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고 또 흐른다. 변한 건 없이.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돈이 든다는 위협이 엄습한 건, 이제는 더 늦기 전에 방 한 칸이라도 자가를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다. 월세의 맹점은 돈을 벌고 있는 동안만큼은 넉넉한 (?)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인 듯하다. 2022년의 4분기에 나는 나름 취미 생활에 돈을 꽤 투자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는 괴로운 순간들 속에서 더 젊고 당당하게 살아갈 이유와 원동력을 얻었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다 좋을 수는 없는 법. 사람은 변하지 않고, 고쳐 쓸 수 없으니, 나부터 단단해져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만 들었다.
스트레스에 못 이겨 두 번 정도 일탈을 했던 11월과 12월 사이. 주말을 끼고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비행기를 타고, 숙소에서 낮밤으로 반신욕을 하고 (내가 사는 곳에는 샤워 부스 밖에 없다. 그렇게 목욕하는 걸 좋아하는데도!) 보고 싶었던 공연을 보고, 오래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서 비로소 코로나가 끝나감을 깨달았다. 우리가 만나지 못한 사이에는 어느새 4년이라는 갭이 흘러 있었다. 지금의 나는 비로소 방황이 끝났지만, 친구들이 기억하는 4년 전에 나는 유리알처럼 나라는 사람의 벗어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던 게 맞는 것 같다. 그걸 알게 된 건, 내가 잊으려고 부단히 애썼던 시절의 단면들을 친구들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건 참 우습다. 기억은 조작되기 쉽고, 잊으려고 애쓰다 보면 아픈 것들은 잊게 되더라. 상처 속에서 얻어진 교훈 같은 것만 마음에 새기고 간다면, 몇 가지는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쉬워 보이지만 내게는 - 몇몇 특별한 사람에 관한한은, 아주 작은 일들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사는 내게는 - 어렵게 지나온 고비들이 있었기에 얻어진 깨달음이다.
하루 꼬박 다른 나라까지 경유하며 열 시간을 날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유가 없어 읽지 못했던 소설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이라는, 백여 년을 아우르는 두 집안의 이야기. 아니, 두 여인의 사랑과 인생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랄까. 책 속에는 시대적 배경도 있고, 소녀와 여인의 모습도 있고, 엄마와 할머니의 모습도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연차가 남아있었고, 환승 중에 와이파이가 있으면 이메일 확인을 했지만, 그러지 말 걸 그랬다. 내 마음이 너무 말랑해져 있어서, 일하면서 누르고 살았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이 책 한 권을 읽는 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심지어 가운데 좌석에 앉았는데, 모자를 내리 쓰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 하고 바란다 - 내 손에는 휴지가 쥐어져 있고 마스크는 이미 흥건히 젖어있었다. 무슨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며 바쁘게 산다고,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었나 싶기도 했고, 1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의 어떤 부분에서 감명을 받았을까 생각도 잠시 해 봤지만. 지쳐서 이내 잠들어 버리기도 했다.
아마도 가슴이 터질 것처럼 슬펐던 건, 내가 바라는 건 더 이상 남녀의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닐까. 인간적인 사랑이, 유대감이, 인생 어딘가에서 넘쳐 흘러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누군가 멀리에서라도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면, 그것만으로 너무 감사한 게 아닐까. 바라는 것 없이, 주고받는 돈 없이 마음만으로 충분히 전달되는 그런 관계. 쉽게 가질 수 없는 그런 관계. 나 자신에 대한 신뢰, 자기표현을 하는 방식조차 배우는 게 너무 오래 걸려버린 나는, 이 정도의 애정만으로도, 4년에 한 번 만나 속내를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사한다. 바빠서 삼 개월 정도 못 만나도, 뜬금없이 잘 살아 있냐는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집에 가는 길이니 태워다 줄게, 같은 말이나, 네가 생각나서 하나 더 샀다며 뭔가를 건네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 정말 감사한 삶이다. 가족에게서 채워지지 않았던 것들을 내가 아닌 타인에게서 받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다라고, 되뇌고 되뇌었다.
더는 슬퍼지지 않았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운 것은 엄마가 생각나서였다. 그리움이 아닌 원망, 이라기엔 애증이 섞인 감정은, 내가 아는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잘 안 된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녀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좀 더 나은 위치에 있었을까? 이제까지 살면서 나의 호기심과 내가 만난 불행들이 내가 글을 쓰고 사유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직면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다. 나의 방황은 이번 여행으로 완전히 막을 내렸다. 끊임없이 울고, 끊임없이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없고 열정만 가득해서 방황했던 나는 이제 안녕. 나의 삶의 기준은 이제, 내가 눈을 감는 순간에 과연 후회 없이 살았는가, 양심에 거리낌 없이 행동했는가, 누군가에게 특별히 선했고, 또 누군가에게 특별히 악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를 생각해 보는 일일 것이다. 전에는 몰랐던 시각으로 사람의 장점이 보이고, 될 대로 되라고 생각했던 일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게 나이 들어가는 일이라면, 나쁘지 않다.
간밤에 외할머니가 꿈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를 돌봐 주시던 그분의 장례식에 나는 가지 못했다. 꿈에서도 나는 무슨 일인가를 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위독한 상황이라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나에게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나는 수화기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꿈이었는데 울면서 느꼈던 감정이 너무나 선명했다. 그것은 세상에 내가 토해내는 나의 외침 같은 것,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미안함, 그리고 개운함 같은 것들이었다. 꿈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30분이었다. 어제 나는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인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많이 피곤하지는 않았다. 꿈에서 느끼는 감정은 종종 현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늘의 나는 그러하다. 하지만 더 이상 부정하지 않으리라. 표현하리라. 글을 쓰고, 감정들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나 자신과 소통하고 타인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