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7시. 오늘 방에 불을 켠 시간이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비 내리는 어둑어둑한 하늘과 커튼 덕에 방은 평소보다 더 어두웠다. 어두운 방 안과 빗소리는 나를 침전시켰다. 빗소리가 깊어질수록 침대를 뚫고 끝까지 내려갈 것만 같았다. 이런 감정의 흐름을 끊어야 한다고 판단해서였을까. 잠을 깨던 도중에 유튜브 영상을 틀었다. 빗소리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영상이 시작된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눈은 감겼다. 하지만 보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영상이 끝나 있으면 계속해서 새로운 영상을 재생시켰다.
밤 7시에 방의 불을 켠 나태함은 저녁 식사를 결정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직접 요리하는 걸 포기하고 배달 음식을 시키기로 결정. 그런데 딱히 끌리는 메뉴가 없다. 오전에 잠깐 일어나 끓여먹은 라면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배도 그다지 고프지 않았다. 허기짐은 건강한 몸 상태를 증명하곤 하는데 지금 내 몸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선반에 있는 바나나를 하나 꺼냈다. 선반 밑 싱크대에는 오전에 먹고 설거지하지 않은 냄비와 그릇이 널부러져 있었다. 남아있는 면발은 우동사리 수준으로 퉁퉁 부었다. 한 숨을 내쉬며 바나나를 먹었다. 그러면서 노트북을 켰다. 노트북 옆에 놓인 떡이 눈에 들어왔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 세 시간 반 뒤면 월요일, 또다시 무기력함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