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을 계속 여행할 용기를 준 여자

이탈리아, 나폴리

by 김성냥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 한인민박. 중국에서 건너와 20년 가까이 민박을 해오신 중국동포 부부의 소나무 민박. 긴 여행 중 머물렀던 그 많은 숙소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밥 맛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독한 이탈리아 세균에 감염된 내 몸이 여기서 회복되었다. 아주머니는 심한 기침을 하는 내게 도미토리 가격으로 독방을 주었고, 병원에 데려다주셨으며, 한국에서 가져왔다는 그 유명한 ‘용각산’을 주셨다. 또 기침에 좋다고 배 몇 개 사서 꿀 넣고 달여 먹으라고 했는데, 내가 귀찮아서 안 했더니 직접 배를 사다 꿀 넣고 끓여주셨다. 나중엔 급기야 한국산 홍삼뿌리까지 달여 주시더니 남은 홍삼을 로마로 떠날 때 싸주셨다. 빨래도 무료로 해주셨고 아침, 저녁으로 내 상태를 살피며 내가 좋아질 때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KakaoTalk_20221013_212210695.jpg 배와 꿀을 넣고 끓인 차.


여행하다 이런 사람을 만날 수도 있구나. 집 떠난 지 오래된 내가 밤새 기침하느라 잠을 못 자니 많이 안쓰러웠나 보다. 말만 하려고 하면 기침이 먼저 나왔기 때문에 이틀을 입 다물고 침대에 누워 기침만 하다, 도저히 더 이상 못 버틸 거 같아 아주머니에게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이탈리아의 병원은 응급병원과 일반병원이 있나 보다. 내가 간 곳은 응급병원이었나 본데, 잠을 못 자 누렇게 뜬 얼굴로 연신 기침을 해대는 나를 보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의사를 만나게 해 주었다. 의사는 중년의 패트릭 스웨이지 느낌. 진지하게 문진을 하고 청진기를 여기저기 대보고 혈압을 재고 목 상태를 살펴본 후, 열심히 타이핑을 시작했다. 오직 두 손가락으로, 나를 진단할 때보다 더 진지하게 키보드에 집중하면서 진단서를 작성하느라 꽤 시간이 흘렀다. 내 상태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하자, 그는 영어로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내가 감염이냐? 묻자 그렇다고 한 후 이탈리아어로 계속 말했다.


그렇게 기다리다 프린트된 진단서를 가지고 알아먹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 나왔다. 진단비는 내지 않았고 약은 약국에서 따로 샀다. 다행히 약국에 영어를 하는 약사가 있어 복용방법과 내 상태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심각한 거면 한국 가는 비행기 표를 끊으려 나름 내심 비장했는데 기관지에 생긴 급성 감염 같은 거였나 보다. 약값은 12.23유로. 약 먹은 지 이틀 만에 말을 할 수 있었다. 목쉰 소리였지만 기침 없이 말을 할 수 있었고, 아주머니의 관심과 배려 덕에 몸을 회복했고, 아주머니는 내가 이렇게 웃긴 애인지 몰랐다며 대화할 때마다 함박 웃으시며 참 좋아라 하셨다.


이탈리아 병원진단서.jpg 병원 진단서. 이탈리아에서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치료해준다. 참다 병 키우지 말자.


나폴리에서 로마로 떠나고 다음 주, 아주머니도 20년 가까이 해온 이탈리아 민박 집을 정리하셨다. 생존을 위해 중국에서 건너와 평생을 일하시고, 이제 고향인 중국 대련으로 돌아가신다고 했다. 중국 집에 놀러 가기로 하고 주소도 받아두었고, 아주머니에게 얼굴 스케치를 선물해 드렸다. 그리고 지금은 고향에서 사랑스러운 손주들과 행복한 시간을 지내고 계실 거다. 가끔 카톡으로 손주들 자랑을 하시곤 한다. 그러니 아주머니의 소나무 민박은 이제 이탈리아에는 없는 셈이다.


KakaoTalk_20221019_141443192-테두리 자른 것.jpg


이때 몸을 회복하면서 여행을 지속할 힘을 얻었고, 대서양을 건너 쿠바와 멕시코까지 갈 결심을 했다. 여행 중에 이런 따뜻함, 대가를 바라지 않는 배려를 받을 수 있음에 마음 찡하도록 감동받았고, 내가 운이 좋은 사람 같아 여행을 계속하는 데 더 큰 자신감도 생겼다. 아주머니는 내게 아주머니 민박의 비어있는 방 외에 낯선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용기를 주셨으니 정말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아주머니가 주신 홍삼은 플라시보 효과도 대단했다.


타인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많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니 말이다. 몸과 정신이 한층 더 단단해진 느낌. 이 느낌으로 대서양 건널 계획을 짰다. 집을 떠날 땐 포르투갈까지 가서 대륙 끝 바다에 머물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넘치는 기운이 쿠바까지 나를 이끌었다. 그래서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 들러 스페인으로 올라온 후 쿠바행 비행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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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동안 나폴리를 숙소의 창문 프레임으로만 구경했다가(왼쪽), 몸이 나아진 후 시내를 거닐었다.


DSC_8408.JPG 걷다 보니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나폴리 항구에 다다랐다. 나도 저 포즈로 허벅지 사이에 남자 끼고 남자 한 번 내려다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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