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만난 비인간 생명체, 코카서스의 개들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조지아

by 김성냥

이번 여행에서 크게 두 번을 울었는데, 그중 한 번은 아제르바이잔 쉐키에서 만난 여자 개 때문이었다. 늑대의 후손답지 못하게 인간만 만나면 따라가 꼬리 치며 환대를 기대하는 개들. 그 약하고 여린 것들이 애써서 어떻게든 살려는 모습은 너무 간절해서 자주 코가 시큰해졌다.


키쉬 알바니안 교회에서 버스 타고 오는 길에 쉐키 센터에서 내렸다. 1ml에 1마낫짜리 향수 7ml 구입. 4,900원 정도. 올리비아 뉴 시크릿, 올리비아의 새로운 비밀에 대해 알 바는 없지만 암튼 좋은 귤향. 아제르바이잔 곳곳에 향수를 덜어 파는 상점이 많다. 경쾌하게 치마를 팔랑거리며 길을 걸으니 내 움직임마다 공기에 확산되는 향이 코까지 올라온다. 흠흠 킁킁 아이 좋아~ 즐기며 흐뭇해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그 개가 나타났다.


젖을 먹였는지 가슴이 많이 부풀어 늘어져 있고, 그중 하나는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던 그 개. 종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 날에도 한 시간 가까이 나를 쫓아다녔다. 그만 오겠지 싶어서 돌아보면 사뿐사뿐 내 뒤를 따라 걷던 개는 센터에서 카라반 사라이 가는 오르막길 내내 따라왔다. 혹시 차에 치일까 봐 무심할 수가 없어 가드 노릇까지 하게 됐는데, 그 투명한 듯 탁한 갈색 눈이 예쁜 개였다.


그 개가 길에 서서 킁킁거리는 내게 다시 나타난 것이다. 깜놀. 멍멍아! 한국말로 불렀는데 금방 다가와 내 발 밑에서 배를 까고 재롱을 떨었다. 길에서 지내느라 사람의 손길이 많이 그리웠나 보다. 어제 지켜봤던 동안에도 사람들은 그 개에게 살갑지 않았다. 자기 주변에 왔다고 욕하며 쫓아내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대놓고 발길질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 생각이 났다. 키우던 개를 잡아서 먹으려고 산에서 개를 묶어 머리를 망치로 내려쳤는데, 빗맞아서 죽지는 않고 머리가 깨진 채로 개는 도망친다. 살기 위해 도망치던 개는 도살의 공모자였던 개 주인이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자, 머리가 깨지고 가죽이 벗겨져서 피 흘린 채로 꼬리를 흔들며 다시 자기가 망치 맞던 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죽는다.


친구가 되어주는 인간도 있겠지. 그러나 인간은 같은 인간도 죽이고 강간하고 팔아먹고 이용하는데. 그냥 너네들 세상을 꾸리고 살면서 산에서 내려오지 말지. 인간이 뭐라고 이렇게 반가워해줄까.


나도 그냥 반가웠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한국식 감탄사를 반복하고 있는데, 돈터치더도그,라고 (서)양인이 지나가며 충고한다. 코카서스 지역에선 거리에서 사는 개들이 이것저것 병을 옮긴다고 한다. 대꾸를 안 하니 계속 반복한다. 돈터치더도그, 돈터치더도그. 알았어, 말하고 나니 만질 자신이 없다. 쓰다듬어주고 싶은데, 나도 너 봐서 좋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그냥 사진만 찍었다. 그 개를 기억하고 싶어서.


뭐든 먹여야겠다 싶어 근처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양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시켜 식당 앞 풀밭에 여기저기 뿌려두고 다시 그 개를 찾으러 나갔다. 어디선가 금방 또 나타나는 개. 반가워 크게 손짓하며 먹을 거 있는 곳으로 이끌었더니 따라온다. 향신료 들어간 그 짠기 있는 고기가 개들에게 좋을 수 없으므로 물로 어떻게든 씻어주었는데 잘 먹는 걸 보니 제대로 씻겼나 또 걱정.


