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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일본 영화를 봤다.

花束みたいな恋をした。

by 장서율 Jul 17. 2021

花束みたいな恋をした。

아주 오랜만에 일본 영화를 봤다.

제목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영어 제목도 예뻤다. We made a flower bouquet.


현지에 있는 유일무이한 예술영화관 - 퀴어 커플도 간간이 보이고, 다채로운 영화제가 상영되며, 한국, 일본 영화도 자주 볼 수 있는 행복한 곳 -의 다채로운 벽화를 따라가면 Redrum, blue room 같은 상영관 제목이 등장한다. 오늘은 나 자신과 행복한 오후를 보내주기로 다짐했던 날. 영화에 풍덩 빠져서는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서도 '어떻게 해, 나 아직 일본에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이 절로 나오던 생경한 경험. 오랜만의 몰입.


이 영화는 달달하다. 풋풋한 연애와 사랑의 시작과 끝에 관한 영화다. 언젠가 누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의 과정은 그 둘 빼고는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주변 사람들은 '사랑의 시작과 끝'의 원인과 결과가 궁금한 것뿐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행복한 두 사람의 연애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둘 만의 세계에서 유영하는 사람들의 웃음을 보면 내가 사랑했던 기억들에 관해서도 떠올리며 웃음 짓지 않겠나.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 사랑이 끝날 때의 괴로움. 해 보면 다들 알지 않나.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인 조제.. https://brunch.co.kr/@aileensoyeonjan/26 이후 참 오랜만에 푹 빠져서 이 영화를 봤다. 주인공 키누 짱이랑 무기쿤. 絹と麦。 이름도 예쁘다. 일본인과 썸타거나 사랑해보면 알겠지만 각자의 서로만의 애칭으로 ちゃん 이나 くん 을 붙이곤 하는데 내 별명은... 사자에상이었던 듯?! ㅋㅋ 나의 경험에 관한 긴 글은 다음 링크에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 시간 여행을 했던가. https://brunch.co.kr/@aileensoyeonjan/16 영화의 구조도 그렇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들도 시간 여행을 하듯, 수많은 소설과 영화와 비유로 서로가 함께한 4년을 그려나간다.


오래전 열정을 떠올리게 하는 그들의 만남. 신기하게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취향은 사실 서로에게 있는 관심, 호르몬 작용이 만들어내는 신기루였는지도 모르지만, 누구나 그때 그 시절은 한 번뿐이므로. 그때의 가장 예뻤을 나를 가장 멋졌을 그를 나누어 가진 건 우리이므로. 그래서 지난 사랑을 추억해 보곤 하는 건 아닐까.


막차를 놓친 역에서 만난 키누와 무기는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바라보던 세상이 둘의 시각 속에서 똑같이 포지셔닝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調布 역 근처 多摩川가 보이는 맨션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게이오센 초후역. 타마가와. 하치오지. 내 기억과 좋아하던 만화 나나 (NANA) 속 배경이 겹쳐 이렇게 마음 사무치게 그리운 동네가 되었구나. 영화 속 예쁜 두 사람도, 둘의 세상이 무너지면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이치였으리라. 대학을 졸업한 남자는 서로의 status quo를 위해, 여자는 서로의 same taste를 함께 즐기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일본 영화의 끝은 참 담담하다. 조제도 이 영화도, 감독 각자의 방식으로 ritual을 하듯 정중히 영화를 끝내준다. 하지만 정형화된 틀 속에 나름의 자유로움이 바람처럼 깃들어있다. "열차에 타고 있었다"라는 일상적인 표현 대신 "열차에 흔들리고 있었다"는 표현을 쓰는 로맨틱한 남자의 미래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가 사랑을 위해 하는 현실적인 선택에 대해 누구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고객님 닮은 남자 주인공보다는 영화에 카메오처럼 등장해주신 배우 오다기리 죠 덕분에 정말 크게 웃어버렸다.


맡으시는 역할들마다 素敵ですね (멋져요)  오다기리 죠 님。 나라도 술 취하면 그 무릎베개 베고 자고 싶을 것 같다.  일본 영화가 주는 솜사탕맛 감성보다는 약간 더 어른스러운, 잘 구운 식빵 한 조각에 발라진 버터 풍미같이 고소하고 살짝만 달달한 영화. 우리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아니 왜? 꽃다발 같은 사랑. 시 같은 사랑. 소설 같은 사랑 아직 안 해본 사람 있던가요?! 지나간 사랑은 지나갔기 때문에, 지난 호시절 속에 있어서, 예쁘게 마른 꽃다발처럼 아름다운 건 아닐까요? 이제는 느낄 수 없는 그 생생한 향기를, 지난 시절 듣던 음악에서, 함께 보던 영화에서, 같이 갔던 장소에서 발견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아주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서 울고 웃던 감정들조차 희미해져서, 많은 일들이 생겨도 이겨내며 살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거겠죠.



개인적으로는, 사랑하고 나서 추억할 부분이 남아 있는 것. 과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 끝에 키누와 무기는 서로에게 혼잣말을 해 본다. 그녀는/그는 이런 뉴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일상을 공유하던 가장 가까운 타인으로부터 가장 먼 남이 되어버린 사람들. 추억을 동력삼아 다시 일상의 서걱거림으로 돌아간다.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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