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엄마가 생겼다

폴란드, 크라쿠프

by 김성냥

어느 여행지든 관광객이 넘쳐나는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훨씬 값싸고 정겨운 음식점과 카페를 만날 수 있다. 골목 안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면 된다. 현지인들이 몰려 있는 곳은 실패할 확률이 낮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서도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다 그런 카페를 만났다. 초콜릿을 녹여 걸쭉하게 만든 차 위에, 취향에 따라 말린 체리나 계핏가루를 얹어먹을 수 있는 카페. 이 맛있는 차가 2천 원도 안 한다. 입에 감도는 따뜻한 초콜릿 맛과 향이 황홀하다.


혼자서 흐흥오흥 감탄사를 내뱉으며 초콜릿을 쪽쪽 빨아먹고 있는데, 두 중년 여성이 합석해도 좋은지 묻는다. 작은 카페에는 빈자리가 없다.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완전 땡큐지. 그리고 오랜 친구들처럼 한 자리에 앉아 얘기를 풀어내는 데 불과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언니들은 40대 중반 록산나, 60대 초반 완다였고, 그 초콜릿 카페에는 거의 매일 온다고 했다. 이 언니들은 이제 대학을 막 졸업한 어린 여자애 정도로 나를 보았는데, 그들이 보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 사회주의 시절 의복과 먹을거리를 배급으로 받았던 이야기, 밤 10시가 되면 돌아다닐 수가 없어 가족 간의 유대가 더 끈끈했던 이야기, 전기값이 계속 올라 불만인 이야기, 아직도 로맨틱한 사랑을 기다리는 록산나의 소녀 감성과 연금으로 우아한 생활을 하시는 완다의 자부심 등등 언니들 입심도 대단했다.


대화 중에 내가 6개월이 넘게 여행 중인 걸 안 이 언니들은 갑자기 흥분했다. 6개월 넘게 여행 중이라고? 어디 어디 갔는데? 여행 경비는 어떻게 마련했고? 한국에 있을 땐 무슨 일 했는데? 여행할 생각은 왜 했어? 혼자 다니는 게 무섭지 않아? 부모님은 뭐라셨어? 대답할 시간도 안 주고 폭풍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적나라한 질문은 얼버무리기도 하면서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고 났더니, 완다 언니가 갑자기 여태까지 유지하던 우아함을 내던져버리고 여전히 흥분한 채로 화난 듯 이런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휴, 네가 떠날 때 너의 엄마는 어떠셨을까. 너의 엄마는 진짜 강하신 분일 거야. 넌 엄마 마음이 어떤지 상상도 못 하겠지. 난 내 딸이 혼자 긴 여행을 한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어. 매일매일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마음 졸이느라 잠도 잘 못 잘 거야. 잘 먹을 수도 없을 거야. 가까이서 매일 소식을 전하고 지내도 마음 쓰이는 존재가 딸인데, 너의 엄마는 너를 이렇게 떠나보내고 어떻게 지낼지 정말 걱정된다. 세상에, 네가 내 딸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난 너 같은 딸을 견딜 수 없을 거야.”


갑자기 쏟아진 말들을 들으며 여행 떠나기 전 엄마와의 이별 장면이 떠올랐다. 어디 2,3일 출장이라도 다녀올 것처럼 잘 다녀와라, 네 잘 다녀올게요, 말하며 아파트 현관 앞에서 헤어졌었다. 세탁소에 들렀다가 그 앞에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엄마가 아파트 입구에서 서성이는 걸 보고 손을 흔들고 인사했다. 엄마의 얼굴이 찡그려지며 억지로 눈물을 참으려는 것처럼 느껴져 난 일부러 외면했었다.


