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극생비 1

세상은 돌고 돈다

by 장서율

주말드라마 '프로보노'를 보다가 회사에서의 명운을 걸고 상대방 로펌에서 고객의 케이스를 쟁취해 와야 하는 장면을 보았다. 고객은 아이돌 스타, 그리고 회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공익변호사 (프로보노) 팀은 상대 로펌의 팀과 비교하면 학벌도 내세울 것도 많이 없다. 여기에서 빛을 발하는 건 - 현실은 다를지 모르지만- 고객을 케이스가 아닌 사람으로 보는 '덕후'의 마음이었다. 프로보노 팀 중 누구 한 명이 고객의 팬클럽 회원이었을 줄은, 그래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 공자의 논어에 나온다는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라는 말은 덕후들 사이에서는 꽤 많이 인용되었다. 바로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세상 속에서 천재성 만으로 살아남기는 힘들다. 삶의 영속성을 위해 하는 일을 버텨야 하는 현대인은, 어떤 일에 미쳐서 그것을 즐겁게 행하는 사람을 이기기 매우 어렵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이왕 그 일에 인생의 대부분을 쓸 바에야, 내 적성에 맞고 즐기는 일이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 시리즈의 제목 '낙극생비(樂極生悲)'는 직역하면 즐거움 끝에는 슬픈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낙이 있으면 고생도 따른다는 말로, 세상일이 돌고 돈다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흔히들 고생해서 바닥을 찍고 지하까지 내려가면 다시 올라올 일만 남았다고 말하는데, 그 어둠을 온전히 이기고 빛으로 나와야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게 인생의 한 Cycle 혹은, 하나의 Chapter임을 나는 지금 여기, 싱가포르에 오기 전 7년 정도 아프게 겪었다. 대학을 졸업했던 순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업으로 선택한 것에 대한 대가였다. 나는 신입회사원 생활을 억지로 버티다 탈이 난 뒤, 직업을 바꾸려고 회사를 관두고 대학원에 진학했었다. 그런데 전일제 대학원생 생활이 결코 쉽지는 않았고, 생각지 못한 일들이 주변에서 자꾸만 일어났다. 내가 초래한 것인지, 주위에서 잠자코 있던 것들이 화산처럼 폭발해서 한꺼번에 내게 몰아닥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강도 때문에 나는 엉뚱하게도 불교대학에도 다녔고, 사주명리학 공부도 했고, 타로카드 리딩도 배우러 다녔다. 다시 한번 돌이켜 보지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조금 멀리서 내 상황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좋았을 걸, 나는 살면서 자꾸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았던 거였다. 그 시절의 나는 최악의 운을 달리고 있었다. 차라리 가만있는 것이 백 번 나은 그런 운이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 신은 시간으로 사람을 다스린다는 말은 지나 보니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대학원 졸업을 어찌어찌 2년 만에 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서류 심사가 끝나가는 추운 겨울이었고 직장이랑 조교 생활하며 모아둔 돈도 거의 바닥이었다. 답답해서 술을 마셨다. 자기 검열을 약간 내려놓자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지금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뭘까? 뭘 할 수 있을까?'


잠시 후 눈을 번득인 채 나는 노트북을 켜고 미국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의 국내 1호점 아르바이트 입사 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공부할 때, 독서할 때, 직장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친구를 만날 때, 내가 제일 좋아했던 그 장소 말이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는 이렇게 둘러댔다. 뭐, 유학 가면, 여차하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니까, 바리스타 일도 배워두면 좋겠지. 취기가 올라 작성한 원서를 보고 다음 날 1호점 옆 2호점의 젊은 여자 점장님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서율 씨, 내일 면접 보러 올 수 있나요?'


