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점검의 시간
방랑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세계의 어디쯤은 미친 듯이 덥고, 어디쯤은 물난리가 나고, 코로나 변종이 기승을 부린 지난 한 달. 내 마음은 빨간 구두 아가씨처럼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다. 나는 나의 지난 인생의 무거움과 무서움에 대해서 생각했다. 멋모르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던 젊은 날의 모습이 불현듯 생각나고, 고개를 저으며 후회하면서도, 이전의 피 튀기는 듯한 괴로움에 비하면 지금의 쳇바퀴 도는 일상은 (감사함을 모르고)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 제발 큰 일 저지르지 말고 마음 편히 살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도 밤이 되면 몇 시간이고 잠이 오지 않는다. 지금 잘하고 잘 버티고 있다고 마음 편히 먹으라며 어깨 툭툭 쳐주는 사람이 몇 명 더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기분은 춤을 추지만 반대로 몸은 가라앉고 또 가라앉는다. 그 와중에 친구들을 따라서 이런저런 놀이들을 함께 해 보았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든 건 도자기 체험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서 접시를 하나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덜컥 등록을 해 버렸다. 빙빙 도는 물레를 보면 - 내 친구는 최면 효과라고 했다- 원심을 바라보고 있으면 불현듯 몰입감이 느껴진다. 그 안에서 명상하는 것처럼 가만히 머무를 수 있게 된다. 20분, 혹은 15분?
혼자서 하는 명상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가슴속은 시원하고 머릿속은 차가워지는 그 순간. 무의식 속의 내가 나에게 속삭인다.
과거의 이야기는 묻어두고 지금을 살자.
결핍으로 인한 에너지로 나를 태워 살았다면
이제는 평범한 에너지로 살면서 행복해져 보자.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힘이 들 때는 이렇게 조용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이병률 시인이 쓴 어느 시에, 한 사람의 인생에서 굳이 떠나온 이전 동네를 찾아 자신의 이전 모습을 복기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한 구절이 있었다. 국수 한 그릇을 굳이 이전 동네에 가서 찾아 먹으며, 그때의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던 시였는데, 제목도 내용도 찾으려니 잘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면 또 어떠리. 그 메시지만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면 되는 것을.
마음이 불안했던 나는 깨달았다.
마음이 편안했던 적이 많이 없어서, 익숙하지 않았다는 걸.
문제를 만들 필요가 전혀 없이 마음 편히 가만히 있으면 되는 상황이 내게는 낯설다는 걸.
그런 마음이 들자 나도 이전 동네에 찾아가 국수 한 그릇 먹으며 내가 지금 처한 상황 - 평범해서 감사한 - 을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만 편하다면, 사는 건 훨씬 더 즐거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