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겨울의 어느 날이다. 사무소 회식 자리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눈 녹듯 몸과 마음이 풀렸다.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뱉어내는 쾌감을 이미 알아버렸다.
주저리주저리 떠들다 가슴에서 뭔가 울컥한 게 치밀어올랐다.
켜켜이 쌓아둔 둑이 터져버렸다.
중년의 사내는 꺽 꺽 신음을 내며 아이처럼 울었다.
뭐가 그리도 서러웠을까?
나는 국립공원에는 ‘탐방 프로그램’ 담당자이다.
‘탐방’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어떤 사실이나 소식 따위를 알아내기 위하여 사람이나 장소를 찾아감
또는 명사 명승고적 따위를 구경하기 위하여 찾아감’
국립공원에는 수려한 자연환경과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지구의 지속 가능함을 위해 자연 보전은 물론 탐방 질서유지, 탐방객의 이용을 위한 탐방 기반 시설 설치와
휴식을 위한 다양한 탐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탐방객들에게 해설과 체험, 문화 행사 등을 통해서 국립공원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 생태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한다고 가정해 보자.
먼저 본부 지침을 토대로 자연환경해설사들과 프로그램 세부 내용을, 회의를 통해 초안을 마련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국립공원의 어떤 공간에서 어떤 자연 자원을 토대로 어떤 가치와
혜택을 줄 것인지를 논의한다.
구천명의 승려가 머물렀다는 ‘구천동계곡’과 박문수 암행어사가 민심을 살폈다는 ‘구천동어사길’,
설경이 아름다워 매년 수십만 명이 찾는 덕유산 설천봉은 프로그램의 주무대가 된다.
처음 국립공원 레인저들을 본 사람들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근무한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일을 통해 만나는 곳은 조금 다르다.
조직의 일이 그렇듯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특히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자연환경해설사들과 사무소 의사 결정자 사이에서
이해관계나 변수를 조율해야 할 때가 많다.
예민한 기질 탓인지 혼탁한 물이 흘러들어와 다시 정화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배수로가 막혀 썩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물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작년 따로 떨어진 해설사실을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도록 하자는 이슈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신임 소장은 발령 후 직원끼리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면서 일하기를 바랐다.
몇몇 해설사는 민감했다.
“저희 일이 현장에 자주 나가는 일이잖아요. 교구재나 가방들을 챙기고 수시로 소통 하는데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면 소란스러울 수도 있어요”
합리적인 말인 듯하면서도 자신들의 안위를 챙기려는 말로 들렸다.
오래전부터 해설사들을 ‘별동대’ 같다면서 그 안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다.
사실 해설사실은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직원들이 종종 드나드는 아지트 같은 곳이기도 했다.
특히 정규직원이 아닌 무기계약직원들이 종종 차담 장소로 애용하기도 했다.
국립공원 탐방프로그램은 사람에서 시작해서 사람에서 끝난다.
해설사들과 의견교류를 하고 현장에서는 참여자를 가이드하고 인솔하고
체험교육을 하는 등 늘 사람들을 주시해야 한다.
해설사들과 이견이 생기거나 민감한 사안이 터질 때 자연스럽게 거리두기를 했다.
해설사 9명 모두가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욕구가 있다.
그게 당연하면서도 때로는 당연하지 않기를 바랐다.
조직에서 위와 아래가 서로 요구와 수용의 양상이 다를 때 마다 중간에서 나는 납작해지기 일쑤였다.
“계장님 이거 저희 들이 꼭 해야 하나요?”
“김 계장 상황이 좀 그러니 해설사들 복무 관리 조금 더 신경 쓰라고”
해설사 회의를 하기 위해서는 어설프게 준비할 수 없다.
잘못했다가는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
때로는 요구가 때로는 불만이 나를 향해 있는 듯 느껴질 때가 있었다.
반면에 애매하고 민감한 사안에서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힘을 모아야 할 사무소 의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잘 모이지 않았다.
그들에 대한 나의 기대치가 높은 건지 자문하기도 했다.
‘너무 맞춰주기만 해서 내가 만만한가?’
어쩌면 줄을 팽팽하게 당길 때와 놓아주는 묘미가 아직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몇 건의 이슈를 맞닥뜨리면서 유선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다.
얽힌 실타래를 찾아 손은 허공을 헤맨다. 상담사와 전화기를, 한참을 붙잡고 나서야 웅크린 나를 마주했다.
그 안에는 일을 잘하고 싶고 그러면서 싫은 소리는 외면하고 싶은 남자가 있다.
무엇보다 승진 같은 직장인의 목표보다 같이 부대끼는 해설사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진정한 담당자로서 성장하고 싶은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상상하길 좋아해서 아이디어가 생기면 현실에서 만들고 싶었다.
‘탐방’ 업무는 나의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아이템에 맞는 예산과 여건 그리고 조력자가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분야다.
중년의 ‘자기발견’으로 나답게 살려는 몸부림이 수년 전부터 일었다.
글쓰기와 책 읽기는 나의 성향에 맞는 훌륭한 동반자였다.
그 안에는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기대감도 있었다.
늘 실체 없는 갈망이 있었다.
저 멀리 어딘가에는 나를 반기는 사람들이 있고 내 마음의 고향이 있을 거라는 그리움이 종종 나를 찾아왔다. 마치 소명인 듯 그곳이 내가 가야 할 운명 같은 곳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변수를 간과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합을 맞춰가는 과정을 도외시했다.
