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 영화를 이제서야 보다니, 찬양하라 OTT 서비스
지난번 영화관에서 본 ‘미나리’ 이후 또다시 찾아온 사회적 활동의 제재 속에, 시간이 꽤 또 흐른 것 같다. 좋아하는 배우 박보검이 나온 개봉작 ‘서복’은 영화관에서 봤어야만 했다. 내용과는 상관없이 행복한 기억이었다. 최근에 개봉된 영화 가운데서도, 좋아하는 일본인 배우 야쿠쇼 코지(영화 Shall we dance? 의 주인공 역할 배우)가 나오는 ‘멋진 세계 (under the open sky)’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쉽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고, 주말에는 지친 심신을 달래기 바빴다. 너무 안방극장 (OTT) 친화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하는 대목이다. 동시에 빨리 이 방구석에서 벗어나 극장에 마음껏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다. 내가 사는 이 나라는 다음 주까지 한 달 동안 사회적 제재가 있어 하루에 두 사람 이상 만날 수 없다... 순전히 오늘이 현충일이라서, 이 영화를 택한 것은 아니다. 방구석에서도 나는 꽤나 진지하게 영화를 고르는 편이다. 해외에 있으면서 관람 시기를 놓쳤고, 안방극장에서 드디어 개봉했기에,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그리하여 드디어 이 영화를 만났다. 2014년생 대한민국 천만 관객 영화이자, 이제까지의 한국 영화 개봉 역사상 최고의 관객수를 동원한 영화 ‘명량’은, 우리 세대에 꼭 빠지지 않았던 위인 가운데 한 분이신 이순신 장군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승리를 이끌어 냈는지에 대해 그의 지략과 인간적 고뇌에 대해 다룬 영화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내가 어릴 때 읽은 위인전을 통해 기억하는 건, 임진왜란, 거북선, 난중일기, 이총이다. 혹시 기억하실는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에 배가 남아있사옵니다!’라는 그 절박한 외침을.
영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나의 부족한 역사 지식에 대해 먼저 고백한다. 중고등학생 시절, 한창 한국사와 세계사를 배워야 할 때, 나는 해외와 국내의 학교 다섯 곳을 전전하며 역사를 배웠다. 따라서 국사 (한국사)를 배운 건 국민학교 6년 내내 읽은 위인전, 학교 수업, 중학교 3년 동안 다닌 해외 토요 국제 한인학교에서의 교과서, 그리고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신 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서였다. 해외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 책에서 한국이 다뤄진 부분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2차 세계 대전 전후, 일본의 지배를 받음, 그리고 한국전쟁의 발발, 다시 미국과 중국의 영향을 받음, 후에 38선으로 나뉘어 휴전하게 됨, 정도였다. 세계 강대국의 역사와 전쟁, 각종 이념들에 대해 배우고, 회담들의 내용과 이름을 외우고, 정상들의 연설에 관해 긴 답변을 적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어도, 한국사에서 한국과 일본과 어떤 접점이 계속 있어왔는지, 한반도라는 위치 때문에 어떤 침략이 있어왔는지, 근대사에서 한국은 일본과는 어떻게 같고 다른 양상으로 발전해왔는지 등등에 대해 배우고 생각해 볼 계기가 없었다. 오히려 세계사의 입장에서 보고자 하는 한국사를 배운 거라고 하면 더 말이 될까? 그리고 내가 그때까지 알았던 일본이란 나라는, 조부모님 손에 자란 나의 유년기에 할아버지가 내게 편린처럼 심어 주신 단어들이 전부였다. 키츠네, 쓰메기리, 하나가라. 나의 할아버지는 2000년도 초반에 아흔이 넘은 나이로 사망하셨으므로, 일제 강점기에 출생하셨고 일본어를 배워야만 하는 환경에서 사셨을 것이다. 공장에서 일하시다가 두 개 정도의 손가락 마디가 잃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사담이지만 돌이켜 보면 일본의 잔재는 먼 듯 가까이에 있었다. 할아버지는 늘 일본의 메밀국수인 소바에 대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자주 말씀해 주셨었다. 공교롭게도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나는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고, 할아버지에게 소바를 삶아드리려고 장을 봐서 찾아갔었는데, 내가 너무 오래 면을 삶는 바람에 곤죽이 되어버려 대접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급한 대로 할아버지도 나도 좋아했던 곰탕 맛 라면을 끓여 드렸다. 그리고 그게 어린 나를 그렇게 예뻐해 주셨던,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가끔 한인 마트에서 팔고 있는 이 라면을 보면 나는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죄송한 마음에, 가끔씩 가슴이 미어진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해외 생활을 하면서 만난 일본 친구들의 영향으로 나는 일본 문화와 언어와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언어를 독학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5년 정도를 배웠던 중국어를 포기하고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기로 한다. 