삥아저씨 잘 계시죠?
나는 몇 년째 숏컷을 고수 중이다. 계기는 이러저러하고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지만, 거의 30년 넘게 긴 포니테일을 유지해 왔던 터라 모든 것이 지긋지긋했던지도 모르겠다. 모든 시름을 담아 함께 잘라내고는 긴 머리칼과는 좀처럼 인연이 없다.
셀카 몇 장을 넣으면 조선시대 규수를 만들어주는 어플을 해보고 싶다는 이가 있어 고맙게도 꽤 많은 사진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나는 조선시대 의복 스타일과 몹시 잘 어울리는 마스크를 가졌다. (무쌍에 깐 달걀처럼 전전두엽이 돌출된 얼굴형, 흑발의 조합)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것 같다는 농을 나누다가 문득 머리를 다시 길러볼 생각이 없냐. 뭐 이런 얘길 하다 보니 과거의 사진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물을 발견
이래 봬도 나는 합정역 7번 출구 근방에서는 히피펌의 컬로 짱을 먹던 사람이다. 그 컬의 비결은 '삥'이라는 히피펌의 성지에 있다.(진짜 귀한 거 알려준다.) 컬을 뿌리 끝까지 말아주는 미용실이 없어서 늘 아쉬웠던 나는 당시 동료의 추천에 이끌려 합정동 삥 미용실에 당도하기에 이르렀는데... (나는 그의 과거 손님이었을 뿐, 제휴 및 금전적 거래가 전혀 없으며 이 글 역시 홍보 목적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오히려 간증에 가깝다.)
대단한 일은 2017년 즈음부터 평생 단 한번, 이 펌을 하고 나면 머리칼의 대부분을 다 날려야 하는 만큼의 강력한 펌을 시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나방처럼 모여드는 사람들 덕에 삥은 2024년에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듯하다. 최후의 소비만큼이나 스타일 역시 극단으로 가봐야 다시 미니멀로 회귀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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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계정 부가 설명 역시 "욕망의 히피펌"
히피펌의 끝판왕을 경험하고 싶은 제군들은 모두 삥으로 가라!
과거 우리의 의복에는 가체라는 장치가 있었다. 가체(加髢)는 더할 가에, 딴 머리 체를 쓴다. 말 그대로 땋은 머리를 더해 올린다는 의미인데, 정의를 살펴보면 동양권 국가에서 여성들이 치장을 위해 가발을 머리 위에 얹는 것으로 우리 역사에서 가체가 처음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통일신라 시대라고 한다. 아마도 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여성의 정장은 가체로 완성된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었는데 어느 정도 형편이 되면 반드시 장만해 뒀다가 예의를 갖춰야 하는 자리에 머리에 얹고 나갔다고 한다. 가체가 빡셀?수록 부를 상징한 것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신체발부수지부모라고 머리칼 역시 목숨처럼 여기는 여인들은 머리를 잘라 내다 파는 일이 없었으니 가체의 재료는 주로 남자들의 머리칼이었다고 한다.
수사자의 갈퀴처럼, 가체처럼 히피펌은 내게 이상한 자유를 주었다. 몸을 한껏 부풀려 세를 과시하며 구애하는 수컷 공작새처럼 뿌리까지 견고하게 컬링이 먹은 산발한 내 머리가 휘날릴 때면 멋짐에 취해 발걸음도 마음도 땅에서 5센티쯤은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 떠있는 높이만큼 유쾌하고 또 가벼운 청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기 전에 머리를 한번 더 길러 볶아보고 싶다. 지금의 나에게 히피펌은 또 다른 에너지를 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