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코로나가 바꾼 건 단순히 자유롭게 여행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현실은 워크 퍼밋 (노동자 비자)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인데, 경기가 안 좋아지다 보니 이 나라의 자국민들이 하나 둘 견제를 시작한다. 바로 자신들의 밥줄과 관련이 있는 것이 나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이므로. 인구 550만이 안 되는 이 나라에서 약 2만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올해에만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 졌다고 한다. 그중 20% 정도가 연봉 수준이 비교적 높은 = 그래서 이 나라의 경제 순환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 층이었을 텐데, 거기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렌트 (월세) 다. 여기서는 자국민들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는 방편이 꽤 많다. 집값 전체의 5% 미만 정도만 현금으로 가지고 있어도 나라의 혜택이 많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임대 주택은 가질 수 있다. 생활비 충당의 한 방편은 임대 주택을 외국인에게 세 놓던가, 방 단위로 나눠서 세를 놓아 생활비를 충당하는 방법이다.
이곳에서 내가 머무른 최초의 집은 넓었고, 지저분했고 (관리가 되지 않은), 그에 반해 사람들은 나름 따뜻했다. 상처한 아버지와 아들이 사는, 나와 같은 처지의 대만 여자애가 세 들어 있는, 그런 방 세 칸짜리 보통의 임대 주택이었다. 나는 그나마 화장실이 딸린 방을 썼다. 방 값은 7년 전 시세로 역세권이라 월 백만 원이 좀 넘었다. 물가가 비싼 이 나라는 우스개 소리로 마시는 공기도 돈 내게 할 거라고 자국민들은 그러는데,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서인지 당연히 우리 같은 계층이 자기 나라에 공헌해야 한다는 인식이 박혀 있다. 사람이 같이 모여 사는 건 딱히 어려운 건 아닌데, 오히려 같이 살면 덜 외롭고 좋은 것도 있겠지만, 집 밥 해 먹길 좋아하는 내가 어쩌다 음식을 나누면 그게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기대치가 싫었다. 좋게 말해 '고맙다'이지 약간 나를 자기들의 가정부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인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나만 그런 걸 느끼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 6개월 정도 잘 지냈던 그 집은 그러나, 청소 상태가 안 좋아서 바퀴벌레나 도마뱀이 심심찮게 나왔다. 어느 날 내 방 침대 밑에서 내 팔뚝 만한 도마뱀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살충제로 그것을 죽여버리고 안절부절못했던 밤, 나는 다음 살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 집 아저씨는 돈으로 벌러 인근 국가로 떠날 것이라고 했다. 몇 년 동안 자기 아들 (대학생이었다)과 같이 살면서 옆에서 좀 챙겨달라는 말을 했다. 고작 6개월을 옆에 있었을 뿐인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면 정 같은 것도 돈으로 사는 나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옆 방 살던 대만 아가씨는 회사에서 징계를 받고 노동 비자가 캔슬 당해 일주일 내 출국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스튜어디스였던 그녀는 늘 새벽 6시가 좀 넘으면 부엌에 앉아 차를 마시며 있었다. 가끔 아침을 하면서 그녀를 만나면 자기는 급한 콜이 올까 봐 몇 시에 자던 이 시간에 깬다며 불면증을 호소했다.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는데 떠나던 날 새벽 그녀는 나를 포옹하며 '엄마처럼 살펴줘서 고맙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집주인 아저씨와 아들에게 인사도 없이 그 길로 트렁크 두 개를 들고 공항으로 떠났다. 가끔 SNS에 올라오는 사진 보면 대만 돌아가서 남편을 만나 아이 낳고 잘 사는데, 그날 그녀의 뒷모습은 쓸쓸해서 나의 이곳에서의 미래가 저럴까 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찾아보자고 그 집을 나와 한국인 가족이 사는 집에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
다음 집에서 그 가족들이 귀국할 때까지 3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하우스 셰어의 첫 조건은 상대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 잘 지냈다. 특히 아주머니가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주셨다. 혼자 살면 들을 수 없는 가장 그리운 말은 '잘 다녀왔어요' 였는데. 사람이 나가고 들어오면 해 주시는 그 한 마디에 힘든 일들도 버텨지더라. 시간이 지나서 이혼을 한 뒤 지금 하우스 셰어 하는 집에 들어온 지 어느새 또 3년이 다 되어 간다. 3층짜리 집에서 6명 정도가 사는데 집주인 아저씨가 관리를 위해 공용 공간에 보안 카메라를 엄청 달아두었다. 여기서 어제 그 사건이 있었다. 낮잠을 자는데 계속 단체 톡방이 울려서 보니 재택근무하는 임차인과 통근하는 임차인에게 공과금을 차등 부과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각각 계약서에 따라 세를 내고 사는 집이라 전기 수도세 같은 공과금은 보통 N분의 1로 계산하는데 그렇게 되면 계산이 복잡해진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더 가관인 게, 자국민 임차인이 구글 docs를 만들어 매일 출근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시간대를 기입하자는 거였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이 너무 싫었던 것이, 집은 쉬라고 있는 공간인데 내 돈 내고도 마음대로 있지도 못하나, 세 더 낼까 봐 밖으로 떠돌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그럼 주말도 계산할 거야?'
