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론 슈퍼카도 좋아하지만, 여전히 정갈한 상태로 유지하며 돌아다니는 구모델의 차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켠다. 긴 세월 동안 주인이 그 물건을 향해 들인 정성의 양과 같이 한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여의도의 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요새는 전혀 볼 수 없는 각으로 떨어지는 차가 점잖게 들어와 주차를 하는 것을 기둥 뒤에 숨어 지켜본 일이 있다. (왜숨어?) 주차가 끝난 차에서는 어느 노부부가 다정하게 내렸다. 왠지 영화를 보시러 온 듯했다. 끽-끽-소리를 내는 멋없는 쇼핑몰 주차장 바닥과 삭막한 LED등이 담아내지 못하는 멋짐이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집은, 해가 지고 나서야 만나게 되는, 침실에 가장 많이 머물게 되는 그런 공간이다. 동시에 잠을 잘 뿐이지만 그 잠을 자기 위한 집을 가지는 일이 인생의 큰 과제가 되기도 한다. 집에 오면 머리 대고 자기 바빴던 직장인 시절을 생각해 보면 나의 집 상태는 내가 돌아다니는 동선을 빼고는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그저 안쓰러운 곳이었다.
코로나를 지나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점차 근무의 형태가 재택으로 바뀌면서 집을 작업실로 쓰게 된 이후 생긴 변화는 집 안으로 굳건한 취향이 하나씩 들어와 자리 잡기 시작한 일이다.
거실에는 차를 마시는 공간이 큰 영역으로 자리 잡고, 언제라도 눈에 보일 수 있도록 지금 주목하는 책들이 올려진 선반이 있다. 작업실 안쪽에는 작업이 가능한 높이조절이 가능한 테이블이 있고, 때로 서예 후에 화선지와 먹을 말릴 수 있는 화선지 걸이를 만들어 두었다.
주로 업무를 하는 작업실 책상 맞은편으로는 시선이 머무는 곳에 좋아하는 제주 돌담을 닮은 그림을 걸었고, 자는 방 침대 건너편으로는 마음을 쉴 수 있는 단색화가 걸려있다.
더불어 언제라도 작업을 시작할 수 있으려니 늘 집은 정돈되어 있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까지 딴짓을 할 껀덕지라도 보이는 날엔 좀처럼 업무에 돌입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든 누구든 놀러 오거나 들이닥쳐도 언제나 보송하고 깨끗한 집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쯤 되니 다들 각자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좀처럼 바뀌거나 변할 일이 없다. 다른 구성원이 같이 살게 되거나 크게 생활 패턴이 바뀌지 않는 한, 2046은 당분간 이런 느낌을 유지하게 될 것 같다.
새삼 집에 대한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되는 요즘을 보내며, 한 땀 한 땀 엮어 낸 손 때 가득한 이 집이 유독 고맙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