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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홍 Jan 12. 2022

소고기 야채죽과 고양이 세 마리

새로운 겨울나기를 앞두고

오늘은 소고기 야채죽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니 발밑에 눈이 쌓여있었다. 날이 추워진다더니 밤새 내린 눈이 소복하다.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보니 지난 겨울이 떠오른다.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던 날을 지나 다시 겨울 안에 있다. 작년 이 시간이면 동태눈을 한 채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겠지. 그리고 30분쯤 지나면 회사 메신저에 이렇게 쳤을 것이다.


"오늘 점심 따로 먹습니다. 맛점하세요!!"


회사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10분 전 나만의 점심시간이 시작된다. 이른 점심시간엔 엘레베이터가 1분도 안 되어서 20층을 오르내린다. 회사 점심시간은 12시 30분이었기 때문에, 건물 앞에는 다른 회사 사람들의 들뜬 기운이 흐른다. 오늘의 메뉴는 아침 지하철에 고른 '소고기 야채죽'이다. 혼자 하는 메뉴 고민은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머릿속엔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을 떠올리며 망설임 없이 죽집으로 향한다.




퇴사하기 몇 달 전부터는 일주일에 두 세번 혼밥을 시작했다. 사실 퇴사를 마음 먹기 전부터 이미 그랬다. 팀은 두 줄의 책상을 두고 모여 앉아있었지만 다들 따로였다. 1년 내내 같이 하는 일은 없었으며, 각자가 각자의 일을 하느라 하루 종일 메신저에 업무 얘기가 올라오지 않는 일도 허다했다. 그나마 있던 얕은 교류마저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무실에는 타닥거리는 키보드와 딸깍거리는 마우스 소리만 들려왔다. 일도 사람도 마음이 붙어있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춥고 건조한 겨울이었다. 


"식사하러 가시죠~"


점심 시간을 알리는 건 대부분 A의 몫이었다. 식사는 조용하고 빠르게 이루어진다. 밥을 빨리 먹는 만큼 휴식 시간이 늘어난다. 팀끼리 모여 내려가서 한마디도 없이 밥에 집중한다. 같이 먹고 있지만 같이 먹고 있지 않다. 아무리 봐도 혼자서 먹는 점심시간이 좋지 않은 점이 부족하지 않았다. 출근했는데 점심밥을 내 돈 내고 먹는다는 조금 억울한 점 빼고는 말이다. 밥값이라고 해봤자 10분 만에 밥을 욱여넣은 더부룩한 속과 아무 말도 없는 푸석한 분위기에 비하면 싸디싼 가격이었다. 살기 위해 기계적으로 밥을 먹는다는 기분은 언제나 고역이었다. 그렇게 오후 업무를 위한 연료 충전과 뱃살 사이에서 한 주걱 덜어낸 밥을 먹었다. 문득 나만의 점심시간은 왠지 모르게 든든하게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기왕 사비를 내서 먹는 점심이니 부실하게 먹기 아까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세 마리와 나의 겨울


푸짐한 죽을 한 그릇 비우고 나니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남은 점심시간엔 늘 하던 루틴을 시작했다. 회사 건물 근처를 여유롭게 산책하는 일이다. 조금씩 들어가는 나이와 쌓여가는 아랫배에 진지해지면서 일단 몸을 움직이자는 생각이었다. 계단을 올라 사무실에 돌아가자는 다짐은 20층이라는 익숙해질 수 없는 높이에 한 달이 채 안 되어 그만두었다(그래도 무려 한 달이나 했다!). 그 뒤로는 생각을 바꿔 산책을 시작했다. 15분 정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걷고 있으면 머릿속도 정리되고 몸도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산책코스의 마지막은 언제나 회사 옆 건물 뒤편이었다. 그곳에 나를 기다리는 것이 었었다.


오늘도 세 마리의 고양이가 각자 스타일대로 식빵을 굽고 있었다(사실 고양이들은 나를 기다린 적이 없다). 고양이들이 자주 자리하던 풀밭 덤불 속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고양이들은 햇빛의 희미한 따스함을 온몸으로 쐬고 있었다. 이렇게 추운 겨울을 길 위에서 살아가는 고양이들에 비하면, 곧 세상 밖으로 던져질 나는 초라해 보였다. 그것도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로 탈출만을 위한 용기였다. 고양이 세 마리는 겨울과 싸우지 않고 그저 태연하게 식빵을 굽고 있었다. 얼마 뒤면 이 친구들과도 이별이었다. 점심 일광욕을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히 사진을 찍은 후, 낮잠으로 점심시간을 마무리하려 발걸음을 재촉했다.




세상이 굴러가는 톱니바퀴 사이에는 틈이 있고, 지금 나는 틈 사이에서 빠져버린 겨울을 보내고 있다. 틈 속 세계는 바깥세상과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지금이 인생의 겨울이라면, 추운 계절을 살아내는 건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도약을 위한 웅크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양이들은 아직 그 자리에서 단단히 웅크리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하루였다.


우리는 겨울을 삶 안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 캐서린 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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