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드. 디. 어 내 노후의 집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오는데 70년이나 걸렸다. 태어나자마자 전염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을 시작으로 물속에서 산속에서 도로에서 아찔아찔 생사 고비를 넘기면서 말이다.
그중 가장 클라이맥스는 아이들 따라나선 수학여행길에 관광버스 바퀴가 비탈길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죽을 뻔한 목숨을 이은 일이다. 그때 그대로 죽었으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길
일단 살아서 노후의 집에 도착한 인생은 , 모든 인생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부랴부랴 서둘러 오느라 배도 고프고 종일 씻지 못해 몸도 꿉꿉했다.
그래서 발걸음도 빨리 더 빨리했다. 중간에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간이 휴게소도 패스..
오로지 내 노후의 집에 들어가서 냉장고 열을까, 목욕물을 받을까 그냥 침대에 죽은 듯이 잘까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달콤한 휴식을 상상하면서 문을 열었다.
에피소드 1. 아귀찜 대신 짜장면
폭설이 내렸다.. 이 호숫가에 산지 이십여 년이 다되어 가는데 처음 겪는 상황이다.
무릎 위까지 눈이 쌓이다니...
그러면 그렇지. 내 인생이 언제는 내가 꿈꾼 대로 나타나 준 적이 있었냐.준비한 눈송풍기는 마루 위 날린 눈이나 치울 뿐이고 미끄러짐 방지를 위한 사륜구동차는 주차장 눈더미에 빠져 차 빼는 것 자체가 힘들다.
유년시절엔 아버지의 죽음, 사춘기엔 엄마의 파산,..... 이번엔 또 어떤 놈이냐
100세 엄마가 요양병원이라는 감옥에 갇히고 내 몸이 못된 불치병과 의 동거로 저녁마다 통증에 시달렸다.
죽고 싶었다.
설령 움직인다 하더라도 국도 큰길에서 집으로 올라오고 내려오는 길이 경사진 길인 데다 좁아서 다른 차라도 만나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미래는 폭설처럼 느닷없어 준비는 준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립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루 이틀 사흘. 풀릴 생각이 없는 날씨 때문에 계속 칩거하면서 냉동실, 냉장고, 팬트리에 저장해 놓은 음식들을 파 먹고살았다.
살기 위해 글을 썼다. 쓰다 보니 알아졌다.
고립되어 칩거가 계속되는 인생의 폭설 같은 시간이 노후다. 고요하고 외로워지니 북적 복적하고 시끄럽고 따뜻하고 웃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오래된 식당에서 자극적인 맵고 달짝지근한 낙지전골 아님 콩나물 가득한 아귀찜이 먹고 싶다.
폭설 일주일이 되자 견딜 수 없어 탈출하려 하는데 기어이 보일러도 고장이 났다
이 눈길에 누가 와 주기나 할까... 보일러 사장님께 전화한다
시내에 부품 사러 나가는 길인데 앞서 예약했던 집 들러서 오후 늦게 도착하시겠다고 하신다
덜덜 떨며 난로 찾으려 창고 가서 난로 손질하고 돌아와 불을 켜고 있는데 보일러 사장님.
"마음이 쓰여서 "
. 이곳부터 해결하고 시내 가려고
오전 차편을 놓쳐서 점심약속을 포기하고 이곳의 유일한 자극적 음식 짜장면, 을 시켰습니다.
주문 후 10분 거리인 음식점을 걸어서 가려고 문을 열었더니
사장님이 짜장면과 음식을 직접 들고 가져왔습니다 걸어오시다 미끄러질까 봐
"마음이 쓰여서 "
두 분께 나도 마음이 쓰여서.. 한 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음은 혼자는 안 움직이니까요.
인생에 폭설이 내린 시간들이 노후가 아닐까요?
에피소드 2. 사잣밥[使者飯]
"어디 보자.. 국진에 똥광에 사쿠라
사쿠라 면 산보 갈 일 생기겠고 , 국진이면 에고 며느리란 년이 국수 먹이겠군.
