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필요했던 것
일본은 여러모로 공포 이야기가 많은 나라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극단적인 모습은 아니어도, 가위를 눌리면 무서운 광경을 많이 목격하고는 했다. 대학교 다닐 때의 나는 사회인이 되었을 때의 나 보다 걱정과 근심이 더 많았던 것이어서 그랬을까. 우울한 사람들의 그림자 뒤에 어두움이 따라다니는 것처럼 - 그 시절 내 꿈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은 엄마였고, 그다음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엄마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늘 많았지만, 그게 말이 되어 나오기 전에 서러움에 눈물부터 나왔었다. 아마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나에게 좀 더 신경 써 주세요' 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가위에 눌렸다. 심하게 눌려서 움직일 수가 없는데 방문을 열고 엄마가 들어와서 깨워주시나 보다 하며 기뻤는데, 그게 엄마가 아니었다. 어느 날 밤에는 꿈을 꾸다가 방의 한 구석 천장에 내가 떠 있는 꿈을 꾸었다. 일본에 처음 어학연수를 같이 갔던 룸메이트와 함께였다. 그녀와 나는 천장 한 귀퉁이에 둥둥 떠서 침대에서 자고 있는 내 육체를 바라다보며 웃고 있었다.
일본에 처음 연수를 갔던 기숙사의 이층 침대에 누워서 감기 몸살에 시달릴 때는 알 수 없는 남자의 검은 팔이 침대 안으로 들어와 나를 잡으려고 했었다. 그 기숙사에는 공동 목욕탕이 있었는데, 나는 절대로 거기에 혼자 가서 씻지 않았다.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이 일부러 가려고 했었다. 그때 내 룸메이트는 정 반대로 사람들이 없는 새벽 시간에 가서 혼자 씻다가 욕탕에서 뭘 봤었다고 했다.
일본은 즐거운 놀이터가 되기도, 한 없이 우울한 기운이 감돌기도 하는 신기한 나라였다. 물에 둘러싸여 있어 공기가 무거운 탓이었을까? 아니면 공포 영화가 유명한 나라이고 실제로 그런 영들이 가득한 곳이어서 그랬을까. 일본은 불교 (이것도 백제 시대에 한국에서 건너가 자리 잡았다) 뿐 아니라 만물의 신들을 모시기로 유명한 곳이다 (야오야 신'은 특정 신을 지칭하기보다, '야오야(八百屋, 채소가게)'라는 단어의 '야오(八百, 800)'가 '아주 많음'을 뜻하는 상징적 의미라고 한다.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는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도 비슷한 느낌이다). 물건이나 나무에 신이 깃들었다는 설정은 가끔 소름 돋게 무섭다. 내가 걷다가 생각 없이 무심코 건드리는 것에 의해 저주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 말이다. 영화 '파묘'에도 나오는 대사이지만, 일본의 귀신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자들을 저주한다. 한국의 귀신들은 (지박령이라도) 대부분 한을 풀어주면 사라진다고 알려져 있다. 일본의 겨울은 서늘하고 춥다. 한기가 느껴지는 바닥에 대부분 난방은 통풍 기능을 켜 둔 에어컨이 대신한다. 머리는 차고 바닥이 뜨거운 한국의 온돌과는 정반대의 머리가 어질어질할 것 같은 그런 환경에서, 나는 '한걸음 더 들어가' 참 많은 공포 영화들을 보았다. 나는 나를 괴롭혀댔다. 공포 영화의 결말은 늘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구원받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그것을 바랐었다.
나의 불면증은 참으로 오래된 것이다. 긴장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 꼭 가위에 눌린다. 마음에 둔 것이 있어서 생각을 하다 보면 그런 내용이 꿈에 나온다. 마음을 편안히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명상 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공포영화 이야기에 끝맺음을 해 보자면, 감독과의 대담을 쫓아다닐 정도로 좋아했던 구로사와 기요시(黒沢清) 감독에 대한 회상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아트선재센터에서 나름 브레송의 영화들을 보러 다녔다 (그때 들었던 프랑스 문화 수업의 영향이었다). 그러다가 이 일본 감독의 '지옥의 경비원'이라는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다음 링크)
https://www.cinematheque.seoul.kr/bbs/board.php?bo_table=film&wr_id=494&page=425&ckattempt=2
B급 정서의 문화 예술 작품을 거장이 만들면? 그건 매우 잘 만든 B급 정서가 된다. 나는 공포, 혹은 복수, 혹은 이 정서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의 영화들을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큐어 <cure>" "회로" "밝은 미래" "도플갱어".. 한국에서도 유명한 배우 야쿠쇼 코지가 이 감독의 페로소나였다 (이 배우는, Shall we dance라는 영화로 한국에 잘 알려져 있다). 2006년에 일본에 1주일 정도 여행을 갔을 때, 영화관에서 본 "절규-redistribution"라는 영화는 진짜 너무 무서워서 영화관에서 막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 무섭고도 재미있게 봤던 공포영화는 '장화, 홍련' 이랑 '폰' 정도였는데 쿠로사와 기요시는 공포영화에 대한 내 인식을 완전히 박살 내주면서 소름 돋게 만들었다. 일본인들 대부분의 주거 형태가 목조 가옥인데, 이 영화를 보고 그날 밤에 집에서 혼자 있을 수가 없어서 비행기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공항으로 가는 새벽 첫 차를 타고 빠져나왔던 기억이 난다. 더 정확이 말하면, 그 1주일의 여행 기간 동안 나는 이 글에 자주 등장하는 '룸메이트'의 부탁으로, 그녀가 일본에서 일하면서 묵었던 원룸을 정리해 주러 간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그 원룸에서 1주일 간 숙박해도 되니까, 가구랑 세간살이를 폐기처분 해 줄 것과, 관리인에게 열쇠를 넘겨주기를 부탁했다.
위의 일로 나는 예기치 않게 일본에서 세를 살다가 일찍 귀국하게 되면 어떤 절차를 겪어야 되는지 알게 되었다. 알고 있어도 나쁜 건 아니었으나,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기는 했다. 부동산 업자는 열쇠를 회수해 가면서, 내가 아직 하루 더 자야 하는 원룸의 방 앞에 임시로 경첩을 달아 자물쇠를 채워두고 가는 거였다. 나한테 그 자물쇠 키를 주면서, 나중에 나갈 때 그것만 잠가두고 가라면서 말이다. 그 여행의 마지막 날에 영화관에서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를 본 것은 실수였다. 집 밖보다 집 안이 더 무섭다고 느껴진 순간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배낭을 싸서 한밤중에 편의점 앞으로 도망쳐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지하철 역으로 간 것이었다. 참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이불 안보다 안전한 곳은 없는데, 이 경험을 통해서 나는 사람의 마음속이 지옥처럼 어지러우면 안전한 환경 속에서도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 그 지옥 속으로 갈 일은 만들지 않으며 살면 참 좋겠다고, 어쩌면 인생은 별 거 없이 마음 편한 게 다일 거라고 생각했다.
적당한 긴장감은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그리고 완화과 되면 좋은 잠을 잘 수가 있다. 올 한 해를 정리하면서 몇 개의 송년 모임을 거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누가 물었다.
'올해 단 하나의 성취를 뽑자면 그게 뭘까?'
'나를 좀 덜 달달 볶게 된 거'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이상의 대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가끔 누가 거세게 방문을 두드리며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 꿈을 꾼다. 하지만 그 빈도는 일본에서의 시절과 비교하면 현저히 줄었다. 이제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도, '스파이의 아내' 같은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