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시간

불면증인지 뒤척임인지

by 장서율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내 안에 더 이상 방황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름 '힘들다고 말하지 않던 나'를 괴롭히던 그들도 더 이상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편안하고 감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지없이 밤이 내리면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왜 잠들지 못하는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무엇이건 간에 꾸준한 열정을 가질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해.


아직도 방황할 체력이 남았던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나면 방전된 체력과 거북목, 퀭한 눈으로 잠시 멍 때리다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딱 20분만 걸어보자, 혹은 그만큼만 스트레칭해보자 하며 침대 옆에 요가 매트를 깔아놨더랬다. 그러면서 나를 화나게 만든 그날의 사람들과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렇게 여기에 다다른 내가, 대견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다. 누구와 비교하지 않기로 했는데, 불굴의 투지로 여기까지 왔는데, 그동안 내게는 얼마나 많은 인생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다른 역할이 주어졌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는지 계속해서 머릿속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는 것처럼 - 환희에 차기도 했었고 모멸감에 치를 떨기도 했던 그 순간순간들이 반복 재생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주저앉은 내게 재도전의 기회는 끊임없이 생겨났다. 그건 아마도 사라지고 싶었던 만큼 기억되고 싶었던 내 안의 모순에 의해 생겨난 거라 믿는다.


뻔히 결과가 보이는 일에 무턱대고 잘될 거라 뛰어든 불나방 같던 나를,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아서 부러지고 꺾이기도 했었지만 - 그래도 마흔 즈음에 드디어 삶에 대해 자각이라는 게 생겨서 다행이다. 그러면서도 후회하고 있는 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것이다. 서른 즈음에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알고 있었더라면', 조금은 덜 다치지 않았을까. 나중에 힘들 거 젊어서 고생했다고 여기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의 내 마음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은 아직도 징그럽게, 흘러넘친다. 해서 조금씩 조금씩 꺼내서 브런치에 박제하려 한다. 이런 나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살고 있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야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연습을 하려고,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일하다 말고 나의 안부를 묻는 예전 상담사 선생님 문자에 나도 모르게 이런 답변을 남겼다.


'감사합니다. 요즘은 인간관계도 쳐내면서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어요. 저에게 바라고 부탁하는 게 많은 사람들부터요. 상담 때 말씀 주신 것처럼, 제 선의나 의도를 깎아내리는 언행이나 사람은 피하려고 애써요. 친한 친구들은 제가 예민한 걸 알지만 그걸 안 보이려고 나름 애쓰는 것도 알더라고요.'


써놓고 나니 느리고 느리게 여기까지 기어 온 달팽이 같은 내 마음이 조금은 대견해졌다. 나는 나름 나 자신이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라고 생각했던 몇몇 이들은 인간이 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들에게 일일이 나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온 마음을 줄 수 있는 관계는 소중하고, 그 소중한 관계들은 몇 없어야 더욱 유지가 가능하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 없는 내가 되어서,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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