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어젠 오늘 있었던 디자인 미팅 때문에 철야를 했다. 다른 팀 사람들은 해가 뜨려는 즈음 퇴근을 했고, 나는 남들 출근하는 시간까지 사무실을 꾸역꾸역 지키다 겨우 마무리를 하고 나왔다. 집에 들어가면 두 시간 남짓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운전을 시작했는데, 역방향으로 막히는 차들을 보며 몇 시간 후면 어설프게 깬 정신을 부여잡고 강변북로에 있을 내 모습이 그려져 한 숨이 절로 나왔다. 미팅은 디자인 시안을 마음에 들어 하는 클라이언트의 감사 인사와 함께 기분 좋게 끝났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 프로젝트의 a/s 건을 위해 현장 소장님께 전해줄 출입카드를 대신 받아왔더니 다섯 시가 훌쩍 넘었다. 밤샘 작업을 한 직원들은 모두 대체휴무로 출근을 하지 않았고 대표 둘이서 멀뚱 거리고 졸린 눈을 끔뻑 거리며 앉아있었다. 얼마 전 같으면 맥주나 한 잔 하고 들어가자고 했겠지만, 한 주에 한 번, 많아도 두 번을 넘는 술자리를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생각하고 말을 삼켰다.
'안녕'이라는 단어는 생각할 때마다 요상하다.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와 잘 가라는 인사가 같은 말이니 억양과 상황 인지가 동반되지 않으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에 오묘하고 때로는 낯선 느낌을 준다. 그래서 책을 받아 들고 주정뱅이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하는 것인지, 주정뱅이 시절에 대한 이별을 고한다는 것인지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책 제목이 재미있었다. 대부분 슬픈 이별을 위한 "안녕"이란걸 모르고서. 이 책의 스토리를 영화나 드라마로 접했다면 이렇게 먹먹하고 답답하며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자가 주는 힘을 유별나게 느끼게 하는 책이다. 책 이야기를 하며 마실 술을 기대하고 있던 기분이 짜게 식었다. 그래도 술은 마셔야지.
최근 몇 년간 읽은 단편집들은 왜 다 슬프고 힘들고 아픈 이야기들만 잔뜩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과 '잊기 좋은 이름',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앤드류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들을 읽었는데 모두 상실에 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의 삶이 참 어렵고 팍팍하다는 반증이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글이 주는 슬픔의 파급은 뇌를 더 오래 장악하는 기분이다. 연애를 못하는 세상이라 대리만족으로 연애 프로그램들이 잘 된다는 분석을 떠올리게 했다. 하긴, 나도 수요일은 '영수'로 빙의해서 산지 오래다.
오래전 바닥을 치는 마음을 어쩔 줄 모르고 가수 오지은에게 트윗을 보냈었다.
"요즘 너무 바닥입니다. 지은님의 곡 중에 마음을 달래줄 곡 추천해 주세요."
"더 깊이 침잠하고 싶으시다면 '익숙한 새벽 세시'를 들으시고, 반등을 하고 싶으시다면 '24'를 들으세요."
오늘은 '익숙한 새벽 세시'를 듣고 잠을 청한다.
익숙한 새벽 세시 / https://youtu.be/CuvZYF2BB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