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고 파괴적인
지난 목요일 오후, TV 뉴스를 보면서 홍콩의 아파트 대단지에서 일어난 화재가 얼마나 크고 잔인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홍콩의 마천루는 유명하고, 아파트 단지들도 엄청나게 높고 또 크다. 그 아파트의 가격 또한 (여기서도, 한국에서도 그러하듯) 누군가의 평생 월급의 대부분을 저당 잡힌 것일 수도 있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버린 삶의 터전 앞에서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고 한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도 내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월세 집에 대해 위험 부담 보험을 들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참으로 감사한 요즘에, 오래전에 일본에서 공부할 때 방 안의 뉴스에서 보았던 9.11 테러 보도가 문득 생각이 났다.
그건 2001년의 일이었고, 처음 도쿄로 어학연수를 하러 갔을 때였다. 나의 룸메이트는 마침 방에 없었고 나는 작은 방의 바닥에서 그만큼 작은 TV를 틀어놓고 시리얼을 먹고 있었다. (그때 내가 일본에 가게 된 배경은 이전 글에도 나와 있다.) 뉴스 앵커가 갑자기 빌딩 두 개에 비행기가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긴급 속보'를 띄우기에 아직 일본어 듣기가 완벽하지 않았던 나는, '저것이 영화의 한 장면인가' 하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는 핸드폰 뉴스 검색도 어려웠고, 인터넷을 하려면 따로 지정된 넷 카페에 가서 봤어야 하기에 자세한 내용은 귀를 쫑긋 세우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먼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되 그 이후의 정치적, 지역적 여파, '악의 축'과 '테러와의 전쟁' 선포는 제법 명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2002년의 미국 내 정치적 양상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는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를,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삶을 마구 다뤄서는 안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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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에는 儚い気持ち (덧없는 감정)이라는 정서가 있다. 侘び寂び (와비사비 : 일본에서 말하는 미적형태 속에서 불완전함과 간소함, 덧없음을 나타낸다)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사라져 버리는 것, 이뤄지지 않은 사랑, 풍요한 감정 가운데 간결한 마음, 그리고 그것의 덧없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노래 가사 속에서 많이 보였고, 그다음에는 숱한 일본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서 보였다. '왜 이뤄지지 않는 사랑이 아름다운 거지?'에 대한 물음이 해소되기 전에, 그냥 그런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해 주는 영상미에 취해버렸을 때 즈음,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이 원작이었던 '봄의 눈'이라는 영화에 푹 빠져버렸다. 생각해 보면 참 답답하기 그지없는 사랑이야기를,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그렸는지. 마치 내가 그 비운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그리고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그즈음에는 실제로도 우울한 성향이었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무라카미 류의 거의 모든 소설을 읽었으며, 이상하게도 어두운 색의 옷들을 입었더랬다.
기본적으로 나는 어두운 성향의 인간은 아니었다. 그저 주변의 영향을 빨리 받고, 특히 언어와 문화에 대해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특징이 있었을 뿐이다. 홍콩에서 영어를 배울 때의 나는 좀 더 환하고 거침없이 단단했고,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의 나는 학창 시절 한가운데서 생긴 마음 깊은 상처를 가지고 대학에 진학한 상황이었다. 일본어의 控えめ (히카에메 : '겸손한', '삼가는')라는 마음가짐은 나를 180도 바꿔 놓았다. 돌려서 말하고, 짐짓 괜찮은 척하고, 짝사랑에 익숙한,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런 성향의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돌직구인 성격이었어도 괜찮았을 대학생 시절 4.5년 동안, 20번이 넘게 혼자 있어도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 일본에 아주 자주 드나들었다. 일본이라는 곳은 내게는 이 모든 정서를 암묵적으로 포용하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대단히 인내심이 많은 여인네 같은 나라였다. 지진이나 홍수, 태풍에도 또 털고 일어나야만 하는 억센 운명의. 그에 비하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남아는 훨씬 더 그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인간적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싱가포르는 좀 예외이다. 나중에 더 다루겠지만 여기도 고도의 경쟁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있기에, 아이러니한 사회의 성향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실속을 챙긴다. 동남아에 식민지배를 할 때의 노하우로 그들이 챙겨둔 알짜배기 토지들만 해도, 참 철두철미하게 계획했구나 싶은 점이 많이 보인다.
지금 나에게 일본은, 그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얄미운, 그런 나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