아이고 똥!!!
돈.. 돈 생길라나보다. 복권.. 오늘은 두 장 더 사와라"
아침마다 화투패로 그날의 운세를 점치셨던 후배의 시어머님은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복권을 샀다. 도시에서 과도한 돈 욕심으로 시작하신 계들이
줄줄이 깨져 사시던 아파트를 다 날려버리시고 시골 호숫가로 아들 따라 내려오셨다고
소문이 났던 그분, 며느리가 시내 나와서 일 보고 들어가다가
아 참 복권. 깜빡했네. 거의 다 온 길을 다시 돌아가서라도 꼭 손에
복권을 쥐어 주어야 만 했던 복권 할머니.
각자 일에 바쁜 아들 며느리가 아침에 시내로 나가면 종일
피부 그을린다고 잡초 뽑기 한번 하신 적 없고 텃밭에 상추 한 줌 뜯으신 적 없으시고 내가 볼 때마다 화투짝만 만지시던 그분. 시골 동네 경로당 할머님들 하고는 수준이 안 맞으신다고 전혀 교류도 안 하신 분.
며느리는 착해서 아무리 바쁜 아침시간에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점심 밥상을 차려놓고 나갔다. 그런데 화가 나면 그 밥상을 사자밥 채려 놓고 갔다고 화를 내신다 해서 소름 끼친 적이 있었다.
며느리가 바쁜 시간에 애써 차려놓은 밥상에 대한 상상이
고인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사자들을 위해 준비하는 밥상인 사자밥 이라니!!!
에피소드 3.일본 요양원 ,2시간 의 식사시간
식사 시간이 두 시간인 일본 요양원은 더 경이로웠다. 그렇게 느린 식사 풍경은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바라만 보아도 참 편안했다.
떨리는 손으로 수저를 들고 냅킨으로 흘리는 음식을 아주 느리게 닦고
가만 가만.. 작긴 했지만 대화와 느긋함 평안함
이 공간 안에서는 떨리는 손은 떨리는 대로 느린 손은 느린 대로 인정받고 밥먹는 속도가 빠른 사람은 빠르게 느린 사람은 느리게 자기의 속도대로 존중 받으며 먹는 식사.
몸이 어눌해지고 누추해지는 늙은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기 속도대로 밥을 먹고 생활한다
정성스럽게 며느리가 차려놓고 간 밥상을 사자밥으로 생각하느냐
2시간이란 넉넉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색깔대로 편안히 밥먹는 시간으로 만들까 는
본인의 선택이다.
노후준비도 유명한 분들의 강의나 유투브에서 들은 남의 말에 귀기울이고 따라갈 건가?
유년기 사춘기 청년기 갱년기 .. 다 그렇게 흘려 보냈습니다. 나답게 살 마지막 기회입니다
. 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 우리 자신이 우리 보호자가 되고 나답게 내 목소리를 찾고 용기를 내자.
91세에 자기 노래를 부르시는 할머니 처럼...
91세 백남순 할머니는 2022년 충주의 수안보 물탕공원에서 열린 노래자랑 대회에서 조용필의 노래 '상처,를 열창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다소 망설이는 듯한 발성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깊은 감정과 강렬한 샤우팅으로 노래를 완성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상처'라는 노래는 조용필이 1986년에 발표한 곡으로, 백남순 할머니는 당시 55세였고, 이 노래는 그녀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열창은 단순한 노래를 넘어, 삶의 상처와 외로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강렬한 표현으로 평가받았다.
할머니의 열창 영상은 유튜브룰 시끌버끌 뜨겁게 달구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용기와 감동적인 가창력에 찬사를 보냈고 그녀의 스토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세상과 소통하는데 나이는 그다지 큰 장애물이 안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도 이제 내 목소리를 한권의 책으로 출판하고 싶은 용기를 내고 싶다.늦은 나이지만...할머니에 비하면
나는 아직 청춘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