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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K Feb 12. 2024

마음에 드는 식탁을 찾기 위해 2년 간 거실을 비웠다

최종 소비 = 최후 소비 이론

나는 다년간의 소비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확실한 통찰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는 경우엔 결국 그 소비를 개선하는 소비가 뒤따른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예산의 부족 혹은 당시의 유행이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들이 많다. 물론 무리하지 말고 합리적 소비를 해야 하는 품목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어떤 이유에 의해 차선을 선택하는 소비는 실패의 결과를 낳게 되고 다시 결국 시간을 들이든 예산을 무리하는 옵션이든 그 상황에서의 최선을 선택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카테고리의 소비가 멈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식탁 테이블이었다. 사실 식탁은 내돈내산이 아니어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식탁을 사용했다. 상을 펼쳐 밥을 먹기도 했지만, 본가에서는 꽤 오랫동안 식탁의 좌판이 좌우로 회전하는 형태의 원목 식탁을 썼는데, 그러다 보니 나는 의자 좌판을 좌우로 돌리며 식탁의 끝 모서리에 생채기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참치 캔을 따거나 뭔가 봉지를 열 때 의자 좌판이 흔들리다 보니 음식물을 흘리는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원목 위에 깔린 두껍고 차가운 유리는 늘 그 감촉이 불쾌했던 기억이 난다. 항상 테이블 매트를 두 장씩 깔고 쓰곤 했다.


그런 여러 가지 경험으로 인해, 나는 내 가구의, 적어도 식탁에 대한 몇 가지 명확한 선택 기준이 생기기 시작했다.


1. 다리 높이가 낮은 의자를 가진 식탁일 것

- 신장이 작은 나는 보통의 식탁은 대부분 뒤꿈치가 닿지 않아 발을 띄우거나 보조 발판을 사용하고 혹은 식탁 위에서 다시 양반 다리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2. 원목이되, 보조 유리를 깔지 않을 것, 자연스러운 나무의 촉감을 느낄 수 있을 것

- 위에서 언급한 '물성 그대로를 경험하기 위해'


3. 가능하면 조각난 형태가 아닌 슬랩 형태의 원목일 것

- 나무의 기운?이라고 하면 너무 주관적이지만, 나무 결이 가지는 뉘앙스와 큰 나무 한 판이 전해주는 자연적 느낌을 선호했다.


4. 오래된 천장 디테일 장식과 톤이 일치할 것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집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이런 간단한 듯 복잡한 조건을 맞추는 가구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나면 빈티지 가구를 수입하는 다양한 업체들에 들러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주변을 맴맴 돌다 나오기를 여러 번, 언제든 그 임자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를 몇 년째, 결국은 돌아 돌아 한스올센의 익스텐션이 가능한 다이닝 테이블을 들이게 되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선택은 아니었지만 가장 편안하게 눈에 들어오는 아이템이기도 했고 시기도 적절했다. 아무 때나 나타나지 않는 빈티지가구의 특성상 운이 좋게 그의 작품을 적절한 시기에 확보하게 된 것은 아주 다행인 일이다.


그의 확장형 테이블의 장점은 확장을 위한 상판을 따로 보관하지 않고 필요할 때 펼쳐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가운데 판을 아래로 숨길 수 있다.


숨기고 나면 이렇게 아담한 형태로 주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꽤 유명하고 유행한 모델이기도 했지만 그 정갈하고 똑 떨어지는 디자인이 소박하면서도 푸근하고 좋았다.


봐도 봐도 기분이 좋고 늘 이곳에서 서예도 차도 일도 하게 되는 걸 보면 꽤 잘 한 소비가 아닌가 한다. 수없이 많은 신제품이 쏟아지는 가구 쇼룸에 가서도 적어도 테이블만큼은 이제 다시 들여다볼 일이 없으니 감사하기도 하다.


결국 그 카테고리의 끝판왕, 내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담아내는 최종 소비를 하는 일이 더 이상의 추가 소비를 일으키지 않고 마무리하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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