그리곤 줄 수 있는 게 없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선 고양이 밥과 물을 매일 갈아주는 곳을 도시 곳곳에서 보았는데, 바쿠를 떠나 도착한 이곳 쉐키에서 이 개는 전 날, 한 시간 넘게 같이 다닐 때도 먹을 게 없었다. 곳곳을 냄새 맡고 쓰레기통까지 뒤졌으나 먹을 걸 발견하지 못했다. 난 그런 걸 보면서도 나눌 게 없어 미안하다고 한국말로 사과하고 그냥 숙소로 가 버렸다. 다시 만날 줄 몰랐다. 거리에 넘치는 개들이 설마 또 만나질까, 그리 생각했으니 더 미안했다. 고기로 부족한 거 같아 양고기 육수에 빵을 듬뿍 적셔 주니 곧잘 먹는다.


배가 부르니 피곤한가 보다. 고기가 놓여있던 그 풀숲에서 금방 잠든다. 그래, 잘 자고 부디 잘 지내길. 조용히 그곳을 떠나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헤어진 지 10분이나 되었을까, 어느새 또 옆에서 걷고 있는 그 개. 아, 멍멍이 또 왔네, 그래 쉐키 어디든 너네 집일 수 있는데 뭐.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너 맘대로 갈 수 있어. 전날처럼 안 떨어지려 계속 따라오더니 자기 영역의 경계라 느꼈을 때쯤 멈췄다. 그 멈춘 곳에서 오랫동안 나를 배웅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근데 왜 이리 슬픈지. 자꾸자꾸 눈물이 난다. 그 가련한 것들. 약한 것들, 배고파하는 것들, 길에서 헤매는 것들.


내게 이별의 인사라도 전한 걸까. 한참을 지켜봐 주던 개. 잠깐 이 개를 입양해 한국에 데려갈까 생각해봤다. 이 개가 어디 있는 게 더 나을까. 내가 돌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앞으로 내가 다닐 여행지에서 이 개가 환영받을 수 있을까. 익숙한 곳을 떠나면 혼란스럽진 않을까. 난 무엇보다 내 몸과 내 짐만 챙기기도 버거운 배낭여행자 처지였기에 냉정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냥 나 편하자는 변명일 뿐이지만.


코카서스의 개들은 거리에서 많이들 산다. 따로 주인이 있는 개들도 있지만 거리를 헤매는 개들이 훨씬 많다. 아제르바이잔에는 개보다 고양이가 우세하고, 조지아나 아르메니아에선 개들이 훨씬 많은 거 같다. 모로코에서도 느꼈는데 내 멋대로 보자면 무슬림이 많은 곳엔 고양이가, 기독교인들이 많은 곳엔 개가 많은 것 같다. 아제르바이잔의 도시 곳곳엔 물과 사료를 담을 그릇이 놓여 있었다. 거기서 고양이들은 쓰레기를 뒤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조지아에선 백신 맞은 개의 귀에 표식을 달아 준다. 관리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주사 맞았다는 표식만 달았을 뿐, 떠돌며 주린 배를 그날그날 운에 맞게 채워야 한다. 거리에 하도 늘어져 있는 개들이 많아 참 개팔자 좋구나, 했는데 애들이 배가 고파서 힘이 없으니 낮이건 밤이건 잠만 자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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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기가 많은 음식들. 사람들이 먹는 양념이 개들에게 좋을 수 없고 장기나 피부를 상하게 할 게 뻔하다. 개들의 영양상태가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피부병은 기본이고. 개들은 햇살 좋은 곳에서 잠들기 전에 자기 살을 이빨로 골고루 깨물어준다. 많이 가려워한다. 이래도 그냥 주사 맞혀 길에 내보내기만 하면 되는 걸까. 귀의 표식이 너무 무거운지 귀를 세우지 못하는 개도 있었다.


