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빠른, 2022년의 끝자락에서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날이다.
달력에 빼곡히 적힌 to do list 중에 계속 미뤄지는 것은, 업무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었다. 늘 자성하는 주객전도의 삶. 체력 탓이라고 하기보다는 완벽하게 해 내고 싶은 이기심 혹은 호승심 때문일 거다. 그냥 시작해 버리면 되는 것을, 브런치와 마주하기까지 또 시간이 꽤 흘렀다.
어디선가 읽었다. 5분 내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은 계획하지 말고 그냥 그 자리에서 해 버리라고. 삶은 끊임없는 선택과 집중의 순간들인데, 이거 하나만큼은 늑장 부리지 말고 해야겠다 마음먹은 4분기였다. 그 나머지 시간들을 쓰는 방법은 어떠했나? 나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멍 때리기에 할애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금방 금방 사라져 갔다. 어떤 보이지 않는 괴물이 시간이라는 과자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로. 뜻하지 않게 많은 도시를 다녀왔고, 또 뜻하지 않게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고, 감정으로 가득 차서 충만했던 순간들도 있었던 반면에, 한 가지 내 마음을 관통한 깨달음은 이거였다.
내가 하는 일이 곧 나 자신이라는 걸. 직장 생활을 해 오면서 아주 최근까지도, 난 two track으로 좋아하는 일은 따로 두고, 잘하는 일을 업으로 두면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지금 업계에 들어와서 10년 차. 올해 4분기만큼 내 성격이 내가 하는 일에 최적화되고 있구나를 깨달은 적은 없었다. 나는 이 사실이 슬프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영업맨이 되면 어느 자리에서건 상대의 기분을 살핀다.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듣는다. 상대의 이야기를 최대한 끌어내는 게, 영업 이익에 닿아있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시간보다 상대의 시간에 맞추고, 인간관계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회사와 고객에 맞춰진다. 삶의 우선순위가 내가 아니라 일이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바로 지난주에 다녀온 네트워킹 세션에서 만난 타 회사의 영업하시는 분과 인사를 하면서 그 사실을 더 많이 느꼈다. 애써 잃지 않으려고 했던 마지막 순수성을 박탈당한 기분이랄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 안에 있던 소녀를 지키려고 애썼던가.
습관적으로 계속 웃고 있어서 '반달 모양의 눈을 한' 저 사람과 나의 표정이 다를 게 무엇일까?
수많은 내 속의 감정들과 상관없이 나는 사회적인 저 마스크를 장착하고 있구나.
이건 기쁠 일인가? 아니면 속절없이 슬플 일인가?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요즘의 삶이, 나는 여전히 새롭다. 그동안의 나를 돌이켜보고, 다시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 진다. 그런데 영업을 하며 웃고 있는 나와, 밤에 잠들기 전에 나의 언행과 사고의 불일치함을 돌아보는 나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떤 감정이 진짜 나의 것인지 헷갈린다. 내가 내가 아닌 순간들은 낮의 나일지, 밤의 나일지. 조건 없이 주어지는 것들에 감사하면서 주변에 마음의 빗장을 완전히 열지 못하는 나의, 너무 깊고 먼 상상들이 나를 감싸는 밤에는, 여전히 잠들지 못하는 걸.
그 어느 한쪽을 내려놓으면 사는 것이 조금 더 편해질까? 내가 원하는 현실은 이상에 가깝기에 바라면 바랄수록 비참해지는 것을 느낀다. 밤의 수많은 감정들과 마주 보면서, 나는 마음의 짐들을 점점 더 내려놓아야 함을 안다. 하지만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할지는 나만이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답다는 걸, 나를 위하는 걸, 내가 진짜 원하는 걸 놓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적어본다. 글이 되어 기록을 하면, 적어도 시간이 흐른 뒤에 잊지 않고 다시 와서 되뇔 수 있을 거니까. 2022년 끝자락의 나는 이런 다짐을 하며 살았있었음을 잊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이기적인 글들을 읽어주신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감정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고 계시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