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냄새 7

노는 걸 좋아하는 한 많은 아이

by 장서율
우리를 뜨겁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은 동시에 우리에게 화상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이동진 님, '밤은 책이다', 페이지 140)라는 문장에 깊이 공감한다.


나는 불나방처럼 환하게 빛나던 한 지점만 찾아 달려가다 보니, 내 살이 그을려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사랑을 했다. 사실 나는 나의 일련의 문제들이 오롯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나 자신을 잘 몰랐기에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탄 삐딱선들은 대부분 내가 나를 과소평가했던가, 아니면 과대평가해서, 혹은 잘 몰랐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의욕이 앞서고 행동력만 빠르면, 대부분은 실패하기 쉬웠다. 삶의 어떤 지점에서는 '될 대로 돼라'는 식으로 나 자신을 내던지기도 했었다.


그런 나의 무모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던 걸까?


나의 엄마는 노래를 부르는 걸 좋아하셨다. 어릴 때 집에는 샹송, 팝송, 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라디오 혹은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나왔고, 기억하기로는 LP 턴테이블도 있었다. 몸에 새겨진 기억들로 나는 또래보다 예전 노래를 많이 아는 탓에, 나이를 속이지 않았느냐며 신분증 꺼내보라는 우스개 소리를 많이 들었다. 덕분에 나는 음악에는 잡식성인 아이로 자랐고, 레코드 수집에도 욕심을 부렸다. 그리고 내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 가끔씩 친구들과 갔던 노래방에서였다. 90년대 중반에 노래방에 가면 전체 시간을 녹음해 주는 서비스가 있었다. 그 시절의 정서는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그냥 걸었어' 같은 노랫말처럼 달짝지근하고 몽글몽글한 첫사랑의 느낌이 가득했었다. 실제로 그즈음에 좋아했던 남자 사람 친구랑 자주 노래방을 가고 강변길을 걷기도 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가끔 스트레스를 풀러 갈 때는 노래방만한 곳이 없었다. 나는 홍콩에서도 반에서 별로 친하지 않다가 노래방 가서 취향이 비슷한 걸 알고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도 있었고, 가끔 차려입고 압구정동 어디쯤의 노래방에서 동창회 같은 걸 하기도 했었다. 대학입시가 끝났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지긋지긋했던 '수학의 정석'을 파는 일이었다. 그때 받은 돈 2만 원을 들고 친한 친구와 노래방으로 달려갔다. 내지르고 내질러도 까르르 웃음이 넘쳤던 순간들, 뭐가 그렇게 즐거웠을까.


나는 기대에 가득 차서 대학생이 되고 나서 오히려 더 우울해졌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맺는 관계들에 대해서, 특히 좋아하는 감정을 가진 상대에 대해서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도 없는 것 같다. 만나보고 나서 이 사람이 나와 맞지 않는 걸 깨달아가면서도, 이미 마음을 주었기에 떠날 수 없는 고통이 생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크기로 사랑해 주지 않음에 상처받고, 센 척하고, 괜찮은 척하는, '내가 아닌 마음'들이 나를 제일 많이 아프게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대학교 앞 노래방에 1년에 한두 번은 혼자서 방을 잡고 세 시간 정도씩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이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그냥 어딘가에 털어놓고 싶은 것들을 노래를 부르며 풀었던 것 같다. 콘서트에 가는 것도 좋아했었는데 노래를 따라 부르고 뛰고 오면 온몸이 개운하게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게 참 좋았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발라드 공연보다는 락 밴드나 힙합 공연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한국에서만 그랬을까. 일본에서도 나는 매한가지였다. 콘서트를 보러 일본 열도를 돌면서, 혼자든 여럿이든 노래방에 갔다 오면 내 몸에서 쓸데없는 고통은 제거한 사람처럼, 팍 하고 긴장이 풀리는 거였다. 뭐가 그렇게 쌓아놓은 마음들과 하지 못한 말들이 많았기에 그랬을까.


일본 교환학생 시절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해야 했었던 날 아침, 그 전날 밤부터 유학생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밤을 지새웠다. 출국 시간 몇 시간 앞두고 작은 방 한 칸에 돌아와 급히 짐을 챙겨 나오던 순간. 나는 내 마음이 슬픈 것을 잠시나마 숨기려고 하는 사람처럼 밤새 소리를 지르고 나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채로 귀국했다. 몸을 혹사시키면 마음은 잠시 소리를 내지 않지만, 그 상처와 하지 못한 말들은 두고두고 남아, 나를 괴롭혔다.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노래를 부르며 나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는, 하지 못한 말의 행간을 읽어달라는, 사랑했던 상대에 대한 외침이었음을 말이다. 이제는 그 자리에 그가 있었는지 아니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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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실패하여 고통을 이겨내고 난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제는 돌아볼 수 있다. 예전의 나를 생각해도 더 이상 마음이 슬픈 연민의 감정이 아니라,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앞선다. 온전히 혼자여도 괜찮았지만, 사랑을 하는 대상에게 같은 크기로 사랑받을 수 없음에 받는 고통, 그 상대는 꽤 오랜 기간은 나의 엄마, 스승, 그리고 중요한 타인으로 모습을 바꾸어 갔다. 숨을 내쉬려는 행동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소리 질러냈던 순간들의 마음을, 나는 후회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행복하기도 했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에게 맞는 방식으로 그 마음들을 풀어나가고자 했기에. 이제는 훨씬 내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기분이다. 마음결이 잔잔해진 만큼 단단해졌기를 바라는 밤에, 적어보는 고백이다.


'사랑했기에 행복했다'는 말이 충분히 수긍 가는 것처럼, '사랑했기에 고통스러웠다'는 말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게 무엇이든 강렬한 경험과 감정은 모든 것을 뒤틀어버립니다. 그리고 강렬한 것들은 스스로가 강렬한 만큼 요구치가 높고 클 수밖에 없기에 그만큼 더 쉽게 좌절과 상처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이동진 님, '밤은 책이다', 페이지 138) 이 문장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더없이 명료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가끔 노래방에 간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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