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성 괜찮아 증후군 #3
나는 거짓말을 꽤 잘하는 사람이다.
물론 숨 막히는 반전이 있는 스릴러 영화 속에 나올법한 그런 거짓말은 아니다. 그저 일상에 섞여 있는,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는 그런 류의 거짓말. 말끝을 흐리거나, 의도적으로 말을 덧붙이거나, 상황을 둥글게 정리하는 말을 능숙하게 골라서 사용하곤 한다.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있을법한 그런 이야기. 가령,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먼저 만난 친구에게 "야, 오늘 ○○이 못 온대. 집에 급한 일 생겼다던데?"라거나, 괜히 어느 순간 "톰과 제리에서 '제리'가 원래 그냥 쥐가 아니라 햄스터가 모티브인 거 알고 있어?" 하는 등, 그럴듯한 거짓말로 주변 사람을 골리고 나서는 '방금 한 말은 진짜 같았다.' 하고 생각하곤 한다. 정말 다행히 내 주변인들은 이런 내 '거짓말 농담'을 들을 때마다 아재개그를 들을 때처럼 짜증을 부리면서도 재미있게 받아준다.
내가 이런 장난을 친지는 꽤 오래되었다. 초등학생 무렵쯤, 우리 동네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는 '얼마나 말을 잘하는가', '얼마나 웃기게 말하는가'하는 소위 말해서 '말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나아가서 더 대담하게 어른들에게까지 이런 말빨을 행사할 수 있으면 그 친구는 곧장 학교 남자애들 사이에서 '스타'가 되어 있었다.
이런 과거 때문일까? 말과 농담, 과장과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섞여버린 유년기를 지내며 나는 '말'이라는 도구를 조금씩 교묘하게 익혀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남의 거짓말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차리는 능력도 얻었다.
특히 툭 던지는 말속에서 논리적 모순을 찾아내거나, 왠지 맥락과 감정선이 맞지 않는 대답을 들었을 때 단박에 눈치챌 수 있게 되었다.
말을 하다 살짝 멈칫하는 타이밍, 억지로 만들어낸 표정, 급하게 덧붙이는 설명,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나는 그런 것들을 빠르게 감지해 냈다.
'아, 저건 진심이 아니다.'
'저 사람, 무언가를 숨기고 있구나.'
그리고 그것이 마치 특별한 능력처럼 느껴졌다. 다들 속아도 나는 속지 않는 것 같은 기분.
'나는 거짓말을 잘 만들어내는 동시에, 거짓말을 잘 간파하는 사람이다.'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학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들떠 있던 그 시기, 나는 조금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서로 부모님까지 알고 지낼 정도로 가장 오래되고 친한 친구. 그 친구는 뱃멀미가 심해서 수학여행을 포기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나도 그 친구도 둘 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그냥 우리 둘 다 가지 말까?"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정말 많은 고민이 됐었다. 학창 시절과 수학여행. 이 단어가 품은 의미가 사춘기 남자아이였던 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생애 처음 타보는 비행기, 처음 내디뎌보는 제주도 땅. 친구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숙소에서 밤새 수다를 떨고, 수평선이 보이는 제주 바다를 걷는 상상. 모든 것들이 너무 설레는 일이었지만 가장 친구를 두고 혼자 여행을 즐긴다는 건 불편했다.
결국 학교에도, 집에도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누군가 이유를 물으면 그냥 이리저리 둘러댔다. 내가 자신 있어하는 거짓말로. 그러다 어느 날은 담임 선생님께서 여행 경비 전액을 지원해 주겠다고 하셨다.
"그래도 수학여행은 같이 갔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제안은 막대사탕보다 달콤했다. 어쩌면 부모님께 부담을 덜어들이고도 다녀올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나는 며칠 동안 마음앓이를 하며 밤에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계속 고민했다.
"너 진짜 괜찮아?"
함께 있던 친구가 물었다.
"나는 어차피 못 가는데, 너까지 빠지는 건 이상하잖아."
그때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아냐, 나 괜찮아. 진짜야."
그 대답은, 내가 제일 많이 해본 거짓말이었다. 그래서 더 익숙하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수학여행 참가서를 제출하기 하루 전이었을까? 그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온 날, 잠시 내가 엄마 심부름을 갔었을 때 그 친구가 말했다고 했다.
"얘, 수학여행 진짜 가고 싶은데… 저 때문에 안 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딘가 들킨 기분. 아무도 모를 거라 믿었던 마음 한 조각을 가장 가까운 친구가 조용히 꺼내 보여준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괜찮아'는 어쩌면 너무 말라있었다. 그 안엔 설렘도, 갈등도, 눈치도 다 들어 있었는데, 내가 뱉었던 그 말은 이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는 얇은 담요 같은 거였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나는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결국 그때 떠났던 수학여행은 내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내가 상상했던 제주도의 바람, 부서지며 쏟아지던 파도 소리,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친구들과 몸을 실었던 첫 비행기. 그 모든 장면들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은 건 그 친구의 조심스러운 말 한마디였다.
"얘, 수학여행 진짜 가고 싶은데… 저 때문에 안 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부끄러웠다.
단단히 봉인해 둔 마음이, 누군가의 눈에 그렇게 또렷이 읽혔다는 사실이. 마치 한겨울 거리에 발가벗겨진 채로 홀로 서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숨기고 싶었던 마음을 들여다보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게. 거짓말 너머의 진심을 알아봐 주는 사람.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어두운 곳에서 스며든 빛처럼 마음이 환해졌다.
나는 늘 말의 맥을 끌어당기며, 그럴듯한 거짓말로 상황을 매만졌다. 표정을 짓고, 이야기를 덧붙이고, 진심을 포장하는 데 능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포장된 말들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내 거짓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주 들켜 있었다. 내가 내뱉은 말의 온도, 어색한 공기, 너무 빨리 준비된 설명. 내가 상대의 거짓말을 읽어내듯, 상대도 나의 거짓말을 읽어냈던 것이다.
다만, 모른 척해줬을 뿐. 서로의 체면을 위해, 혹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괜찮아.' 나는 그 말을 참 자주 한다. 가장 많이, 가장 능숙하게 거짓말하는 단어. 그 말 한편엔 '그래, 이 정도는 괜찮아야지.' 하는 체념도, '괜찮아지고 싶은데.' 하는 바람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그 말로 나를 감추는 데 익숙해졌고, 그 말 뒤에 마음을 숨기며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괜찮아'라는 말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낀 건, 아주 오래전부터였던 것 같다.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도 전, 어릴 적부터 자주 듣던 말이었다.
평생 동안 나보다 '괜찮아'라는 말을 훨씬 더 많이 내뱉었을 사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