그러면서 두 나라의 사회와 역사에 대해, 두 나라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살아왔는지, 우리가 알아야 할 일본의 ‘나쁜, 혹은 왜곡된’ 잔재는 무엇인지, 두 나라는 어떻게 같고 다른지에 대해서 비로소 진지하게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 같다. 언어를 배우려면,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알게 된 언어적인 예시 중 하나로, 두 나라가 삼국 시대부터 가까웠을 거라는 증거를 언어에서 찾아보면, くだらな-い (쿠다라나이 : 재미없다, 하찮다는 형용사)라는 일본어 단어가 있는데 이는 くだら (명사) + な-い(없다)라는 두 단어의 합체이며, 여기에서 くだら 는 삼국에서의 ‘백제’를 말한다. 그 시기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불교문화는 일본에서 찬란한 아스카 문화 (주: 7세기 전반 스이코 천황 때, 아스카[飛鳥] 지역에서 발달한 문화. 쇼토쿠 태자가 중앙집권체제 강화를 위하여 불교를 국가적으로 보호하는 과정에서, 일본 사회에 널리 침투한 최초의 불교문화였다. (두산백과 발췌))를 꽃피웠고, 그 주체가 되는 ‘백제’라는 나라는 일본에게는 참으로 ‘재미있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단어는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인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런 어원을 가진 단어를 준 게 ‘한국’이라는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 속 많은 부분에 대해 겹치고, 언어적으로도 겹치는 부분들이 많다. 그리고 IMF 이후 경제발전 양상을 보면, 일본의 버블 붕괴 이후 부정적으로 발생한 현상들이 한국에서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나는 'とおりま (도오리마)'라는 단어로 먼저 안다. 경제적인 이유로 사회에 불만이 많은, '묻지 마 살인범'을 일컫는 말이다.
일본인 친구들과 교류했을 당시, 안중근 의사가 저격하려던 ‘이토 히로부미’라는 인물을 알거나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통치하에서 벌어진 아시아의 일들에 대해 교육받은 친구들은, 역사에 아주 관심이 많은 아이 한 명뿐인 게, 작은 충격이었달까. 일본과 한국의 역사 교과서는 다르다는 걸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통역을 할 때, 대상이 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일본 대학생들은 전쟁기념관에 가서 종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펑펑 울었다. 일본에서 유학했을 때 815 광복절이 되어 우연히 답사 차 찾아가 본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전쟁 당시 일본인들이 받은 피해를 위로하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전범이 아니라 호국영웅인 자들의 위패를 모신 곳 앞마당에 나는 무식하고 무례하게도, 퉤, 침을 뱉고 나왔다. 나가사키 원폭 기념관에서 만나본 생존자의 증언은 전쟁 피해와 생존에 관한 이야기, 일본인들이 입은 피해에 관한 것이었다. 일본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과오를 기억하고 반성하지 않는 듯하다, 그래야 할 명분인 역사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인류애적 측면에서 보면 전쟁은 모든 인류의 비극이다. 먹고사는 문제, 살아남는 문제와 귀결된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기록하고, 어떻게 후대에 전달하는가에 따라서 우리는 아픈 역사를 반복할 수도, 피해 갈 수도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나부터라도 한반도의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여기저기서 짜깁기된 나의 사관이 왜곡된 것은 아니기를, 일본이라는 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나의 공부가 한낱 일본을 찬양했던 것이 아님을. 대학생활을 계속해 나갈수록, 통역 일을 할수록, 두 나라의 역사와 민족성에 대해 모르던 내가 부끄러워졌음을, 영화를 본 후기로서 소소하게 고백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영화의 몇 프로가 픽션인 허구의 상상력으로 채워졌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정확히 알 것 같았다. 그건 선조들의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우리가 힘을 합해 잘 싸워서 지켜냈다는 자부심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영화의 배경인 1597년은 양국간 화의 교섭의 결렬로 다시 한번 정유재란이 일어난 해이며, 이미 역사적인 기록에서 볼 수 있듯, 왜구가 재차 침략하여 선조 통치 하의 조선 민간인에 대해 약탈, 강간, 무차별 살인이 일어난 사건이다. 