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1593년 이탈리아 로마 출생. 사망시점은 정확하지 않음. 카라바조 제자였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드러냄. 17세에 아버지의 동업자였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강간당한 후, 아버지를 통해 강간범을 고소하고 재판을 진행함. 재판 진행 중 진실을 밝힌다는 핑계로 피해자였던 아르테미시아도 알몸 수색과 고문을 당했고 창녀로 매도되기도 함. 그녀는 오랫동안 강간이 준 정신적 상처로 고통스러워했고 이를 '유디트'에 반영했다고 알려져 있음. 강간범은 재판 중 근친상간과 매춘부를 때리고 금품까지 빼앗은 사실이 드러났으나 겨우 반년 형을 살았고, 그녀는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아버지의 지인과 결혼해 정착했음. 그녀는 당시 여성화가가 그릴 수 없다고 인식되던 종교화뿐 아니라 역사화를 그려 지금까지 최초의 여성화가로 불리고 있음. 이상 알려진 바 정리 끝.
로마에서 그녀의 '유디트'를 보았다. 그녀는 여러 편의 ‘유디트’를 남겼다. 유디트는 그 드라마틱한 스토리 때문인지 여러 화가들의 모티브가 되곤 했다. 유디트는 아시리아 장군 홀로페르네스와 적진의 막사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그가 술에 취해 잠든 틈을 타 그의 목을 베어 이스라엘을 구한 여성이다. 우리에겐 클림트의 ‘유디트’가 잘 알려져 있다.
아르테미시아는 강간을 당했지만, 유디트는 적장을 유혹했고 결국 적장을 영원히 거세시켜 버렸다. 그녀에게 그림을 주문한 토스카나 대공도 당시 꽤 유명했던 그녀의 강간사건을 알고 있었을 터, 그녀는 보란 듯이 유디트에 자신을 투영시켜 강간한 남자를 응징했다. 이 그림을 본 심장 약한 사람들은 사람 죽이는 행위를 이렇게 현재 진행형으로 잔인하게 표현한 데 놀라 수백 년 간 우피치 미술관 한 건물에 감춰놓았다고 한다. 그림이 아무리 잔인한들 실제 강간행위보다 잔인하겠나. 건물에 가둬야 할 건 그림이 아니라 강간범이다.
그녀의 유디트는 다른 화가들의 유디트가 에로틱하고 연약하게 그려지는 것에 비해 대범하고 섬뜩하다. 그녀의 복수심이 거세 욕망으로 시원하게 드러난 듯 통쾌하기까지 하다. 한 여성이 태어나 자라면서 10대에 아버지 지인에게 강간을 당했다면 그 일만으로도 멘탈이 다 털릴 수 있다. 강제로 강간범의 애인이 되어야 했고, 강간범의 추악한 과거가 드러나는 재판 과정에서 고문까지 당한 그녀의 고통과 원한은 얼마나 깊었을까. 칼로 목을 따는 정도는 너무 온순한 복수인 것 같다. 내가 상상하는 남자에 대한 가장 잔인한 복수는, 남자를 발가벗겨 십자가에 묶어두고 그 밑에 독이 없는 뱀 100마리를 풀어두는 것이다.
그렇게 이어지는 생각. 왜 강간은 여성에게 이리 고통스러운 것인가. 강간을 치유 불가능한 정신적 살인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직도 많은 나라들에서 강간 피해자를 가해자와 결혼시키는 것으로 문제를 무마시키려는 게 현실이다. 한국에서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님 세대, 할머니 세대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전쟁 이후 웬만한 결혼은 강간으로, 순결을 더럽힌 여성들의 체념으로 이루어졌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아예 자살을 선택하는 강간 피해자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듣는다.
