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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메이커(2022)와 자산어보 (2021)

아이고 창대야 

by 장서율 Mar 04. 2022

설경구 배우의 제2 전성기를 열어준 영화가 있다. 2016년, 임시완 배우와 브로맨스의 절정을 보여주었던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이라는 영화인데, 거기서의 설경구 배우는 쓰리피스 정장을 말끔히 소화하면서도, 한 인간을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기 위해 더러운 권모술수를 남용하는 인물로 분한다. 하지만 그 배역이 가지는 순간의 진심, 일말의 진실이 극 중의 설경구 배우를 백 퍼센트 미워할 수는 없게 만들었던 것 같다. 모름지기 허구 속의 진실을 엮는 ‘영화라는 매체에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인간 군상에 가까운 그 면모가, 그를 그렇게 사랑받는 배우로 만든 건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양면적인 진실 앞에 설 때가 많은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지켜내야 할 것이 늘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대의나, 정의나, 가치가 이쪽 방향은 아닌 것 같지만, 가끔은 먹고살기 위해서 눈 딱 감고, 혹은, 나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평소 생각지도 않았던 그런 방향으로 향하기도 한다. 내가 가던 인생길을 틀어 다른 길로 가다가 되돌아오는 것도, 그 길 그대로 나름 승승장구해 나가는 것도, 자기 마음속에 한낱 부끄러움이 없다면 무슨 상관이랴. 개개인의 양심에 일말의 걸림이 있다면 그건 다 본인의 몫일 테니. 그런 생각을 하며 설경구 배우 주연, 그리고 영화 ‘불한당’의 변성현 감독 영화, ‘킹메이커 (2022)’를 보았다. 


대형 배급사 쇼박스의 설맞이 텐트폴 영화로 개봉했지만, 아쉽게 백만 관객에는 미치지 못한 영화라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전한 창궐과 OTT 시장의 양립은 이제 영화관에서 볼 영화와 안방에서 볼 영화를 가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영화관을 사랑해 마지않던 나로서는 많이 섭섭하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이 시점에, 전 국회위원/대통령 후보와 책사의 실화를 다룬 팩션 영화를 보니, 과거에나 지금에나 정치라는 게 이런 걸까 싶었다. ‘킹메이커’란 거대한 판을 짜는 사람이다. 사람이 말인 정치라는 체스판에서 장군(후보)의 뒤를 지켜 이길 수 있게 돕는 지략가라는 말이다. 여기서 내가 책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영화에서 ‘김운범 (설경구 배우)’ 가 경선이든 대선이든 승리할 수 있도록 온갖 술수를 동원하는 ‘서창대 (이선균 배우)’의 모습이 전쟁의 이면에서 진두지휘하는 책사와 다르지 않아 보였기에 그렇게 써 본다.


영화의 시작은 자신의 집 닭장에 새벽에 몰래 와서는 달걀을 훔쳐가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는 주변 농부 (진선규 배우분의 우정 출연)의 이야기에 나중에 내 닭이라고 잡아뗄 수 있게 붉은 실을 둘러놓으라는 서창대의 등장. 1960년대 초반의 전남 목포가 그 무대다. 이북 출신이고 피난 내려와 살게 된 목포에서, 그는 김운범이라는 신민당 (가상의 야당) 후보의 연설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카리스마와 가능성을 본다. 그의 연설에는 사람의 심금을 자극하는 묘한 것이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선거마다 미끄러지는 그를 위해 연설 원고를 편지로 보내며 그에게 어필한다. 이윽고 선거 캠프 사무실에 김운범을 찾아가는 서창대.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을 언급하며 창대에게 자신의 전략이 맞다고 우기는 운범에게, 서창대는 플라톤의 어구로 되받아치며 한 마디 보탠다.  그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었다, 고. 여기서 운범의 명대사가 등장한다. 


‘플라톤 그 양반 거 그렇게 안 봤는데.’ 


플라톤은 말했단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이것을 깨기 위해서는 더러워도 선거에서 승리해야만 한다고 창대는 말한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운범은 거기서 창대와의 기싸움을 접고, 그를 선거 당원으로 영입한다. 또한 이미 자리 잡은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잘 동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충고를 건넨다. 그리고 ‘나, 서창대올시다’ 라며 마치 연극무대에 서는 것처럼 선거 캠프 사무실에 등장한 이선균 배우의 모습에서 난 폭소했다. 


‘아이고 창대야?! 창대란다.’


