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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면 책으로 도망가고

-노후의 책정리-

by tea웨이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유명한 일본독서광이자 책 수집가며 집필가 공간이다. 나도 책에 대해서는 저분 못지않게 한 오타쿠 했었다. 왜 그렇게 책에 집착했을까? 저분의 책에 대한 집착은 지적인 좀 더 나은 사회진화를 위한 인문학적 탐구가 책이었기 때문이라는데....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 들어 허세 빼고 좀 더 솔직해지니 알겠다.

내 책 읽기는 우리 할머니들이 오래오래 입에 넣고 좀 더 달콤함을 즐기려던 박하사탕이었다.

일상의 노동도 못하게 망가진 몸, 견디어내야 할 노후시간을 잠시 달콤한 당으로 충전하며 비루함, 지루함을 잊으려 하신 할머니들.

나도 키 작고 못생기고 별 볼 일 없는 내 존재가 잠시 키다리아저씨의 사랑을 받는 총명한 소녀로 존재할 수 있는 달콤한 시간들로 피난 갈 수 있어서 책에 몰두했던 것이다. 일상이 초라할수록 그 꿈은 더 거대해져 급기야 책 중독현상. 책 읽을 시간이 없으면 책이미지로라도 충전하려고 카톡 대문에 이미지를 걸어 놓고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가장 오래 많이 카톡대문에 걸린 이미지가 저 책 이미지다. 20만 권 소장의 저분에 비하면 택도 없지만.. 그리고 책 수준도 저분과는 달리 선데이 서울부터 주역까지 완전 잡식성이지만 나도 저분 못지않게 책이 많았고 많이 읽었다.


그러나 책이 내 거주공간까지 점점 침범하기 시작해 오자 순간 책이 무서워졌다.

내가 책을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내 인생을 컨트롤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책을 버리고 정리해서 내가 감당할 정도의 분량만 남겨놓았다. 정리하다 보니 저분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많은 책들에 압도당하지 않고 압도하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저분의 책들은 어찌 되었을까. 그분이 모아놓은 이십만 권 고양이 빌딩은 그의 살아생전처럼 유지될까. 내 책정리 이야기를 쓰려니 문득 궁금해진다.


내 노후의 책정리는 기준이 딱 세 가지다.



1. 버리고 기록하다


이미 읽은 책은 다 버렸다. 내 인생책들로 남과 공유하고 싶은 책은 브런치 북에 남겼다

[브런치북] 베이비부머의 빈티지 책 14 (brunch.co.kr)



2. 헐렁헐렁하게 남겨놓다



내가 최애 하는 제주도 포도호텔 로비의 작고 클래식한 서재다. 내가 감당하기에 적당한 규모의 서재다

. 마지막 진짜 내 노후 주거지로 옮기면 만들고 싶은 서재다. 내가 남겨놓은 책들이 저 이미지에 들어가기에 딱 맞는 양이다. 영혼에도 발효가 있다면 왠지 내 영혼이 발효된 후에나 이해가 될 것 같은 책들이 있다. 사놓기는 했지만 내 발효를 기다리느라 읽다 덮고 읽다 덮고 한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그리스로마신화, 주역, 사주첩경,..... 주로 고전이라 일컫는 책과 내 마지막

놀이 찻잔에 대한 책들이다. 나중에.. 나중에.. 미루다 서재 인테리어 용도로 더 많이 애용된... 그런 책들. 이제 노후가 되었으니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어야 할 책들. 그 책들을 저 책장에 옮기면 딱 삼단, 저만큼의 서가 높이와, 서가를 빽빽이 다 채우지 않고 헐렁헐렁하게 저 정도 여백을 두면 딱 맞을 거 같다. 서가 옆에는 책들을 빼서 편한 자세로 읽기에 적당한 약간은 무게감이 있고 유행에 초연한 클래식한 테이블과 소파도 있는 서재.

내 브런치 글들이 책 한 권으로 되어 맨 마지막 줄 맨 구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꿈을 꾸면서..


3. 저장하다




노후에는 꼭 필요한 책 이외의 책은 사지도 읽지도 않기로 했다.

인생을 살기도 전에 인생에 대한 남의 책을 너무 많이 읽다 보니 정작 내가 사는 현실은 늘 바람 빠진 풍선이었다. 막상 진짜 몸이 짐이 된다는 그 깊은 의미를 절절하게 깨닫는 노후의 시작에서 생각해 보니

죽음에 이르는 이 길은 남이 대신해 줄 수도 없는 내가 정직하고 용기 있게 부딪혀야 하는 일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남의 이야기를 읽기보다 내가 직접 부딪혀 써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길을 내 시선으로 내가 중심이 되어 써간다.


쓴다는 것은 소통이다. 그리고 쓰다 보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무언지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소통에는 새 책이 필요하다. 내가 쓰는데 참고자료가 될... 이전과 달라진 것은 내가

주체라는 것이다.

이후의 책은 책 쓸 때 자료로 쓰기 위해 저장한다.

독서하기에 편한 아이패드가 내 요즘 서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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