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의 시간-
식사 시간을 30분을 허용하다가 2시간의 넉넉한 식사 시간이 주어 진다면 밥그릇 들고 하는 생각이 달라질까?
빨리 먹으세요!라는 말이 사라지자.
입주자 스스로 밥 퍼고 식기 반납을 하기 시작했다.
거동이 느린 분도 자기 리듬을 찾아 여유있게 식사하게 되자
식판 탁탁탁 일괄 수거가 아닌 입주자의 자진 수거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누워만 계시던 분들도 이 긴시간에 실패할 수도 있는 시간을 벌어 실패 실패 끝에 스스로 걷고 일상생활을 가능한 자립을 유도하는 마법의 시간을 만들어 냈다.
눈물을 쏟았다.
생각해 보니. 오래전 대만 찻잔 여행 마지막 날 별 기대 없이 들른 찻집에서 느낀 감정과 비슷했다.
그 여행 중 젤 초라한 외모의 찻집이었다. 그때는 정말 배우고 실천해보려 하는 진심 여행이라 생각했으나 지나고 보니 핫한 찻집 인증숏 여행이었다. 자기 그릇만큼 세상이 보이는 법이니.
환한 말할 수 없이 빛이 청청한 밖의 풍경과 달리 찻집은 대낮에도 컴컴한 어둠이 ᆢ깔려 있었다ㆍ
건물도 낡고 오래되었다ㆍ새로 리모델링하지 않고 낡으면
낡은 그대로 기능에 이상이 있는 곳만 정성스럽게 손 봐준 공간
그런데 어둠도 금방 익숙해지고 앉아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더없이 편해졌다ㆍ
세상에 이렇게 낡고 오래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곳이 또 있을까 ㆍ
내가 헛것으로 흘려보냈다 생각하는 시간들 도 다 존중받고
내 이 나이 든 누추한 몸과 마음도 시간도
오롯이 인정받는 느낌 차 한잔을 마시니 어둠 속에서 기억 속에. 사라졌던
아니 묻어버렸던 내 멍든. 금 간 찻잔들이 조용히 영화 화면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ㆍ
2시간의 식사시간 풍경은 내 불안과 내 우울 내 혼란을 정리해 주었다
처음으로 닮고 싶은 선배노인을 만난 것이었다. 매스컴에서 미디어에서 만든 선배가 아닌 내 맘 속에서
진짜 내 롤 모델, 내가 기꺼이 팬이 되고 싶은 노인들이 생긴 것이다.
내가 안경 만큼은 패션의 왕이여. 할머니는 이런 이상하고 큰 안경 쓰면 안 되나? 내 멋에 산다네
자기 색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양로원 최고령 선배님. 최고령임에도 일을 하시는 안경 할머니.
쉿! 건들지 마세요. 내가 헬프미. 도와달라고 할 때만 도와주세요! 내가 가능한 일은 절대로
남에게 미루기 싫고 도움이 싫어요. 남에게 민폐끼치는 것. 정말 끔찍히 싫거든요. 내가 정말 불가능한 것만 도움받고 싶어요. 자신 만의 은신처를 만들어 세계는 꼭 지키고 싶은 몬드리안 그림 속
여자들 처럼 목이 긴 사슴 할머니.
누가 나보고 느리대? 나는 마임 배우예요. 세상에서 젤 느리게 식사하는 할머니 역할이에요
장수거북이 같은 슬로우슬로우 할머니
나는 아직도 화장하지 않고는 이 방을 나가지 않아요. 한 손이라도 가능하면 그 손으로.. 죽는 날
아침도 가능하다면 오렌지 빛 루주.. 잘 어울리지 않아요?
내 사랑스런 롤 모델들. 이 롤 모델이 거주하는 곳.
이런 곳이라면....
무작정 그냥 요양원 탈출한 치매 노인이 5분도 안돼 갑자기 우왕좌왕 멘붕에 빠졌을 때 치매 노인이
부끄러워할까 봐
"차 한잔 하실까요?"
치매노인의 부끄러움도 인정해 주는 ,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는 공간이 아닌, 마지막까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가능하다면
삶의 끝자락에서도 사람이 짐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그런 공간이 현실에 가능하게 만드는 게 그게 바로 존엄 일 것이다.
그러나 이 존엄은 그냥 얻어지는 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구속없는 돌봄을 간절히 원하는 노인들과 자유를 빼앗지 않는 돌봄을
하여 마지막 집처럼 편안한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요양원 식구들의 따뜻한 마음이 합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 일본 요양원의 두시간의 식사 티브이 시청은 내겐 단순한 끼니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놓았다.
"나는 오늘, 누구와 어떤 식사를 했나? 그 시간에 존엄이 있었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누군가의 느린 식사를 존중하고 있을까"
삶의 끝자락에서도 사람이 사람답게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존엄사만이 유일한 길인가 하던 나에게도 희망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존엄사 하면서 죽고싶 은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은 실은 간절히 살고 싶어서라는 것도 깨닫는다