변성현 감독은 처음부터 이선균 배우 역할에 ‘창대’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아니면 설경구 배우가 처음 사극에 도전한 이준익 감독 작품 ‘자산어보 (2021) ’에서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으로 분해 흑산도에 유배 갔을 당시, 해양 생물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쓸 수 있게 실질적인 정보를 주었던 변요한 배우의 극 중 이름도 ‘창대’ 였기에 이 영화에서도 설경구 역할을 지지하는 역할로 이선균 배우의 극 중 이름도 ‘창대’가 된 것일까. 자산어보는 실로, 영화 킹메이커처럼 등장하는 배우의 라인업도 화려하지만, 창대라는 극 중 인물의 비중이 실로 컸다. 후에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설경구 배우가, 자신이 아닌 변요한 배우가 상을 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잠시 영화 ‘자산어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극 중 허구의 인물인 창대는 흑산도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는 양반이고 어미는 양민인 반쪽 양반이다. 어부이되 언젠가는 아비가 그래도 서출인 자신을 찾아주지 않을까, 하여 글깨나 독학 중이다. 혼자서 어려운 서책을 읽다 보니 궁금한 것들이 많은 그에게, 순조 즉위 후 신유박해로 유배된 정약전의 등장은 잔잔한 삶에 돌을 던지는 신선한 파문이었다. 정약전 또한, 한양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신기하고 신선한 생선들을 접하면서, 양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면서, 바다에 정통한 창대에게 하나 둘 물고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그것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너무나 간단하지만 인생을 정통하는 창대의 말. 뭐든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임하는 자세라면 세상 무서울 것이 있었을까. 그저 순조 즉위 후 힘들어진 양민의 삶이 어려웠을 뿐. 그리하여 흑산도에서 두 사내는 서로의 지식을 나누어 가지며 서로에게 제자와 스승인 것 이상의 유대를 쌓게 되지만,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집필하는 와중에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정약전에 대하여, 언젠가는 뭍에 나가 출세라는 걸 해 보고 싶었던 창대는 성리학보다는 서학의 편을 드는 것 같은 스승에게 정면으로 대들고 둘은 이별하게 된다. 이념과 실학의 정면충돌은, 창대가 살아온 ‘실학’의 세계를 깨부수는 것이었고, 정약전에게는 젊은 창대가 언젠가 한 번은 가 볼 이념의 길이 (벼슬길)라는 걸 알았기에, 씁쓸한 이별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나가 이념 아래에 숨은 부조리와 부패의 쓴 맛을 본 창대가 다시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의 조우는, 정약전의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벗을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고 말했던 정약전의 제사상 앞에서 창대는 흐느낀다. 


다시 영화 ‘킹메이커’로 돌아와 보자. 창대는 운범을 지지하는 사무실 당원들에게 우리는 ‘운범’이라는 무기를 들고, 그 명목 아래 여당과 싸우는 야당의 이데올로기를 지닌 사람들이라며, 이념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에 호소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정권 아래 여당의 승기를 잡기 위해 목포를 뜨겁게 달구었던 1967년의 국회의원 선거는 실로 영화 속 운범 (실제 인물 김대중 15대 전 대통령)과 여당 후보의 대격돌이었다. 야당의 떠오르는 별에게 자리를 내주기 싫었던 박 정권은 여당 후보 지지를 위해 현물과 현금을 뿌리는 물량 공세를 하지만, 창대의 전략은 김운범의 야당 당원들을 여당 당원들로 둔갑시켜 사람들을 이간질시키는 시나리오였다. 


‘정치하는 여당이 더 난 사람, 시민은 그 아래’를 교묘하게 강조하는 얇실한 창대의 전략은 먹혀가고, 사람들은 지략에 속아 여당에게 등을 돌린다. 1967년 여야 국회위원 후보 합동 연설에서 운범은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이며, 지역감정에 읍소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영산강과 유달산의 넋에 호소하는 설경구 배우의 연기가 빛난다. 그것을 바라보는 창대의 표정은 반은 기쁘고, 반은 슬프다. 영화 속 창대의 역할은 철저히 빛(운범) 아래 숨은 그림자였으니까. 실제의 카메라 워크 속에서 창대의 그림자를 쫓다가 결국 여러 그림자와 합성되는 신이 있는데, 여기서 그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 책사 역할에 충실하다. 국회위원 선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박 대통령의 사람들마저 그를 스카우트하기에 이르지만, 자신이 믿던 대의가 김운범이 추구하는 것과 같다는 걸 믿었던 서창대는, 계속 그의 선거 캠프에 남는다. 