이런 얘기를 읽고 나면 그 여성의 가족들은 무얼 하고 있었는지 물을 수도 있다. 가족 중 가부장에 의존해 생존을 유지해야 하는 어머니나 여자 형제들은 아예 발언권이 없다. 기껏 얘기하는 게 남자 주장에 동조하는 것이다. 아버지나 오빠는 한 술 더 떠서 여성을 오히려 강간범과 결혼하도록 강요한다. 명예살인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자기 딸이나 여동생의 상처나 고통은 그들 남자들에겐 명예가 실추된 사건일 뿐이다. 아버지와 오빠는 딸이자 여동생인 여성의 육체를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한 상태를 유지한 후, 남편이 될 다른 남성에게 양도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로써 그들만의 권력인 가부장제가 유지된다.
한국도 유독 여성을 향한 범죄에 대해서는 남성의 심신 미약을 대단히 배려한다. 술을 먹었으니, 술에 취했으니, 필름이 끊겼으니... 이런 핑계들이 먹히는 건 판사들도 대개 남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 강간을 당한 여성은 희생자임에도 성적으로 타락했다거나 육체를 더럽혔다고 욕까지 먹게 된다. 옷차림이나 행동까지 비난받으며 강간을 유발했다는 의심까지 짊어져야 한다. 짧은 옷을 입었다거나 밤에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강간당해도 싸다는 비난은 아직도 그럴싸하게 여성들을 옥죈다.
예전에 성폭력 상담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 남성들 틈바구니에서 남성적으로 행동하도록 길들여져서, 남성처럼 일하고 지내온 시간이 부끄럽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남성들의 권력과 능력이 부러워 ‘명예 남성’으로 살았지만, 결과적으로 몸도 마음도 많이 상처받았다. ‘성인지적 관점’이란 걸 깨닫고 싶었고 성평등 의식도 갖추고 싶었다. 교육을 통해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고, 그 상처의 깊이가 상상 이상임을 알게 되었다.
나도 숨겨둔 이야기들이 있었다. 성폭력까지 당한 적은 없지만 어렸을 적 내 몸을 더듬던 친척이라든가, 성희롱 발언을 일삼던 남성 교사들, 술을 핑계로 은근슬쩍 성추행을 했던 직장의 개자식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조직 내에서 확 까발리려다가 참았던 적도 있었다. 바바리맨도 두 번 만났는데, 한 놈은 아예 나를 보자 자위행위를 시작했다. 잊으려 했고 실제 잊기도 했지만, 한 번 기억창고의 잠금쇠가 열리자 이런 기억들은 금방 생생한 분노로 되살아왔다. 그러니 실제 강간당한 여성들의 상처와 분노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처녀성의 신화를 만들고 이를 여성에게 굴레로 뒤 짚어 씌워 여성을 소유하려고 하고, 여성의 몸을 억압하고 강간하고, 피해자에게 고통과 죄의식까지 갖게 만드는 이 거대한 음모.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성 스스로 자기 몸을 ‘순결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성폭력 강사 교육 당시 본 다큐멘터리에서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보았다. 강간당한 여고생이 틀린 시험문제 답안을 지우개로 지우고 답을 고쳐 쓰면서 담담히 자신의 고통을 돌보는 장면에서였다.
강간은 어떻게 보면 화상 같다. 원하지도 않았고 매우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몸을 우선 돌보고 흉터가 남지 않기 위해 상처를 잘 치료해야 한다. 몸이 더럽혀졌다는 고통으로 자신을 학대하면 안 된다. 그게 바로 여성의 몸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가부장제의 음모이기 때문이다. 강간당했다고 분노와 죄의식에 휩싸일 일도 아니다. 불에 데는 일처럼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잘 안 씻어야 몸이 더러워지는 것이지 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몸이 더러워질 수는 없다. 더럽다면 가해자의 몸이 더럽고 그의 사고방식이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난 구체적인 상처와 고통, 분노 앞에서 실제 이렇게 말하지 못했다. 강간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쓱싹쓱싹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하면 돼, 라는 얘기가 또 다른 상처가 될 것 같았다. 성폭력 상담교육을 받긴 했지만 난 상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되었다. 난 그들의 상처에 쉽게 동화되었고 그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이런 상담은 정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내공 있는, 몸도 마음도 강건한 사람들의 몫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