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모자(母子)

습관성 괜찮아 증후군 #4

by 글민

식구가 사는 우리 집 화장실 옆 구석진 곳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원래는 내가 사용할 방이었지만 열악한 환경덕에 그 방이 내 방이 되기까지는 꽤 먼 미래의 일로 미루어두고, 그 방은 엄마의 작은 작업실로 이용되곤 했다.


바닥엔 잘린 천 조각들이 바람결처럼 흩어져 있었고, 벽면에는 무채색의 실이 빗살무늬처럼 꽂혀 있었다. 창문은 항상 꽉 닫혀 있고, 좁은 방 공간은 실밥 묻은 먼지와 재봉틀의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 메웠다.


'드륵- 드르륵-'


엄마는 그 방에서 하루 열두 시간이 넘도록 일하셨다.


마치 시간의 톱니처럼, 몸을 맡긴 채 우리 집 식탁만큼이나 커다란 그 재봉틀 기계와 한 몸이 된 것처럼. 등을 구부리고 손가락을 바늘 끝에 밀착시키고, 잠깐 한숨 돌리는 시간에도 자투리 천을 정리하거나 재단선을 그렸다.


내가 막 하루를 시작할 때쯤이면 엄마는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보내고 있을 시간이었다. 나의 하루 일과는 엄마의 커피를 타다 드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검은 찻잔에 설탕 두 스푼, 푸리마 두 스푼. 커피의 쓴 맛에 가려 달지 않을 것 같아, 종종 한 스푼씩 더 담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타다 주는 커피를 좋아했다. 작업량이 많아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 뜨거운 걸, 한 입에 털어 넣고는 다시 작업에 몰두하는 엄마가 지금과는 다른 이유로 멋있게 보였다.


"엄마, 안 피곤해?"


내가 그렇게 물으면 엄마는 늘 같은 말을 되뇌었다.


"괜찮아."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은 엄마의 습관이자 주문처럼 들렸다. 감정과 피로를 봉인하는 일종의 마법 같은 말. 그래서 언젠가는 엄마가 그 마법을 깨고, "조금 쉴까?" 하면서 내 옆에서 잠시 쉬기를 바랐다.


오후 세 시가 넘으면, 방 안의 공기는 조금씩 무거워졌다.


여름엔 땀이 실밥에 닿아 들러붙었고, 겨울엔 손끝이 갈라졌다. 나는 그런 시간에 슬그머니 엄마 곁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엄마, 내가 뭐 도와줄까?"


엄마는 대답 대신, 원단 뭉텅이를 내 쪽으로 쓰윽 밀거나, 풀어야 하는 실뭉치를 내 조그마한 손에 쥐어줬다. 그럴 때면 나는 원단의 앞 뒷면을 맞추는 짝 맞추기 놀이라던지, 리드줄을 착용한 강아지 산책을 하듯 실타래를 푸는 놀이를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일을 돕는다기보다는,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고 싶었다. 엄마 옆에.


몇 시간씩 묵묵히 이 많은 원단과의 싸움을 하던 엄마는 내 재잘거림을 반가워했다.


나는 오늘 봤던 애니메이션 이야기, 내가 본 책의 이야기, 오늘 공부한 천자문 외우기 등을 쉴 새 없이 떠들어댔고 그 순간 내 이야기들은 엄마의 세상이 되었다.


두어 시간이 흘렀을까? 그러다 간혹, 나는 불쑥 일어나 안방으로 달려가곤 했다. 내가 재미있어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시간이었고, 어쩌면 그땐 그게 나의 유일한 일탈이었다. 뒷걸음질 치며 엄마 눈치를 보고 있으면 엄마는 아쉬워하면서도 이내 말했다.


"그래, 괜찮아. 보고 이따 와서 마저 얘기해 줘."


그 말도 참 익숙했다. 그 시절, 엄마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괜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천 조각이 틀어져도 괜찮고, 바늘 끝이 손가락을 찔러도 괜찮고, 내가 옆에 없다 해도 괜찮았다.


그렇게 엄마는, 괜찮지 않은 매 순간을 참 잘 괜찮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나를 위한 게 아니었다. 아마도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 같은 무언가이지 않았을까. 마치 다리가 아픈 아이가 걷다 멈춰 서며 '괜찮아'를 되뇌듯.