엄마는 내가 장기간 집을 비우는 게 섭섭했는지, 내가 떠날 것을 확정 짓고 나자 나에게 말도 잘 안 걸었다. 난 여행 떠나기 두 달 전부터 근사한 거짓말로 부모님을 설득했는데, 매우 좋은 기회로 외국에서 1년 동안 공짜로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교육과정에 합격했다는 뻥이었다. 공부하는 게 싫어 결국 포기했지만, 실제 그럴 기회가 있었고 서류 준비까지 다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뻥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감이 있었다. 사십이 넘어도 부모에게는 그저 자식일 뿐이어서 그랬나. 엄마 아부지는 여전히 나를 애 취급했다. 뭐 그런 역할극도 가끔 재미는 있다. 엄마의 반대 이유는 이랬다.

- 그 나이에 뭔 또 공부냐. (사실 내가 공부를 좀 오래 하기는 했다.)

- 너 일 년 넘게 공백기 가지고 나면 진짜 취업 못 한다. (다시 취업할 생각, 죽을 때까지 없다.)

- 몸도 안 좋은데 외국 생활 어떻게 버티냐. (한국만 떠나면 안 아플 거 같다.)

- 그냥 한국에서 평범한 남자나 만나 편하게 살아라, 제발. (평범한 한국 남자 무섭다.)

- 젊음이 영원할 줄 아냐. (이미 안 젊다. 안달복달해도 어차피 늙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십 년을 반복한 한탄 스토리. 그러나 결국 반대해도 네 뜻대로 할 테니 너 맘대로 하라고 하셨지만, 떠나는 날까지 그리 흔쾌하게 마음 편하게 해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집 떠나 폴란드까지 와 있는데, 여행하면서 가끔 부모님 생각이 나기도 했다. 전화 자주 드리면 계속 자주 드려야 하니 이 주에 한 번 정도만 연락했는데, 난 지금 무지 행복하며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고, 심지어 주변에 있는 교회에 나가 예배까지 드린다는 거짓말도 했다. 부모님과 나의 평화로운 관계는 나의 무수한 거짓말들로 유지 가능해왔다. 가끔 엄마가 넌 엄마가 보고 싶지도 않니,라고 섭섭해하셨지만 난 무지 보고 싶다고 또 뻥을 쳤다. 가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했던 은행 잔심부름 같은 거 잘 해결하고 계실까. 여행 가기 전 그렇게 여러 번 설명과 실습을 반복했으니 나 없이도 잘하시겠지 같은 생각, 혹은 대체로 걱정.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완다에게 엄마의 심정에 대해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사십이 넘도록 혼자 제멋대로 사는 딸을 둔 육십 넘은 엄마의 심정이 어떨지, 그 딸이 오랫동안 집을 비운다고 했을 때 그 마음이 어떨지. 뭐 우리 엄마가 강한 사람이긴 한 것 같다. 아니 잘 모르겠다.


내가 멍 때리고 있으니 완다가 좋은 식자재를 사용하는 싸고 믿을 만한 식당 목록을 쭉 읊어주며 내 여행 지도에 그 위치를 꼼꼼히 체크해준다. 잘 먹고 건강하고 몸조심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충고를 잊지 않는다. 당신은 내 엄마 같네요. 폴란드 맘!이라 했더니 완다는 흔쾌히 코리안 딸이 생겼다고 좋아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고 전화번호까지 남겨주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넘게 실컷 얘기를 나누고 나서야 언니들은 집으로 갈 채비를 했다. 크라쿠프에서 조심해야 할 곳, 밤에는 가지 말아야 할 장소, 숙소로 돌아가는 안전한 길을 자세히 알려주고는 그렇게 폴란드 맘은 제 갈 길을 갔다. 나를 낳아준 한국 엄마는 나에게 평생 풀어야 할 숙제 같은 사람이다. 그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는 난해한 숙제. 그 실마리를 잡는 방법쯤을 폴란드 맘이 준 셈이다. 나 같은 딸을 둔 엄마의 심정을 생각해보기. 여행 중 화두가 하나 더 늘었다.


IMG_20131003_214603.jpg 왼쪽이 록산나, 오른쪽이 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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