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으며 피는 꽃은 없다

나의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 (midlife crisis)란

by 장서율

요즘도 가끔 욱하고 눈물이 날 것 같은 때가 있다. 별다른 사건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밤바람이 너무 좋을 때, 하늘에 뜬 달이 애처로울 만큼 빛날 때, 오랜만에 먼 곳에 있는 친구가 그저 정말 나의 안부가 궁금해서 연락하고 순수하게 걱정해 줄 때 (학습된 무기력감처럼 학습된 능력으로 난 이제 오랜만에 연락 오는 모든 사람들이 돈이나 기타 등등의 '용건'으로 내게 연락하는 건 아닐까 겁이 난다) 그저 정확히 알지 못할 그 '감정'으로 눈물이 왈칵 솟아오른다.


그렇게 있다 보면 사랑한 순간들도 또 미워한 순간들도 그렇게 잔잔하게 눈 앞에 스쳐 지나간다. 행복한 기억 속에 웃는 나도, 아픈 기억 속에서 마음속에 피 흘리며 우는 나도 지금은 그저 모두 나의 일부분임을 알고 받아들인다. 나의 내면에 있는 그 아이를 너무 아프게, 억지로 떼어 놓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저 충분히 그 애를 울게 하고 또 웃게 하고, 자신만의 놀이터에서 놀게 한 뒤 그 애가 가야 할 곳으로 서서히 놓아주는 게 나에게는 제일 잘 맞는 이별의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너무 좋아서일까 세상도 이 정도면 살 만하게 마음 편해진 것은 아닐까 감사하면서 말이다.


한 바탕 내 안을 헤집으며 무언가를 쓰고 나면 시원함과 쓸쓸함과 아주 약간의 자기 연민 같은 감정이 올라온다. 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그 감정 속에서 나는 잠시 머무른다. 마치 이 악물고 달려와서 그동안 어떻게 다스려야 했을지 모르는 내 안에 꽉 막힌 그 감정들을 내 보내고, 텅 빈 마음속이 마냥 낯선 사람 마냥 그렇게 조금 있는 것이 새롭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다. 항상 마음속에 뜻뜨미지근하게 남았던 일관된 감정은 '분노'에 가까웠다. 시시때때로 대상이 바뀌었지만 늘 베이스를 내어주지 않았던 건 나의 엄마. 그녀를 미워할수록 그녀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나의 자아가, 내 안의 어린아이를 막 혼내고 있었다. 우스운 인과 관계인가, 잘 모르겠다. 심리학을 배우면서 내가 내 병을 알고 고치고 해야지 했던 건 참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걸 얼마 가지 않아서 깨달았다. 발달 심리학 강의 초반 즈음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피는 꽃은 없다고, 변화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습성이고 발전'이라고 우릴 가르치셨던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변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내 에고가 얼마나 미련해 보였던지. 정신분석학을 대학원 박사 과정으로 듣고 싶었던 이유도 실은 나의 정신분석 결과가 궁금해서였던 건 아닌지. 사실은 그때 도망칠 구석이 필요했던 건 아닌지. 세월이 이런 대책 없는 합리화를 찾아 이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내가 반갑다. 외로워도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에게 애정을 갈구하지 않는, 대상을 만들어 증오하고 미워하지 않는 나여서, 주변의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나여서 감사하다. 오늘 레슨을 받다가 골프 코치분이 내게 물으셨다.


'아일린은 나이가 몇이에요?'

응당 이제는 이렇게 대답한다.

'몇 살처럼 보이는 데요? 저 나이 많아요'

예전에는 상대방이 '아일린 그래도 동안인데요' 이렇게 말씀해 주시곤 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는 그냥 내 나이로 보이는 것 같다.

유전인가 머리카락도 조금씩 더 많이 빠지고, 팔자 주름도 생기고,

어느 순간 흰머리도 생기지 않을까. 아마 슬프고 놀라서 울지도 몰라.

한 살 터울인 코치님이랑 입을 모아 말했다.

'마음은 아직 이십 대 초반인데 (세월이 참 빠르네요)'

그래도 그 세월의 의미를 알기에 함께 웃는다.


삶은 아주 작은 기억의 조각들의 모음집 같다. 보고 싶은 만큼 보이고 알고 싶은 만큼 알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보지 않으면 평생 모르고 보게 되면 평생 들여다볼 나의 내면 그 아이. 나는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지 않을 만큼' 모험을 하고 설렘을 잃지 않으며 살려고 한다. 나의 배터리가 닳을 때까지 글을 쓰고 또 그렇게 쓰고 치열하면서 무던하게 살 수만 있다면 하고 행복해하며 잠에 든다.


사진 출처 : https://www.newstatesman.com/culture/books/2016/07/midlife-crisis-why-middle-age-isnt-problem-be-sol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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