일본은 아직, 자국이 통일되기 전란 속에서, 각 주의 주군들에게 한반도라는 ‘먹이’를 나누어 주기 위한 명분으로서 조선 침략을 결행했다. NHK 대하드라마의 주제는 종종,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 이전의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긔 이후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다룬다. (2011년 작 고우 - 공주들의 전국, 추천한다) 일본인들에게는 자신들이 섬을 벗어나 대륙의 삶을 꿈꿀 수 있었던, 계기를 준 인물들이기에, 지금도 매체에서 영웅담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마치 우리가 세종대왕 이야기와 조선의 왕들에 관한 사극을 즐겨보듯이 말이다. 일본사 시간에 들었던 것이지만, 일본 대륙의 70프로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 30프로의 땅에서 모여 살다 보면 각종 규율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때문에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형벌은 마을로부터 추방되어 산으로 내몰리는 일이었다고 한다. 식량이 없는 산지에서 굶어 죽거나 짐승들의 밥이 되기 일쑤였을 것이므로, 그들은 이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하였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문화,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문화가 발달했으며, 무라하치부라는 자체적인 형벌도 생겨났다. (주 : ‘무라하치부’란 일본의 에도 시대에 촌락 공동체 내의 규율 및 질서를 어긴 자에 대해 집단이 가하는 소극적인 제재 행위를 가리키는 속칭이다. 따돌림이나 집단 따돌림을 가리키는 용어의 하나로 사용하기도 한다. 위키백과)
이렇게 양국은 매체로서의 역사도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록한다. ‘명량’ 이전에 보았던 가장 생동감 넘치는 임진왜란에 얽힌 TV 드라마는, 2016년에 방영된 factual drama인데, KBS의 ‘임진왜란 1592’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한 김응수 배우는 NHK 대하드라마의 일본인 배우보다 더 야무지게, 복잡한 그 캐릭터를 소화했고, 최수종 배우가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았다. 영화 ‘명량’과 함께 가능하시면, 꼭 한 번 보시기를 권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일본의 섬나라 근성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잔인함이다. (토막 살인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가 영국이라는 풍문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이총이라는 것이 말해주듯, 영화 속의 왜구는 조총이라는 신문물을 받아들여 전쟁에 사용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재미로 쏘아 죽인다. 반항하는 자들을 희롱하고 고문하여 죽이고, 귀나 코를 베어 전리품으로 사용한다. 교토에 가면 있다는 이총을 한 번도 찾아가 볼 생각을 하지 않은 내가 새삼 부끄럽다. 또 영화에서 여성이 범해지는 장면은 없지만, 공공연히 부녀자들이 겁탈당했던 역사적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일본 내국이 전란으로 인해 여성을 전리품으로 교환하거나 취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였으므로, 일본인은 선량해 보이는 얼굴 뒤에 실리를 반드시 챙기는, 셈에 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옳은 것을 행하는 데는 장애물이 없다’는 뜻인 대도무문 (大道無門)이라는 네 글자를 배에 걸고 침략을 한다. 조선을 취해 일본 내의 군주와 나누어 가지는 것에 대이 일본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행동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이념을 가장한 일본인들의 탐욕으로 인해 벌어진 전쟁이다. 그는 더 큰 땅에서 번창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전란 속의 울분을 한반도를 침략하여 풀어냈고, 오다家의 하인 신분에서 관백까지 진출한 도요토미는 조선 앞바다가 불바다가 되는 것을 관망했다. 이순신은 우직함으로, 강건함으로, 풍전등화인 조선의 수문을 지키는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오랜 전쟁에 피폐해진 병사들을 독려한다. ‘싸움에 있어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必生卽死 死必卽生),’ 라며 병사들의 떨어진 사기와 불안을 어떻게 용기로 바꿀 것인지에 대해, 아들 이 회 역의 권율 배우와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중간중간 삽입되면서, 열두 척의 배로 330대의 일본 수군을 이겨낸 명량대첩의 준비과정과 실전 장면이 스크린위에 유려하게 펼쳐진다.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과도 같은 부감 샷과 클로즈업이 반복되고, 각 인물들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음이 드러나며, 배 위에서의 총력전이 하나의 롱테이크로 처리되어서, 흡사 영화 속에서 역사가 재건된 듯한 느낌을 받는 배위에서의 총력전 전투 장면이 압권이었다.
