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시간에 배운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고요. 같은 제목의 가수 마야의 노랫말이 생각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소월은 그리움의 회한을 노래하는 우리 시사의 대표적인 시인인데요. 30대가 되어서 그의 시를 다시 읽어보니 「진달래 꽃」이 아니더라도 가슴 저린 시들이 많더라고요. 김소월의 시적 출발은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이었다고 하는데요.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문장에 스며 수십 년이 흘러 저에게 닿습니다. 그중 「개여울」라는 시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데요. 읽어보시겠어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김소월 「개여울」전문
김소월 지음, 홍용희 엮음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2020, 교보문고)
'파릇한 풀포기'와 '봄바람'에 '해적이는 잔물'들을 상상해보세요. 겨울을 지나 깨어나는 봄의 이미지가 그려지네요. 개여울(개울에서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이 보이시나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의 텅 빈 얼굴. 시에서 화자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라고 묻고 있지만, 어쩌면 자신에게 말을 거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주 가지는 안'겠다는 약속은 '잊지 말라는 부탁'이라고 믿게 된 사람의 짙은 외로움이 시에서 흐릅니다.
19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백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33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김소월 시인. 나라를 빼앗긴 시절에 살다 간 위대한 민족 시인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슬픔에 어찌하지 못하는 젊은 청년을 봅니다. 그는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냈던 걸까요. 어디선가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이 글을 쓰면서 아이유가 부른 개여울을 반복해서 들었어요. 개여울도 노래가 된 시 중에 하나거든요. 1970년대 가수 정미조가 부른 원곡도 좋지만, 아이유가 재해석해서 부른 곡에 시인의 슬픔이 더 많이 배어 있는 것 같아요. 노래를 듣고 다시 한번 시를 읽어보시기를 바라요. 시에 담긴 멜로디를 더 깊이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생각하시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