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습니다. 해볼게요.

습관성 괜찮아 증후군 #1

by 글민


리 사무실은 항상 적막하다. 인원이 몇 없기도 하거니와 대화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요 속에서 각자의 업무를 맡은 소리, 이를테면 키보드를 타닥 거리는 소리라던지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 간혹 텀블러에 담긴 얼음과 얼음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공기는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듯 무겁고, 한 여름 장마철 날씨처럼 눅눅했다.


"이번 주, 안 바쁘면 혼자 한 번 다녀와보는 게 어때요?"


상사의 말투는 깃털처럼 가벼웠지만 그 끝엔 화살촉이 있는 듯, 날카롭게만 들렸다.

'저 화살을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맞을까, 비껴 나볼까, 아니면 맨손으로 잡아야 하나?'

고민이 무색하게도 화살은 위협조차 되지 않게 아주 천천히 날아와 너무나 가볍고 조용하게 내 앞에 툭 떨어졌다.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중요하진 않으니까. 혼자 출장도 나가면서 바람도 쐬고, 경험도 쌓고···"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동시에 날 보는 게 느껴졌다. 짧은 시간 동안 머리가 바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쫄 필요가 있나? 그냥 경험 삼아 다녀오면 되겠지. 나는 거의 말을 자르듯 급히 입을 열었다.


"네! 괜찮습니다. 해볼게요!"


말을 꺼낸 건 분명 나였는데, 목소리는 내 의지보다 먼저 뛰쳐나온 것 같았다. 내 표정은 늘 그렇듯 익숙하게 웃고 있었고, 손은 이미 펜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내가 내뱉은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묻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해볼게요.'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퇴근 후, 차에 앉아 룸미러 안에 갇혀있는 나를 잠깐 들여다봤다. 웃고 있는 얼굴. 내 웃음은 언제쯤부터 이렇게 능숙해진 걸까.


'괜찮습니다.'

나는 오늘도 그 말을 꺼냈다. 근데, 진짜로 괜찮은 걸까? 아니 뭐, 안 괜찮을 건 없다. 그냥 출장 한 번 다녀오는 것뿐이니. 다만 내가 궁금한 건 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이렇게 능숙하게 내뱉게 된 건지 뿐이다.



'왜 나는 항상 괜찮다고 말하지?'


처음엔 그렇게까지 많이 말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깊은 곳에서부터 튀어나와 입천장을 타고 입술로 떨어지는 그 말이 내게는 일종의 '주문'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사실 내게 있어서 '괜찮다'라는 것은 말을 시작하기 전 목을 가다듬는 '음...'이나 고민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어...'와 같이 아무 의미 없는 단어가 된 지 오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정말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




그로부터 며칠 뒤, 결국 혼자서 지방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혹시나 동료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최대한 계획하고 준비한 채로 출발했다. 그리고 뜻밖에도 내 걱정은 괜한 생각이었던 것처럼 모든 일이 무난하게 흘렀다. 날씨는 화창했고, 도로도 막히지 않았다. 늦은 점심으로 먹은 제육덮밥도 맛있었다. 길에서 마주한 아이는 부모님 사이에서 행복함 가득한 얼굴이었고 곳곳마다 피어있는 꽃도 아름다웠다.


말 그대로, 괜찮았다.



사무실로 복귀한 다음 날, 상사가 물었다.


"출장 어땠어요?"


나는 웃으며,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했다.


"괜찮았어요."


그 말이 이번엔 정말 사실이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순간, 내 심장은 쿡 하고 찔리는 듯했다. 진짜 괜찮았던 하루였는데, 괜찮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왠지 거짓말을 한 기분이 들었다. 괜찮았다고 말하는 내가 낯설었다.


그날 퇴근길, 오랜만에 유리창 너머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점점 흐릿해져 가는 구름이 목적지를 정해놓지 않은 채 그저 유유히 흘러갔다. 하루에 세 번씩 하늘을 바라보면 그 사람은 '여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로 하루에 세 번은 바라보려 노력하는데, 성공한 날은 그리 많지 않다. 하루 종일 나는 단 한 번도 울컥하지 않았고, 한숨도 나오지 않았고, 무너지지도 않았다.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 그날들을 다시 떠올려 봤다. 그 순간엔 몰랐지만, 나는 무던히도 '괜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고서 속 문장들도, 카톡 말미에 붙인 이모지도, 심지어 목소리 끝의 톤까지도... 어디 하나 흐트러진 데가 없었다. 그 완벽한 평온함이 어색했다.


거의 눕다시피 했던 자세를 다시 고쳐 앉았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 출장 중에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넘겨봤다. 평소라면 보기 힘든 예쁜 꽃,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이는 가족, 청량함이 느껴지는 공원의 호수. 사진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웠고 따뜻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행복만을 담으려 했구나.


나는 '괜찮은 사람'의 표정을 알고 있었고, 계속해서 그 표정을 내 얼굴에 담고 있었다. 사실 정말 괜찮은 하루였던 날에도 나는 스스로가 '연기' 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저, 이 말이 처음부터 이런 의미였던 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다 ‘괜찮아’라는 말로 연기를 하게 되었을까.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