아무도 붙잡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던 사람의 말투였다.




우리 집에 아빠라는 존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시내버스 운전을 하던 아빠는 하루를 가득 일하면 그다음 날 하루를 통째로 쉬는 근무 방식이었는데, 출근하는 날에는 내가 일어나서 잠에 들기까지 아빠가 오지 않았고 쉬는 날이면 집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자거나 꼭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셨다.


그래서 내 어릴 적 기억의 대부분은 엄마로 갇혀있다.


연약하지만 누구보다 강하고, 둔하지만 누구보다 손이 빠른 사람. 먼지가 풀풀 날리는 방에서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던 사람. 엄마.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는 하교 후, 책가방을 풀어놓고 곧장 엄마에게 달려가서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럴 때면 엄마의 세계는 시시콜콜한 애니메이션 세계가 아닌, 어린 아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로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는 아들이 커서 이런 이야기꾼이 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받아쓰기 100점 받아왔어."

"오늘 발표했는데 선생님한테 칭찬받았어."

"미술 시간에 짝꿍이 색연필을 빌려줬어."


엄마의 손과 눈은 재봉틀과 원단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엄마는 누구보다 내 말을 재미있게 듣고 있었다. 내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오늘 친구들이 나한테 장난쳤어."


"장난? 무슨 장난?"


"음.. 조금 심한 장난인데, 나를 여자화장실 쪽으로 밀면서 변태라고 했어."


그 순간, 재봉틀 소리가 멈추고 고요한 침묵이 공기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한가운데로 낯선 단어가 툭 떨어졌다.

.

.

.

'변태'


내가 그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단어가 엄마에게 어떻게 꽂혔는지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장난이야?"


나는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위축되었고, 얼른 덧붙였다.


"아, 으응. 장난. 나도 그래서 그냥 웃고 말았어. 괜찮아!"


그 말은 진심이었다. 당시엔 사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장난을 치곤 했으니. 하지만 엄마에게는 달랐다.


엄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재봉틀에서 일어나더니, 허리에 손을 얹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항상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이 단 하나의 이유로 분노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어린 시절 나에겐 꽤 큰 충격이었다.


"가만 안 둬, 학교에 전화해야겠네."

"애 이름이 뭐야?"

"선생님은 뭘 하셨대?"


그날의 엄마는 정말 괜찮지 않았다.


엄마에게 익숙한 그 말은 표정에도, 말투에도, 목소리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분노는 온전히 나를 위한 분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나는 오히려 엄마를 안심시켜야만 했다.


"진짜 괜찮다니까. 그냥 원래 자주 치던 장난이어서 그런 거야."

"다음부터 안 그럴 거야. 내가 하지 말라고 말했어!"


내가 정말 100% 괜찮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너무 괜찮지 않아 보여서 내가 괜찮다고 말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았다.


'괜찮아'라는 말은 꼭 내가 상처받았을 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나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기꺼이 꺼낼 수 있어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러니까 나는 그 말을 엄마에게서 배웠고, 그 말을 다시 엄마에게 건넸다. 우리 둘은 같은 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아"라고 했고,

나는 엄마를 진정시키기 위해 "괜찮아"라고 했다.


지금의 나는 가끔씩 그 시절 재봉틀 앞에 앉아서 늘 피로가 가득했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곤 한다.


나는 그 시절의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늘 무언가를 참고, 또 참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가득 남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내가 풀어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 봤다.


위협.


그 좁고 작은 어깨 위에 얹힌 인생의 무게를 생각하면, 하나뿐인 아들이 '변태'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게 엄마에게는 얼마나 큰 칼이었을까. 내게는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기억일지 모르지만.


그런 엄마를 보고 나는 '괜찮아'라고 했다.


그날 엄마는 처음으로 괜찮지 않은 척을 잘 못했고 나는 엄마에게서 괜찮은 척을 너무 잘 배웠다.




약 2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도 누군가에게 '괜찮냐'라고 묻곤 한다.

그리고 또, '괜찮아'라고 답하기도 한다. 정말 괜찮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재봉틀 옆에서 조용히 이어지던 엄마와 나만의 언어.


그 말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렸다.



※ '습관성 괜찮아 증후군'의 출간 계획으로 인해, 다음 목차부터는 '멤버십 글'로 발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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