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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Oct 21. 2017

2년 내내 회사 체육대회에서 도망쳤다

의도하지 않은 보이콧, 우울해서 도망쳤다고 하면 변명처럼 들릴까

나는 탈주자입니다. 여러분의 멸시를 받겠읍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아마 날 이상하게 보겠지. 많은 사람이 사회 부적응자나 찌질한 은둔자로 여길 것이다. 회사 행사에서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도망쳤다니. 와하하하. 비웃음과 놀림의 대상이 될 게 뻔하다. 이상하게 보일까 봐 늘 하지 못했던 얘기하지 못했던 걸 여기 글로 적어본다.


2년 연속 회사 체육대회에서 도망쳤다. 지난해에는 몸이 안 좋다고 둘러댄 뒤 조퇴했지만, 그것도 좋게 말해서 조퇴였지 사실상 도망이었다. 매번 감정이 밑바닥까지 내려앉아서, 우울증이 도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의도하지 않은 '뜻밖의 탈주', 우울해서 도망쳤다고 하면 변명처럼 들릴까. 그래도 정말 그랬던 걸 어떡하나.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중 한 장면.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초반부에서 마츠코가 자전거 타고 도망치던 장면과 다를 바 없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사람이라 버스를 타고 말았다. 따릉이를 이용했다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을 텐데.


오전에는 사무실에 출근해서 근무하다가, 회사 체육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하던 도중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며칠 전부터 체육대회에 가기 싫다고 생각했는데, 사내 동료들과 걸어가던 도중 '도저히 못 가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번졌다.


'가기 싫다'는 생각이 '가지 말자'는 실행으로 옮겨진 데는 머릿속에 '가지 말자. 가지 말아야 한다. 이런 우울한 기분으로 가봤자 짜증만 날 것이고 결국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하루까지 망치게 될 수 있다'는 확신이 큰 역할을 했다. 걸으면서 체육대회 도중 누군가에게 크게 짜증내는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상황을 못 견디고 뛰쳐나온 이유는 뭐였을까? 늘 그렇듯이 누군가 내 삶의 선택이나 답을 대신 찾아주지는 않으므로 결국 내가 되짚으며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맞다. 울면서 생일상을 엎는 그 짤 맞다.

생각해보면 나는 예전부터 모임에 가면 늘 이유를 알 수 없이 불쾌해졌다. 아주 어릴 적부터... 마치 RPG 게임에서 독에 중독되어 HP(체력)가 1초마다 1씩 깎이는 (-1, -1, -1...) 상태처럼 계속 기분이 가라앉는 것이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내 낮은 자존감 때문에, 말도 어눌하고 무엇 하나 주목받을 요소가 없다는 생각에 기분이 처지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난 혼자 방구석에 처박히는 집돌이가 된 건가...


나는 그래서 늘 모임이 싫었다. 지난해부터 우울증이 심해진 이후로는 그래서 더욱 모임에 가지 않는 편이다. 사람들이 다들 기분 좋게 웃고 떠드는데 나만 거기 끼어들지 못하는 상황, 소외감이 견디지 못하게 괴롭다.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좋거나 나쁘다, 혹은 나에게 우호적이거나 적대적이라는 요소를 말하는 게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난 술자리에서도 나는 소외감을 심하게 느끼는데, 어린 시절부터 쌓인 어떤 콤플렉스의 발현인 것 같다. 이 부분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찬찬히 돌아보면서 찾아봐야겠다.


그래서 누군가와 단둘이, 혹은 셋이서 만나는 정도 외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서 지내온 편이다. 이런 나에게 회식이나 회사 행사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상황인 셈이다. 매 순간이 가시방석이고, 잘 웃고 떠들다가 돌아온다고 해도 미뤄놨던 자괴감이 일시에 몰려올 때도 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피하려고 한다.


거기다 다른 요인도 있다. 난 어릴적부터 체육대회가 싫었다. 운동신경도 둔한 편이라 체육 과목조차 싫었는데 체육대회라니.내가 참가한 종목에서 난 늘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거나 꼴찌로 결승선을 밟으면서 자주 손가락질과 비웃음을 사곤 했다.


최근 꾸준히 운동을 즐겨하고 있지만, 그것도 혼자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조용히 할 때 즐거운 정도다. 팀으로 하는 운동을 즐겁게 한 기억이 많지 않다. 20대 초중반 군대에서 축구를 하거나 회사에서 풋살 동호회에 가입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물론 의문은 항상 든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피하기만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계속 이렇게 나이 들다가 언젠가 양로원에서 다들 웃고 즐기며 벽에 똥칠로 그라피티 하는데 그것마저 못 견디고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되면 어쩌지?


다르게 생각해보면 반문도 들기 마련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걸 늘 부딪히면서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나? 그럴 필요도 의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대부분의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대부분 그럴 것이다. 이게 나인 걸 어떡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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