영화라는 기록이긴 하나, 이렇게 치열하게 반도의 안위를 지켜내 주신 선조분들 덕분에 우리 세대는 전쟁을 겪지 않고 의식주의 평화 속에서 살고 있다( 경제적인, 자본주의적 관점에서와는 다른 이야기이다). 유관순 열사에 대한 영화나, 독립투사에 대한 드라마, 한국전쟁이나 민주화 항쟁에 대한 영화를 보더라도, 내 마음은 같은 감동을 받을 것이다. 이전 세대가 희생과 박애정신으로 지켜내 준 ‘민족의 얼’이라는 게 역사와 민족, 언어라는 유산으로 아름답게 남아 있기에, 해외에서 살고 있어도 자랑스러운 ‘한국인’인 내가 있는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인 교차 편집을 통해, 명량대첩은 한 치도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의 마음속을 요동치게 할 것이다. 바다의 회오리조차 전략으로 삼았고,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적을 그 속으로 유인한 이순신은 실로 명장이었다. 또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해 준 그 휘하의 이름 모를 군인들과 민초들이 있었기에, 작전은 성공적일 수 있었다. 자연과 사람들이 모두 함께 승리를 염원하며 싸워낸 그날의 전투가, 궁금하지는 않으신지? 이순신 역의 최민식 배우 이외에 타 등장인물에 관해 사전 지식 없이 본 영화여서, 즐거웠던 발견에 대해 몇 글자 적어본다. 그리고 최민식 배우는 정말, 명불허전이었다. 솔직히 내게는 ‘올드보이’의 최민식 배우도,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 배우도, '이순신' 역의 최민식 배우에게 묻혀 버렸다. 그리고 내가 꼽은 그의 최고의 연기는, 갑옷을 입고 지휘하는 그가 아니라, 검객이 찾아왔을 때 죽은 동료들의 악몽을 꾸면서, ‘내 술 한 잔 받고 가시오’라고 절규하며 자신도 전쟁 앞에 두려워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이었다.
도요토미 보낸 이순신을 잡을 수군 장수 역의 ‘쿠루시마’가 류승룡 배우였다. 현지에서도 개봉했던 영화 ‘극한직업’과 더불어 천만 관객 영화 2관왕을 달성한 그, 일본에서의 ‘오니 (귀신, 도깨비)’를 형상화한 커다란 가면을 쓰고 연기하시기 정말 힘드셨을 것 같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보여준 팔색조 연기처럼, 살짝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시고 연기하는 일본인 장수의 역할이, 어색하지 않은 건 이 배우의 힘이다. 쿠루시마의 옆에서 저격수로 활약하는 (눈매만 보고 처음엔 여자배우인 줄만 알았다) 하루 역에는, SM에서 기획했던 꽃미남 밴드 '트랙스'의 드러머 노민우 씨였다. 틈새시장을 노렸던 이 밴드는 일본의 비주얼 락밴드가 한창 핫할 때 만들어진 영향이 있어서, 노민우 씨도 일본어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 배우의 대사는 별로 없었지만 내게는 단연 씬스틸러였다! 그리고 이정현 배우와 진구 배우의 가슴 아픈 서사가 살짝 들어가는데, 이정현 배우를 보고 영화 ‘군함도’의 모습이 많이 겹쳐져서 안타까웠다. 안 꾸며도 정말 빛나는 배우 박보검이 이순신과 함께 싸우던 전우 배홍석의 아들 배수봉으로 분해 영화에서 중요한 조연을 담당한다. 그 외에 조진웅 배우가 일본의 수군 장수 '와키자카'로 분하는데, 정말 이 분도 일본어 연기 잘하신다. 이외에도 수많은 조연 배우들이 있는데, 일본인 배우 료타니 요헤이, 이승준, 이해영, 김원해, 박노식, 최덕문까지 이름은 다소 생소해도 얼굴을 보시면 ‘아, 저 배우! ‘하며 무릎을 탁 칠 배우님들이 대거 조연으로 포진해 계시다. 김한민 감독 작품으로, 이 감독님 영화 중에 본 건 ‘극락도 살인 사건’과 ‘강철비’ 정도 지만, 필모그래피 안에 있는 ‘봉오동 전투’도 보고 싶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다양한 매체의 힘으로 과거 한국사의 흐리게 지워졌던 부분들이 조명 고 있는 요즈음, 방구석에서라도 현충일 순국선열의 넋을 추모해본다. 그리고 일본어를 전공했다고 하여 일본에 무조건 우호적이라고 나를 지탄하는(?) 지인들에게 한마디 보태고 싶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입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아시아의 범주 속에서 우리는 하나인 것도 같지만, 기실 알면 알수록 정말 다르다고 느끼는 나라니까요. 우리를 우리 답게 만드는 건 뭘까요? 문화는 역사와 언어는, 함께 기록되고 이어져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이다. 혹시라도 지극히 사적인 나의 견해로 인해, 일본에 대한 발언으로 인해, 불편하신 분들이 계셨다면 미리 양해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