을 갖고 일하며, 성장하고, 그 뒤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폴로 머리를 기억해?
그러다 문득, 몇 년 전 다큐멘터리에서 본 아폴로 머리의 그녀가 떠올랐다. 퇴사 어쩌고 하는 자극적인 제목의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 그녀. 수많은 유명 퇴사자(퇴사를 소재로 유명인이 된 사람들)와 사뭇 달랐기에 그리고 멋진 '아폴로 머리'를 한 그녀였기에 오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다시금 이 시점에 그녀를 만나고 싶어 졌다. 마침 합정역 알라딘 중고서점에 그녀의 책 <퇴사하겠습니다>이 재고가 있어 냉큼 사버렸다. 얇은 책이었지만 오랜만에 무척 재밌게 완독 해버렸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퇴사하겠습니다>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저자 이자, (전) 아사히신문 기자다. 그녀는 첫 번째 책 <퇴사하겠습니다>에서 아사히 신문에서 28년을 일하고 50세에 돌연 퇴직을 선언. 조금만 더 버티면 두둑한 연금으로 편하게 살 수 있는 삶을 버리고 아깝게? 퇴사한 이유. 그리고 회사에서 일하는 것의 의미 등을 담았다.
에미코 상, 도대체 일은 뭘까요?
아무래도 평생 함께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에미코 : 일이란 자고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날마다 놀면서 지내다 보면, 틀림없이 인생은 무척 고독한 것이 되어버리겠지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일이란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회사에 들어가는 것도, 돈을 받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 그것은 놀이와 다릅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지해져야 합니다. 고생이 된다고 해서,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성취감도 느끼고, 동료도 생기고, 인간관계도 넓어집니다.
나 : 멋진 정의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찌 되었든 일이란 것은 누군가를 위한 것이네요. 그 속에서 나는 성취감을 느끼고 사람들을 만나고 또 배우고. 그것이 일이겠네요. 그동안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던 것 같아요. 즐겁게 남을 도울 수 있는 무언가. 그게 일이네요. 참 심플하네요.
퇴사 = 꼭 이직이 아니어도 괜찮을까요?
에미코 : 회사를 그만두면 무엇을 하든 무슨 명함을 내밀든 나는 자유입니다. 뮤지션이든 아티스트든 카메라맨이든, 뭐든 될 수 있습니다. 중략. 스스로 납득할 수만 있다면, 자기 명함은 자기 뜻대로 만드는 것 아닌가요? 중략. 제아무리 요령 없고 경험 짧은 중년의 여자라도 이것저것 따지지만 않는다면, 어디서든 아르바이트가 가능합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하나부터 배울 각오를 한다면, 직업 스킬은 조금씨 몸에 밸 것입니다.
나 : 맞아요. 우리 사회는 늘 현재에 살지 않고 미래에 사는 것만 같습니다. 중학교를 가기 위해 초등학교를 다니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고등학교를 다니고, 좋은 직장을 다니기 위해 대학교를 다니고, 더 좋은 회사를 위해 현재 회사를 다닙니다. (글만 적어도 숨이 차네요) 그러다 보니 직장인에게 퇴사준비란 구직 시장 혹은 소비자에게 더 잘 팔리는 나를 만드는 것으로 비칩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이나가키 에미코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돈'만 인생에서 지워버린다면 사실 퇴사 준비란 '진정한 사회인'이 되는 준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하는 일들이 결코 쓸모없단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든 내 명함을 내뜻대로 만든다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언젠가는 자의적, 타의적 퇴사를 할 수밖에 없겠죠.
그동안 전 회사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걘 도대체 나에게 뭐죠?
에미코 :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은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쓴 것도 슬픈 것도 모두 삼켜 앞으로 나아갈 힘을 단련하는 것을 뜻합니다. 회사에 취직하면 그것만으로도 누구나 영화 주인공 같은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역시 회사란 멋진 곳이지요? 중략. 회사는 나를 만들어 가는 곳이지, 내가 의존해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걸 알게 되면 회사만큼 멋진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수행이 끝났을 때 당신은 언제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습니다. 다만 '언젠가 회사를 졸업할 수 있는 자기를 만들 것'. 그것만큼은 정말 중요한 게 아닐까요.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1년 동안은 죽을 각오로 온 힘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무도 내게 부탁하지 않았지만, 목표는 '아사히신문을 구하라' 마지막 보은이라고 여기면 나라고 무엇이든 못할쏘냐.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 자체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습니다. 그만두지 않는 편이 좋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만두는 편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어떤 상황이든 그걸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단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이 회사와의 싸움이 됐건 은혜 갚음이 됐건 '할 만큼 했다'는 기분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결과가 어떠하든 주어진 곳에서 최선을 다할 것.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온갖 불합리함을 끝없이 건네주시는 회사라는 존재가, 그런 삶의 방식을 훈련시키기 위한 학교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아아, 회사여! 고마웠다! 지금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 : 공감이 많이 돼요. 왜냐면 저도 1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거든요. 전 '매드 엑스 컴퍼니를 구하라!' 마지막 보은이라고 여기며 일해야겠어요. 1년 뒤, 아 정말 할 만큼 했다. 정말 고마웠다. 멋진 어른이 되도록 날 강하게 키워줬구나. 감사히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길! '00에 00만큼의 연봉을 더 받고 이직했어'가 아니라, 내 명함은 내가 만드는 멋진 사회인이 될 수 있길!
본 글은 이나가키 에미코 <퇴사하겠습니다> 책의 발췌 내용을 가상 인터뷰로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