그렇게 나는 4대 보험 제외 후 한 달을 풀로 근무하면 정확히 88만 원이 통장에 꽂히는, 커피점 아르바이트 사원이 되었다. 커피점의 일은 생각보다 너무 고되었다. 미국의 SOP (Standard Operating Procedure)에 맞춰 모든 것이 매뉴얼 화, 정량화되어 있어서 근무 시간에는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의자에 앉는 것이 허락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회사는 하지정맥 수술비를 지원한다고까지 말했다. 포지션은 크게 Cashier, Back up, 그리고 Barista 이 세 가지로 나뉘었다. 나름 대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 짬이 좀 된다고 자신했건만, 포스(POS)를 찍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각종 카드 할인, 현금 영수증, 기타 등등. 백업 포지션은 더 가관이었다. 매장 안에 놓인 쓰레기통 비닐봉지를 back room으로 가져와서, 고무장갑을 끼고 모든 것을 해체해야만 했다. 종이컵은 사이즈 별로 물로 헹궈 재활용으로 만들었고 커피 찌꺼기는 따로 보관했다. 내부는 금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통 안에서는 종종 담배꽁초와, 매장 내에서 쓰는 포크 혹은 접시가 발견되었고, 제일 힘든 것은 음료병 안에 영수증을 잘게 찢어버리는 손님들이 있어서였다. NGO에서 유독 미국계 프랜차이즈를 겨냥해 불시 조사를 한다며, 재활용에 대해서는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 점장의 논리였다. 그렇게 매장을 몇 바퀴 며칠씩을 돌고서야,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는, 라마조코라는 반자동 커피 기계를 써서 에스프레소 원액을 추출해야 했기에 원두 갈기, 스탬핑, 추출까지 꽤나 번거로웠다. 원액을 추출하면 10초 내에 우유든 물이든 섞어서 제조에 들어가야 크레마 (커피 거품)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서, 그 안은 전쟁터였다. 그리고 그 매장은 목이 좋아서 늘 열 명 정도 씩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좁은 바 (bar) 안에 캐쉬어 두 명, 바리스타 세 명이 들어가서 늘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음료랑 빵을 서빙했다. 한 번은 샌드위치를 쇼케이스에서 집어서 오븐에 데워야 하는데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나는 '악'하고 소릴 질렀다. 옆에 서있던 부지점장이 내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빨리 하나 새 거 집어와서 데우라고 소리쳤다. 나는 그 어떤 조직에서보다, 이곳에서 팀워크를 배웠다.


석사 졸업생 같은 타이틀은 이 일에서 필요 없었다. 나는 커피 만드는 일을 꽤 좋아했다. 친구들을 불러서 내게 할당된 그날의 커피를 대접하기도 했다. 외국인 손님들이 많은 매장이어서 그들과 대화를 하는 것도 좋았다. 나의 점장님은 당시 한 아이돌 그룹의 팬이었다. 그래서 매장에는 늘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장딴지가 땡땡 부은 날도 많았지만 꽤 몇 달을,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쓰러져 잠들 수 있었다.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었기에.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나의 밑바닥에서 튀어올라 내실을 다질 수 있었다. 그 지점은 한 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어서, 일이 끝나면 나는 여기저기 건물들을 기웃거리고는 했다. 나는 박사 공부가 하고 싶었고, 그래서 너무나 합격증과 장학금이 필요했다. 그리고 되도록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때는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와 부모님을 납득시킬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듯이, 원하는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인생은 참 그래서 재미있다. 힘든 시간은 그래서 나에게 더욱더, 내려놓으라고 말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캠퍼스를 돌다가 두 개의 광고를 보았다. 하나는 심리상담학과 박사과정생이 하는 10회기 내담자 모집의 글이었고, 또 하나는 국내 모 도서관의 리서쳐 공고였다. (대학교에 다닐 때 근로장학생으로 중앙도서관 사서 보조로 3년을 일했던 경력이 내게는 있었다.) 나는 둘 다 지원했고, 둘 다 합격했다. 커피점 일을 한 지 4개월 정도 지났을까? 나는 다시 새 직장에 나가게 되었다. 그 직장은 책이 그득한, 내가 공무원 신분이었다면 너무나도 좋았을, 그런 환경의 곳이었다. 아직 여기에서 싱가포르까지는 멀지만, 커피점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지금의 일을 하게 된 경유는 다음 편으로 이어진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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