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무엇인가에 몰두해서 자아를 잃어버리는 것. 뭐든 빠져서 시간을 보내면 나의 현재 상황을 잊게 되는 것. 덕질, 영화보기, 독서 (만화책 포함), 글쓰기 등등이 그런 몰입의 즐거움을 내게 선사해준다. 요즘 집에서 일하다 보면, 사람을 대면으로 만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게 되어버렸다. 좀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고 나의 내면에 귀 기울여 줄 수 있어서 좋은 것도 있는 방면, 간헐적으로 되돌아오는 타박성 질문 '너무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건 아닐까?'에 나의 현재 서 있는 곳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고민들을 할 때는 잠도 안 자고 제대로 먹지도 않고 내 감정 속에 고여있다. 외로움과 고독을 내 짝으로 생각하는 아이처럼.
'왜 이런 식으로 나를 벌주게 되는 걸까?'
나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곳에 열정을 쏟으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열광해 왔다. '덕업 일치' 같은 걸 해 내고 싶었던 순간들도 실제로 그런 회사들에 면접을 봤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꼭 마지막에 잘 되지 않았다. 딱 하나를 내려놓지 못해 내 삶을 나란 주체로 채우는 충만감이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살면서 버리지 못했던 '착한 딸, 엄친딸'의 타이틀. 그게 나의 서른까지의 인생을 정의했고 지탱했으며 나를 옭아매었다. 나는 내 애착의 대상인 엄마에 대한 인정 욕구가 너무 큰 아이 었다. 늘 아들에게 밀린 나의 입지를 그런 식으로 다져왔기에, 서른이 넘어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대한 소리를 내지 못했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그룹 크래쉬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혀서 자꾸만 다른 짓들을 했다. 예컨대, 내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풀기에는 도움 안 되는 잠깐의 중독과 몰입에 탐닉하기 (예 : 덕질, 영화, 여행, 음주 등), 슬프거나 답답한 감정이 올라오면 '졸리다'라는 말로 회피하기, 속은 행복하지 않은데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기, 마음도 없는 선 본 남자와 데이트 하기. 소중한 시간과 열정의 낭비.
쓸데없는 짓거리를 참 많이 하고 돌고 돌아 여기에 왔다. 한창 집에서 벗어나고 싶고 인생의 풍랑을 겪고 있을 때 내 옆에 참 좋아했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실제로 cc가 된 건 몇 달 안 됐었지만 그를 만나고 나는 참 자유로웠다. 그 친구는 내게 '늘 얼굴에 그늘이 있는 게' 마음 쓰인다고 했다. 우물쭈물할 때면 나를 눈물 쏙 뺄 만큼 나무라면서도 진짜 나 자신이 되기를 바랐던 그,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자기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나를 데려갈 만큼 나를 좋아해 준 사람이었는데, 엄마는 그의 배경을 듣고 한 마디로 퇴짜를 놓았다.
'택시 운전기사 아들이라며, 너 아버지가 허락할 것 같니?'
그 이야기를 듣고 숨이 턱 막혔다. 엄마가 늘 입버릇처럼 했던 말들이 있다.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아봐야 하지 않겠니'
그럼 나는 속으로 외쳤다.
'우리가 어때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버지처럼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일할 자신이 없고, 아버지의 편안한 노후를 송두리째 가져간 배우자와 이혼하지 않을 자신도 없다.
엄마는 아버지가 주는 가정의 안락함에 안주하지 못하고 늘 밖으로만 도셨다.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 책임감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는데, 엄마는 뭐에 홀린 것처럼 눈에 보이는 가치만 쫓으며 우리들을 힘들게 했다. 그렇게 된 엄마의 인생을 이해해 보려고 했던 적도 있지만, 내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다. 내가 먼저 살고 봐야 할 것 같아서. 사주에서 이야기하는 대운이 두 번 돌고 나서야 (12년 x 2 = 24 년) 엄마는 공중에 붕 떠 있다가 현실로 내려온 것 같다. 비교적 어린 순간에 내가 엄마를 필요로 했던 순간들의 그녀의 부재는, 나로 하여금 늘 목표와 동기를 부여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를 갈망케 했다. 태생으로부터 열정이 많은 나를 가장 나 다운 길로 인도해줄 스승을 원했다. 결국 '나 다움'의 해답은 스스로 찾아야 했던 것이지만, 그런 스승을 찾아 헤매다 내게서 다른 것들을 원한 가짜들에게 많은 배신과 환멸도 느꼈지만, 그래서 많은 세월을 소비했지만.
지금도 가끔 밤을 새 가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건 나 자신의 인생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좀 더 많이 쓰고 싶어서 그렇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하고 싶어서, 더 이상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현명하게 사는 것인가.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고, 무엇을 하고 싶어서 노력하는지, 내게 소중한 가치들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나 다운 일인지를 아는 것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주신 내 실명 이름은 불가의 것이다. 실제로 동생인 아들의 이름은 작명소에 가서 지었으면서 딸인 내 이름은 아버지가 책 보고 만들어 주셨다고 한다. 동생은 서른 넘어 그 이름이 잘못 지어졌음을 알고 개명을 했다. 나도 이름에 쓰면 안 되는 한자가 들어가 있다고 하여 개명하려고 했던 적이 있지만, 엄청 귀찮다는 동생의 만류와 함께 내 불교적인 뿌리를 잊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두었다. 이런 순간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각주 1)'을 마음에 새긴다. 어린 날부터 절에 가서 향 피우고 기도하는 걸 좋아했던 나, 애늙은이였대도 이게 나다. 마음속에는 상처 받은 아이가 방치되어 있으면서 마냥 어른이려고 했던 나와 지금 어느 정도 몸 나이와 마음 나이의 밸런스를 맞춘 나. 다행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을 느낄 수 있어서. 아주 많이 세상에 마모되지 않고 나 자신임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각주 1 : 삼계(三界)란 천상·인간·지옥계를 말하며, 일곱 걸음을 걸어갔다는 것은 지옥도·아귀도·축생도·수라도·인간도·천상도 등 육도(六道)의 윤회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유아독존'의 '나'는 석가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개개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의 존귀한 실존성을 상징한다. 석가가 이 땅에 온 뜻은 바로 이를 깨우쳐 고통 속에 헤매는 중생을 구제하고 인간 본래의 성품인 '참된 나(眞我)'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