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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문영 Dec 03. 2017

붉은 보석

욕조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문득 생각한다. 자신은 여자의 피일까, 아니면 남자의 피일까. 불가피하게 나온 피일까, 나올만해서 나온 피일까. 핏발서린 흰자위에서 뿜어져 나온 피여도 좋고 다문 입술에서 나온 피여도 좋았다. 총을 쏴서 터진 피여도 좋았고 슬픈 얼굴에서 흘러나온 피여도 좋았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자신이 피였다는 사실이고, 주름 속에서 흘러나온 피든 절뚝거리는 다리에서 나온 피든 연설하다가 깨문 혀에서 흘러나오는 피든 그것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붉어진 얼굴에서 나온 피여도 좋았다. 피라면, 자신이 피일 수 있다면 그것은 별다른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흥분한 군중들 속에서 섞인 피들이 자신을 구성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았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고자 당황한 독재자의 얼굴에서 비어져 나오는 피라면 또 어땠을까. 새 세상이 온듯 높이 치켜든 손톱에서 흘러나온 피여도 상관은 없었다. 길을 가다 나뭇잎에 베인 피라면 또 어떨까. 여드름을 터뜨려 긁어 나온 개기름 섞인 피라도 붉었다. 평화로운 순간 셔츠 밑단에 튄 피여도 상관은 없었다. 수만 년 전 나이테에 묻은 피라면 어떨까. 역사 속에 사라진 종의 피일까. 땀 서린 대머리에 맺힌 피는 더욱 더 짠맛이 날 것이었다. 인디언의 원한 어린 피가 튀어서 굳어진다. 피는 영화에서 쓰이는 가짜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어도 피는 역시 좋을 것이었다. 코를 쑤시다 피를 흘려도 그것은 가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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