잘 모르겠다. 쓰레기를 뒤지며 배고파서 매일 잠만 자느니 안 태어나는 게 나을까. 어떻게 살든 자기들 마음대로 길거리를 헤매며 사는 게 나을까. 조지아의 개들이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무료하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힘들어 보였다. 사람들에게 길들여지지 말지. 뭐하러 인간에게 기대어 살아가면서 이 고난을 자처하는 걸까. 별로 인간적이지 않는 인간을 뭐하러 그리 사랑하고 따르는 걸까. 글쎄 이런 의문도 그저 인간 중심적인 건지 모르겠다. 인간 친화적인 종들을 작게 예쁘게 순하게 강제 교배시켜 상품처럼 어미의 자궁에서 뽑아낸 것도 인간들이니까.


이런 표정을 보면 음식을 나누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고양이들은 독립적인 생명체라 그런지 사람의 손길을 그다지 갈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개들은 사람을 정말 좋아한다. 이렇게 일방적인 사랑을 주는 생명체들에게 양념이 다 빠지지 않은 음식 한 덩이 나누는 걸로 무거운 마음을 덜어내고 있지만 이 개들을 정말 어째야 한단 말이냐.


카즈베기에서 내 밥의 절반 이상을 먹어치우고 입을 쓱쓱 청소하더니 가버린 고양이.


한 번 개 때문에 눈물깨나 흘리고 나니 개가 가까이 오면 걱정이 된다. 난 너 못 쓰다듬어. 오지 마. 미안해, 라며 내가 먼저 피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다 카즈베기 산에서 신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설산이 보이는 산 중턱에 홀로 앉아 카즈베기에서 고통받았다는 프로메테우스 생각에 빠져 있는데 문득 또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어떻게 이 높은 곳까지 왔는지. 내 맘을 미리 읽어버린 걸까. 내 옆까지 와서 아는 척도 안 하고 옆에 누워 편하게 자릴 잡고 잠을 청한다. 고마워. 개.


한참을 자는 개 옆에 앉아 있다 조용히 떠나는데 멀리서 지켜보던 조지안이 넌 ‘늑대와 춤을’이라며, 그 개는 늑대라고 알려준다. ‘주먹 쥐고 일어서’가 아니어서 매우 기쁘다. 내가 떠날 때도 그 개가 잘 자고 있어 좋았다.

그날 조지아를 여행하는 내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고양이는 사랑스러운 존재들이어서 그런지 알아서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들도 곧잘 만났다. 개들 먹이 챙겨주는 사람은 못 만났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는 어쨌든 다른 나라를 여행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니. 사람 먹고살기도 어렵다면 개들 챙기는 일에 마음 쓰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만 동물에 대한 사고는 결국 인간에 대한 사고와 연결되어 있다. 약한 것들을 신경 쓰는 마음은 인간이 구성한 공동체에도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여러 슈퍼마켓을 뒤져 드디어 개사료 발견. 800g 사료가 1,600원 정도밖에 안 한다. 배낭 메고 다니는 처지에 더 무거운 건 살 수도 없으니 이게 적당하다.


그러나 사료는 한나절 만에 동나버렸다. 첫 번째 나의 사료를 먹어준 개. 얌전한 자태로 기다려줬다. 거리를 떠도는 조지아 개들은 다 중형견 이상이다. 아무래도 사료를 더 큰 거 사야겠다. 내 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개는 뭘 달라고 소리를 내거나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다가와서 식탁 모서리에 자기 주둥이를 살며시 올려놓았을 뿐이다. 너무 웃겨서 기분 좋게 음식을 나눴다. 그리고 시멘트 바닥 차가울 텐데 성당 벽에 붙어서 저러고도 잘 자던 개. 개 때문에 울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개들 덕에 많이 웃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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