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뒷모습

베트남, 따반

by 김성냥


그녀는 저기서 등을 돌리고 빨래를 하고 있다. 세탁기가 옆에 있는데 손으로 매일 빨래를 한다. 도미토리에 잠자리 약 10개 정도, 그리고 독립된 방 5개. 거기서 나오는 빨래를 매일 한다. 베트남 사파에서 소수민족 마을 중 하나로 들어온 이후, 2주를 머물면서 되도록 적당히 더럽게 지냈고 빨랫감을 보태지 않았다. 번역기를 이용해 왜 세탁기를 쓰지 않느냐고 물으니, 잠깐 망설이다가 주인이 세탁기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그래도 이불 같은 큰 빨래는 탈수 기능을 이용한다고.


그녀는 19살이고 우리나라 최저임금의 1/10도 안 되는 돈을 월급으로 받는다. 쉬는 날도 따로 없고 근로계약서나 주당 노동시간 같은 것도 없다. 해 뜨면 일을 시작하고, 밤에도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돈을 받고 차려주는 저녁에 손님들이 있을 경우 요리와 청소, 설거지도 한다. 한 달에 이틀 정도 주인장 허락을 받고 휴가를 간다. 따반 어딘가에 부모님 집이 있고 쉬는 날엔 주로 거기 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띠가 차려주는 간단한 아침을 먹고 띠가 일하는 뒷모습을 본다. 난 저 나이 때 뭐 했지, 생각해 보며. 세상 온갖 것을 비판하고 세상 꼬라지에 절망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열망에 들떠 반 미친년처럼 살았다. 공부하고 술 마시고 토론하고 데모하고, 맹렬하게 존재함 그 자체를 즐겼다. 불평불만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매일 으르렁거리고 다녔다.


내 뜻대로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것처럼 거만했지만, 엄마의 가사노동에 기생했으며 아버지의 용돈으로 품위를 유지했다. 그래 놓고도 부모는 혁명에 방해가 된다는, 홍위병 애새끼가 짜장면에 물 말아먹는 거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곤 했다. 대학 등록금을 내 손으로 마련해본 적도 없었다. 순수했는지 모르지만 유치했고, 왜 상처받았는지도 모른 채, 세상의 부조리에 절절한 분노와 좌절로 상처받은 젊은 애송이 꼬락서니였다. 세상 고뇌와 우울을 다 짊어진. 돈 한 번 제 손으로 벌어본 적 없으면서 노동해방을 부르짖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덕분에 나는 새파랗게 젊으면서 자기가 젊은지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의 개소리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해심 많은 어른이 되었다. 부모한테 용돈 받으면서 부모세대 기득권을 욕하고, 노동해본 적도 없으면서 노동해방을 외칠 수 있는 그 뻔뻔함을 그 나이 때 아니면 언제 누리겠는가. 용돈 끊기면 알아서 자신을 돌아볼 것이다. 그렇게 치졸한 천둥벌거숭이처럼 제멋대로여도 충분할 시기에, 하루 종일 청소 빨래 요리에 시달리는 19살 여자의 뒷모습은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부유하진 않지만 베트남 북부 소수민족 마을까지 와서 돈 쓸 수 있는 여행자 신분인 나는, 그녀와 나의 거리만큼 어찌할 수 없는 운명과 불평등을 느낀다.


대체로 우리의 태어남은 아무것도 사전 선택할 수 없이 주어진 조건에 내던져짐이었다. 누군가는 여성할례라는 구역질 나는 전통이 존재하는 곳에 흑인 여아로 내던져지고, 또 누군가는 마크 저커버그의 딸로 내던져지기도 한다. 엄마의 산도를 통과해 첫 허파 호흡을 할 때, 그곳은 이미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이 매일 최고점을 갱신하는 세상이다. 양극화의 어디쯤에 안착했든 태어난 환경과 부모는 평생을 두고 영향을 미칠 것이다.


베트남 소수민족 마을에 내던져진 아이는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고된 노동을 하루 종일 감내해야 하는 몸이 되었다. 비슷하게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고만고만한 남자를 만나 때 이른 결혼을 하고, 비슷하게 살아갈 아이들을 낳을 것이다. 그녀는 나와의 거리를 어떻게 느낄까. 배낭을 메고 자기 마을에 나타나 유유자적하다 떠날, 저 늙은 여자는 어디에 내던져졌을까, 궁금하진 않을까.


아직도 장작을 때는 부뚜막에서 매캐한 연기를 피해 요리하고 있는 띠를 보며, 그녀와 나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결국 어디에서 어떤 신분으로 태어났어도 너무 차이 나지 않는 조건의 삶이 보장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크하~ 결론은 또 혁명이네.


경제력을 가진 우아한 부모를 선택하고 싶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 어디 내던져진다 해도 대체로 비슷하게 자랄 수 있는 세상이라면, 환율의 차이로 내가 누리는 호사가, 너무 싼 값에 부려지는 스무 살도 안 된 여자의 손으로 지어진 밥을 받아 드는 아침이 덜 미안할 터. 혁명을 완수하기 전에 그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사파에서 사 온 과일과 장미를 꺼냈다. 과일을 예쁘게 깎고 향긋한 장미도 배치했다. 주인장도 출타 중이어서 띠를 불러 함께 과일 먹자고 했다. 베트남 북부에서 망고는 제법 비싼 과일이다. 안 먹고 아끼려고 하기에 끝까지 다 먹는 모습을 봐야겠다고 우겼다.


띠가 활짝 웃는 모습을 봤고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웠다. 나는 미안함을 좀 덜고 노동하는 여성은 좀 쉴 수 있었으니, 우리의 거리감은 달라진 게 없지만 그저 괜찮은 하루였다고 해두고 싶다. 사실 미안함이 덜어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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