왜 ‘베풂’과 ‘배려’가 내 삶에 끼어들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매년 연말이면 소장에게 승진과 직결되는 근무 성적 평점을 통보 받는다.
작년에 전년도와 같은 중하위 점수를 받았다.
“김 계장은 기획은 잘하는데 주변 사람 들을 챙기지 않는 거 같아”
그가 던진 메아리는 내 주위를 오랫동안 맴돌았다.
외곬의 기질은 자신에게만 침잠하게 했다.
중년의 방황은 현업과의 접점을 찾는답시고 기획과 아이디어 찾기에 골몰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다며 해설사들과 거리두기를 했다.
생각이 많고 잘하려고 하다보니 전전긍긍했다.
시도하지 않으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업무 성과도 해설사들의 자발적인 도움도 없이...
한 가지에 파고들면 그 생각에만 매몰된다고 했던가?
“왜 신경 써서 사람 말을 듣지 않는 거야? 기억 안 난다고만 하고....
오빠 일 말고 가족 일 에도 신경을 쓰라고 아파트 당첨되고 나서 한 게 뭐가 있어?
맨날 책 읽고 글만 쓰고”
아내의 쓴소리를 종종 감내해야 했다.
주변 사람들을 헤아리면서도 나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뭔가를 시작하려면 ‘왜’가 이해가 되어야 움직이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배려하는 게 귀중한 일임을 모르지 않는다.
당위와 등쌀에 밀려 하기보다 베어 나오듯 자연스럽길 바랐다.
누군가의 쓴소리는 나의 그림자를 일깨웠다.
나의 취약함은 많은 것들을 끄집어 냈다. 받는 데 익숙한 지난날 ‘온실 속 화초’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학급 소식지를 기획했던 친구의 말이 아련하게 피어올랐다.
“널 생각하면 떠오르는 게 없어서 아무것도 넣질 못했어.”
그 흔적들 속에서 혼자이거나 자기중심적인 성향은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글은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난 뭘 증명해야 하지?
회백색의 안개 속에서 난 뭘 잡고 나아가야 하지?
처음에는 탐방 업무가 나의 길을 열어줄 줄 알았다.
잠깐이지만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사람’이라는 변수의 무거움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만나고 싶은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다. 사실 일상에서 만나는 삶의 의미와 통찰을 탐방 프로그램에 녹여서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행사 차원에서 섭외한 작가들은 나의 결과 바람과 욕망의 결을 닮은 사람들이었다.
글쓰기의 포문을 연 김글리 작가를 섭외했고 숲의 철학자 김용규 작가님이 와주셨고
시인이신 박태건 교수님이 또한 그러했다.
나와 주파수가 맞고 내 생각을 읽어 주고 내 생각에 공감해주는
그래서 나의 열망을 확인시켜주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해설사들을 제쳐두고 혼자서만 일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과거 행정과에서 혼자서 일하던 연필깎이 속 연필처럼 닳아지고 싶지도 않다.
사람들과 함께 일을 나누고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국립공원 일의 특성이기도 하다.
삶은 참 복잡다단하다. 알 것 같으면서도 혼란스럽고 단순하면서도 미묘하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 고독의 시간을 지키려 했더니 사람들과 소원해지면서 슬그머니 내 발목을 붙잡는다.
최근에 국립공원 직무교육 출장을 갔다.
인근 사무소 직장동료를 태우고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아내와 다툰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어떤 종류의 시련이든 믿음이 생기려면 고난이 온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시험 한다고 말이다.
종교적 메시지가 들어간 이야기지만 그녀의 모든 말이 귀로 쏙쏙 들어왔다.
이어서 들려온 마지막 한마디
“계장님을 크게 쓰시려고 하나 본데요“
국립공원의 본질에 나를 투영해 새로운 업의 정의를 다시 내려본다.
‘국립공원 탐방’은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자신의 본질을 돌아보고 더불어 사는 힘을 느끼도록 자연 속에서 쉼과 여유를 누리도록 자신의 역사와 의미를 찾는 삶의 배경 같은 곳이다.
오래전 사무소 회식 술자리에서 서럽게 울었던 그날을 다시 떠올린다.
중년의 사내는 여전히 눈물을 참지 못한다.
차 속에서 90년대 발라드를 듣다가, 노래방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노래에 취해 건너편
또 다른 중년 남자를 발견하고서는, 그리고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애정이 어린 쓴소리에 울컥한다.
지금은 그 눈물의 의미를 안다.
둑에 밀려온 물과 나뭇가지와 쓰레기 더미들의 잡다한 것들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온다.
직장 내 관계의 버거움과 중년 아빠와 남편이라는 멍에의 무게감에
그리고 아직 본향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에 그냥 빠져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궁상맞은 모습이 더 이상 추해 보이지 않는다.
안으로만 침잠하던 그는 나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가끔 주춤한다.
웅크린 그림자를 안에서 꺼내 자신을 바라본다.
늘 가던 길을 가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 가보지 않은 길로 운전대를 돌린다.
뜻하지 않은 풍경에 묘한 긴장과 야릇함이 느껴진다.
그는 비틀어본 관점에서 나오는 통찰을 사랑한다.
마음이 동하지는 않지만, 의례적으로 인사만 하던 사람에게 작은 안부를 건네본다.
고향의 하늘을 바라보되 둥 떠 있는 몸을 내려 땅에 발을 단단히 내딛고 눈은 하늘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