다행히 외국인 근로자가 나뿐만은 아니었기에 구글 docs이야기는 사라지고 원래의 계산 방식으로 돌아갔지만, 말을 먼저 꺼낸 집주인이나 그 자국민 임차인은 겸연쩍어했다. 합리적으로 보이고 싶어 하지만 그 속내는 다 '돈'일뿐이고 친한 척 해도 그냥 우리는 매달 수입을 내주는 머리 하나 둘, 일 뿐일 거라는 생각에 좀 마음이 그랬다. 어쩌다 부엌에서 내가 냄새 피우며 뭘 만들고 있으면 옆에 와서 말 시키면서 '먹어볼래?'라는 말을 할 때까지 있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시 현재 상황으로 돌아가서 집을 월세로 빌려 살아야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꽤 많이 본국으로 귀국한 만큼 자국민의 렌트 시장은 많이 축소되었다. 경기도 경기니만큼 외국인 근로자가 새로 직업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는데, 오래 알고 지낸 자국민 동료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년에도 임금 동결일까?'
'... 넌 안 물어보는 게 좋겠어. 넌 아직 영주권자 아니니깐'
'그래? 고마워'라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느껴졌다. 이 어쩔 수 없는 이분법이란, 사람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 코로나 상황으로 매일 같이 정부에서 문자가 오는데, 거기에는 확진자 숫자가 이렇게 나눠져 있다. '지역 사회 00명,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 00명'. 기숙사에 사는 외노자는 자국민이 기피하는 3d 업종 종사자이다. 주로 건설, 방역, 뭐 그런 쪽에 종사한다. 그들이 한창 격리되어 있을 무렵 코로나뿐 아니라 뎅기열 환자도 급증했다. 그들이 제초 작업을 할 수 없어서 그랬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그럴까? 외노자들은 철저히 열외일까? 대학생일 때의 나는 외노자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학교 수업 과제로 봉사 활동을 갔던 무료급식소에서 김장을 하던 첫날, 한 네팔 출신 여성이 봉사를 하는 걸 보고 적잖이 놀란 적이 있었다. 소외 계층을 돕는 소외 계층의 등장은 약간의 충격과 부끄러움으로 다가왔었다.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어떤 다수의 무리에 내가 끼지 못했을 때 다가오는 감정이지만, 내 자아가 확고하게 서 있으면 그런 감정이 무뎌진다. 사실 세상의 하고 많은 일 가운데 비교적 내게 수월한 것들이 있다. 여러 입장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견 통일 하기, 의사 경청하기, 결론 도출하고 회의록 작성하기, 기분 상하지 않게 살피기, 조그만 신호에도 반응하기. 특히 회의록 작성할 때 내 손가락은 키보드를 날아다닌다. 타자가 톡톡 쳐지며 문장들이 기분 좋게 뻗어나간다. 외국어나 한국어로 내게 이메일 톤을 다듬어 달라는 주변 동료들이 꽤 있었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건 영어든 일본어든 한국어든 다 똑같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쓰이는 주요 타인들에게 쉽게 공감한다. 이렇게 나에게 쉬운 일들이 남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고, 나에게 힘든 것들이 남들에겐 무척 쉬웠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 건 나 자신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생각해 본 최근의 결과이다.
외로움이라는 건 어떻게 내 안의 연료로 활용하냐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 상태를 잘 알고 올바른 방법으로 대처하면, 주변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거나 관심을 구걸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본다. 올바른 방법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으로 구성하면 된다. 예를 들어 나에게는 건강한 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적당히 먹기,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악기 연주, 글 쓰기, 친한 사람과의 유대감 확인하기, 독서, 영화 보기, 청소, 최소한의 수면 시간 확보 등등이 있다. 생각보다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는 나 자신과의 대화는 굳이 투쟁이 아니어도 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고 했지만, 내 마음자리 살피는 일은 실은 가장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다가서야 할 일이다.
저녁 어스름 내릴 무렵의 집 주변 산책을 나는 좋아한다.
음악을 들을 때도, 듣지 않을 때도 있다.
가만히 걸으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는 일, 나 자신을 알아가는 일,
세상을 가만히 바라보면 나는 그저 백사장의 모래알보다 하찮은 존재.
그러나 그런 나도 나 자신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람이다.
나를 알면 세상이 다시 보인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내며 씩씩거릴 일도 실은, 많지 않다.
내 감정을 잘 다스리면 감정적이 되지 않으므로 잘못된 판단을 할 확률도 낮아진다.
고요히 시작해보는 월요일 아침, 또 한 주를 잘 다스려보자는 생각으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