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성 괜찮아 증후군 #2
지금에서야 내 주변 사람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어린 시절 나는, 흔히 말하는 '울보'였다.
그 누구보다 감정 변화에 예민하고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그래서 꼭 슬플 때뿐만 아니라 기쁘거나 감사한 일이 생겼을 때 등 급격하게 감정이 변하면 금세 눈가에 고인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던 어린아이들은 단지 그게 재미있었던 것뿐이었다.
"야, 얘 또 운다!"
간혹, 내가 감정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때면 친구들은 어김없이 나를 놀려댔다. 물론, 그 아이들도 장난이었고 나 또한 그 아이들이 장난으로 그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지, 어릴 적 친구들은 내 우는 모습을 보기 위해 습관처럼 내게 짓궂은 장난을 걸었다.
복도를 지나갈 때, 조용히 뒤로 와서는 나를 여자화장실에 밀어 넣고 소위 '변태'라고 놀리거나, 내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며 놀리곤 했다. 그런 장난들이 나를 속상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렇게 참아내려 하다가도 결국 감정의 힘에 짓눌려 눈물이 터져 나오는 일이 반복됐다.
어쩌면, 나는 어릴 적에 선생님들의 골칫덩어리 학생 중 한 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 이 아이가 왜 우는지 이해가 가기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나는 늘 똑같이 울었고, 내 울음은 선생님을 부르는 신호가 되었다.
"왜 울어, 또?"
선생님의 목소리는 때론 무심했고, 때론 피곤해 보였다.
그리고 언제나 같은 말이 따라왔다.
"얘들아, 잘못했으면 미안하다고 해야지."
그러면 언제나 그렇듯 내게 짓궂은 장난을 치던 친구들이 몰려와 내게 '미안해'하고 사과하곤 했고 선생님은 내 쪽을 돌아보며, "괜찮다고 해줄 수 있지?" 하고 얘기했다.
괜찮지 않았다.
정말, 괜찮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서운함을 느낀다든지, 원망한다든지 그런 면에서 괜찮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아직 감정이 추스러지지 않아서, 그니까 바꿔 말하면 나 스스로에 대해서 아직 괜찮지 않은 것이었다. 사과를 받는다는 건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릴 때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릴 적, 나와 그때의 친구들은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는 법을 배운 게 아니었다.
우리가 배운 것, 그것은 상황을 마무리 짓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울음을 삼킨 채, 늘 같은 대사를 말했다.
"... 괜찮아."
그건 내 감정이 아니라, 교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선생님이 요구한 일종의 '역할'이었다.
드라마 속에서 악역이었던 자가 과거의 사연을 털어내고, 회개하고, 주인공 일당들에게 사과하는 어떤 클리셰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괜찮아'라고 말해야 그 상황이 끝났고, 수업이 다시 시작됐고, 친구들은 다시 웃었고, 선생님은 안도했다. 그렇게 나는 '괜찮다'는 말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감정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라, 감정을 접는 말로.
그 단어. 그 말은,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느냐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무엇보다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그 어떤 단어보다 실체적인 속성을 지닌 단어. 그냥 상황을 정리해야 할 때, 모두가 어색해진 침묵을 정리해 줄 말이 필요할 때, 사람들에게 다시 웃음을 지어줄 때.
고요 속에서 순간적으로 멈춰 선 시간에게 "괜찮아"하고 신호를 주면 시간은 그제야 다시 흘러갔다.
"괜찮아.",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아요."
어느 순간부터 이 말들은 제일 먼저 내 입으로 달려와 거머리처럼 철썩 붙었다. 이게 점점 습관이 되다가 결국에는 내 감정보다 '상대의 안도'가 더 중요해졌다. 상대방이 내게 사과할 때, 혹여나 그 사람이 더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내가 먼저 말하게 되는 순간들.
"괜찮아. 진짜 괜찮아."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정신없이 공놀이를 하던 중 공이 미끄럼틀 밑으로 굴러들어갔다. 공을 꺼내려 신나게 달려가다 그만 미끄럼틀의 철제 지붕 아래쪽에 정수리를 세게 부딪혔다. 머리가 순간 띵- 했다. 뾰족한 게 아니라 어떤 둔탁한 것에 박은 느낌이어서 머리를 두어 번 문질문질하고는 공을 꺼내서 다시 신나게 공을 차기 시작했다.
"야, 3대 0이다!"
한 골을 넣고 웃으며 뒤를 돌아봤는데, 같이 공놀이하던 동생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형, 머리에서 피..."
동생의 말대로 내 머리에서는 정말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도 생각보다 심하게. 열심히 뛰었던 탓에 땀인 줄 알았는데, 어느샌가 내 흰 반팔티는 빨갛게 물들고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곧장 집으로 뛰어갔다.
'뭐라고 말하지? 엄마가 화낼 텐데.' 하고 생각하며. 하지만 집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수건으로 대충 피를 닦고 거실 바닥에 누웠다. 어릴 적엔 나도 엄마도 휴대전화가 따로 없었다. 그냥 엄마가 외출을 했다면 나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부딪혔던 정수리 부분이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피를 흘려서였을까? 미친듯한 졸음이 쏟아졌다.
.
.
.
"언제 왔어, 밥은?"
깊게 잠들었었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사이, 늦은 저녁에 엄마가 도착했다.
"밥은 아직 안 먹었고, 나 아까 머리에서 피가 좀 났어."
그 순간, 엄마의 반응을 보고 잠시나마 '괜히 말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게 뭐였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양손에 쥐고 있던 비닐봉지를 내팽개치고 신발도 신지 않고 뛰어 들어와서 나를 살폈다.
"괜찮아. 축구하다가 좀 세게 박았어."
그날 밤. 나는 정형외과 응급실에서 열 바늘 이상을 꿰맸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아픈 것보다도 누군가를 걱정시키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건 감정보다는 반사적인 대응이었다. 내 감정은 내가 내뱉는 말의 정확히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나에게 있어서 '괜찮다'는 말은, 내 상태를 전달하는 말이 아닌, 상대방의 불안을 차단하는 '방패'였다.
어릴 적에는 그 말 한마디로 교실의 공기를 정리했고, 조금 더 자라서는 엄마의 놀란 마음을 다독였고, 어쩌면 지금은 나 자신에게조차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누군가가 '미안해'라고 말하면, 반사적으로 '괜찮아'라고 답한다.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일단 그렇게 말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있다. 내가 괜찮다고 해야 상대가 안심하고, 상대가 안심해야 그 답답한 상황이 마무리 지어지고. 그래야 다시 하루가 굴러가니까.
하지만, 이제 그 단어는 너무 낡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간혹 든다. 너무 습관처럼 내뱉어대다 보니, 단어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가 퇴색된 지 너무 오래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 이렇게 자주 내뱉으면, 듣는 사람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
왜냐하면, 가끔은 나의 '괜찮아'가
거짓말인 게 다 티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