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쓰는 자가 치유

깨달음과 통합, 아일린 떼라피

by 장서율

아일린 떼라피 :


요즘은 무엇을 하고 있든 화두가 생각나면 글이 쓰고 싶어 진다. 한 사람이라도 내가 쓰는 글로 감명받아 생활이나 성격에 아주 작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면, 내가 느끼고 있는 바와 같이. 나는 글로 비로소 근원적인 문제 - 엄마와의 관계와 삶에 대한 나의 태도- 가 개선되고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칫솔을 입에 물고 있다가도, 잠을 자려다가도 생각이 나면 몇 자라도 남겨보리라 다짐했다.




삶에 대한 나의 자세 확인 :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이렇게 쉬어가며 반추할 고비들을 만들어 주시니, 충만한 느끼게 해 주시니, input 대비 output을 주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엄마와 나의 30년 어긋남. 몇십 년을 쌓아온 울분이 과거를 회상하듯 읊조리는 내게 그때 이야기는 듣기 싫지만 미안했다는 말로 대신하는 엄마. 그 말 한마디로 산책을 다녀온 내 몸이 마냥 침대 위로 스르르 녹아버린 밤. 살면서 그동안 많이 피곤하고 고단했는데 그 이유를 잘 몰랐었다. 나는 칭찬 한마디면 완전히 고래처럼 춤추는 아이였는데 부모님의 이해와 사랑을 못 받았다고 느꼈으니까.


그래서 표현은 중요하다. 칭찬은 인색하면 좋지 않다는 대표적 예가 나란 사람이다.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도 말로 해 주지 않으면 사랑받는 줄 모르는 내가 가끔 싫다. 잘하다가도 잘한다는 신호를 주지 않으면 또 스스로를 의심하고 의심한다. 좋게 생각하면 동기가 되어 내 삶을 계속 쳇바퀴 돌게 할 수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쉼은 주지 못한다. 스스로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이 되어야 비로소 쉴 수 있다.


삶은 아주 작은 편린들의 모음, 보고 싶은 만큼 보이는 것들, 알고 싶은 만큼 알게 되는 것들 투성이다. 요즘은 나의 배터리가 닳을 때까지 글을 쓰고 그렇게 치열하되 무던하게 살 수 만 있다면 기도하며 설레며 잠에 든다. 한 바탕 글 속에 퍼부어 풀어낸 다음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 (사랑하고 미워하는 감정의 공존, 각주 1)과 함께 번아웃이 온다. 그러나 가만히 그 감정을 관찰해 보니 내 안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고 있었던 것에 다름 아니다. 나만의 방식이고 의식이지만 생각해 보니 이런 과정이 또 필요한 누군가에게 적용될 수도 있다고 느낀다.




내 안의 실타래 풀어가기 :


자신의 화를 글로 적어내는 것 만으로 반은 풀린다. 쓰다 보면 내 화가 얼마나 치졸했는지 느꼈던 순간들이 많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와 싸우고 몇 달 동안 연락하지 않았을 때였다. 가까운 데 사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밉고 원망스럽고 보고 싶을 때마다 내가 화난 부분에 대해 열 페이지도 넘는 글을 썼었다. 그 반 정도는 그냥, 내 문제를 그녀가 건드린 것뿐이었다. 다시 만난 그녀와 화해할 때 우린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던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내가 잘 살고 있는 걸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고, 나 또한 그러하니. 또 세상엔 얼마나 많은 좋은 글들이 있는지, 필사를 해도 도움이 된다. 아름다운 시들을 모아놓은 책에 예쁜 일러스트를 넣은 책을 선물 받은 적 있다. 힘들면 읽어보는 게 아니라 시를 읽으며 직접 써보며 그 감성을 느끼도록 디자인된 책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 지면 쓰면 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감정이 사그라든다. 물론, 감정이 올라올 때는 이불 뒤집어쓰고 울어도 좋다. 그때 울고 툭툭 털어버리는 건 차라리 건강하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우는 캔디가 되어버리면 두고두고 후회한다. 빙산의 일각 (tip of the iceberg)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감정 저 아래의 빙산의 거대한 덩어리가 녹지 않은 채로 평생 내 마음속에 자리한다면 매캐하고 답답한 게 늘 체한 느낌인 거다.


불교 경전이나 성경의 사경을 해도 좋다. 경전을 사경 하면 생각이 경건해진다. 올바르게 살고 싶어 지게 만든다. 내가 가는 길이 옳은지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서부터는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무엇을 해도 행복의 열쇠는 내가 쥐고 있다. 나만이 그 어두운 기억의 문을 열고 나란 인간의 역사를 통해 내 그릇의 깊이를 완성해 나갈 수 있다. 내 마음은 방해받지 않고 나의 손가락은 마냥 젊다. 다만 살면서 나 자신을 아껴서 쓰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지금은 지나고 나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때 그걸 할 걸, 해야만 했어'라는 후회는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나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나의 연료는 한정되어 있기에 올바른 방향으로 이 열정을 써 나가고 싶다. 지금은 글을 쓰고, 사랑을 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나의 가장 좋은 것을 나누어주며 살고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목표는? :


일단 마음을 정하는 게 어렵지 길을 들어서면 가는 건 금방이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생기면 누구보다도 잘 걸을 수 있는 지구력을 타고났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다. 생각을 하고 말로 하고 글로 쓰면 이뤄진다. 충분한 인지와 암시가 이루어졌으므로 행동에 옮기게 되니까. 나는 2010년부터 해외 취업을 준비했고, 내 방 정리를 시작하며 집을 떠날 날을 기다렸다. 좌충우돌이었으나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있지 않은가. 노력하고 준비가 되면 하늘이 알아서 길을 열어준다. 자기 충족 예언( self-fulfillment prophecy, 각주 2)의 힘이다. 무턱대고 대책 없이 낙관적이지만 않으면 된다. '그냥 다 잘 될 거야'라는 결론보다는, '이런저런 노력을 했고 알아봤으니까 이 결론이 잘 될 거야'라고 믿는 게 더 안전하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우리 보스가 오늘 코로나에 빗대어 'shit happens! 라고 했다' (완전 똥 밟았어!라고 표현해야 할까!) 살다 보면 별의 별일이 다 생긴다. 살다가 예상도 하지 않았던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생의 불운들에 대해 프랑스 사람들은 'c'est la vie (that is life)'라고 말하더라. 꼭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입찰에서 불합 통보가 나오자 나를 믿고 서포트해 주던 중국계 직원은 그대로 나를 안고 울음을 터트렸고 그녀의 보스는 심심한 위로를 건네며 이 말을 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받아들이라' 고 하는 편이 차라리 더 친절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오늘 열심히 길 위를 걷고 있다. 나의 글과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위로가 만들 파장을 기대하며, 변화는 내 안에서 이미 이뤄지고 있으므로, 이것을 비로소 목도하고 공명해 줄 누군가를 위한 기록을 남겨본다.



각주 1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76738&cid=62841&categoryId=62841

각주 2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094267&cid=41991&categoryId=4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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