그리고 영화 속 김영호 (유재명 배우 – 김영삼 전 대통령 역할), 이한상 (이해영 배우 – 정치인 이철승 역할) , 김운범의 삼파전, 인 야당 내 대통령 경선이 치러지는데, 여기서도 운범에게 표를 얻어주기 위한 서창대의 지략이 빛난다. 고 이희호 여사의 역할을 맡은 배종옥 배우도 등장한다. 선거 캠프의 유일한 여자 직원인 수연 역의 서은수 배우 또한 자신의 소임을 다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남자 배우들이 대세인, 그런 정치 영화임은 어쩔 수 없다.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 역의 조우진, 중정부장 역할의 윤경호, 심지어는 경선 후보장에 등장하여 담배 피우는 배우들까지, ‘어, 저 배우’! 할 정도로 남자 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 따라서 묵직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전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흑백 장면들이 삽입되었지만 그것들이 하나도 촌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코믹한 이미지를 모두 버리고 서창대의 등장 전 김운범의 최측근을 연기한 김성오 배우가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 우치고, 정치인 역할이라 그런가 선 굵지 않은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기에, 여성 배우들의 입지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텔레비전 프로그램 속의 만담을 진행하는 여자 배우가 제일 인상 깊었달까. 정치 풍자는 예나 지금이나, 너무 웃기다. (이 이상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필리버스터, 노골적인 상대 진영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 정치라는 이름의 서커스, 상대방 후보에 대한 테러 등등. 영화의 무대는 분명 1960년대에서 시작하여 80년대까지 빠르게 관통하며 정치적인 사건들을 쫓아가고 있는데, 이러한 장면들을 보면서 2022년 현재의 정치판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인었는지? 나는 정치가 나라는 한 개인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오게 될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정치라는 것 이면에서 어떤 인간군상들이 치고받고 싸우는지, 그들이 쫓는 이념과 사상과 그 이면의 ‘욕심’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일본 출장을 가던 시절 함께 거래처에 영업을 가곤 했던 회사 일본인 직원 분은 50대였다. 후쿠오카 해안선을 차로 달리면서, 그즈음 있었던 혐한 시위에 대해, 일본의 정치라는 것에 대해 내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그는 질색하며, ‘당신 이상한 사람이네. 그딴 정치에 왜 관심을 가져? 어차피 우리랑 상관없는 윗사람들이 하는 일인데!’라고 했다. 그의 대답을 듣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잠시 부끄러워하면서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정치라는 것에, 우리가 뽑는 리더에, 시민들의 시위나 궐기에,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고, 어떤 이념에 표를 던져야 할까? 정치 그거 잘은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가지는 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일본인들은, 정치인을 그냥 다른 세상 사람 취급한다고 했다. 실로 현실적이다 싶었다. 돌이켜 보면, 나야말로 어떤 대선 후보가 선거 전략으로 포장해 내보이는 이념에 나의 욕심과 이데올로기를 끼워 맞추며, 좀 더 나은 세상을 누군가는 만들어 주겠지 하며 안위했던 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한국은 어느 시점부터 과거의 민주화 항쟁, 실화 배경 영화와 드라마를 양산했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와 실제 사건에 관심을 보였으며 그것이 이젠 자연스러운 블로그의 주제가 되었다. 이처럼 시민은 정치라는 것에 관심으로, 투표참정권으로, 또 다양한 매체로서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도 그 세대에 동참해서, 내가 몰랐던 시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다. 그렇게 나의 뿌리와 과거를 알아야, 현재가 있고, 미래도 있다고 믿는다. 


영화에서 차용된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좋은 인간이 되는 것과 좋은 시민이 되는 것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고, 우리는 평화롭게 살기 위해 전쟁하며, 결국 가장 잘 통치할 수 있는 자가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모두가 지친 2022년 2월 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18세부터 60세까지의 남자들을 군대로 징집하여 나라를 사수하려는 지금,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은 어떻게 나라와 국민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러시아는 과연 평화를 위해 전쟁을 선포한 것인가? 거기에 발맞추어 중국은, 유럽은, 세계는 어떤 도미노에 휘말릴까? 왠지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점점 더 없어져만 가는 것 같다.


영화 ‘킹메이커’에서 운범과 창대는 박 대통령 측근의 계략으로 서로 헤어져야만 하는 기로에 놓인다. 창대는 운범의 자신에 대한 의심을 수치로 받아들이며, 대통령 후보 그림자 책사 역할에서 시민으로 회귀한다. 그리고 창대는 비서실장 역 조우진을 도와 선거에서의 킹메이커 역할을 한다. 자신의 전략을 돈으로 보상받으며 와 비서실장과 나눈 대화에서 창대는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은 이 일에 대의가 없었다고. 자신이 믿어온 운범의 대의를 언급하자 비서실장 또한 소리 지른다. 


‘내가 믿는 것 또한 각하의 대의라고!’


각기 가슴속에 있는 이념을 누가 단죄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나마도 다행히 공산국가나 군권 통치하에 있지 않은, 민주국가의 시민이다. 1988년 드디어 다시 만난 운범과 창대. 창대는 운범에게 영화 초반 농부가 이야기한 닭장 사건을 예시로 들며 그에게 질문한다.  만약, 누가 새벽에 닭장에 와서 달걀을 훔쳐가면 어쩌겠느냐고? 그랬더니 한술 더 떠 운범은 다음 날 찾아가서 달걀을 선물로 주지, 한다.  창대가 묻는다. 만약,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이라면 어쩌겠냐고? 그랬더니 운범은, 그렇다면 내가 창대 당신에게 다시 찾아가 어찌할지를 묻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제야 노인으로 분한 이선균 배우는 예의 그 눈에 주름이 지는 ‘파안’을 던진다. 적어도 자신이 믿어온 운범의 대의는 틀린 것이 아니었다고 온 얼굴로 이야기하는, 창대의 실제 인물인 엄창록 씨는 1988년 고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납치, 투옥 등 온갖 고초를 겪은 운범의 실제 인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드디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군사정권을 지나, 대선후보로 나선 후 세 번째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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